12월 31일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 쓰겠습니다
전 관리자 안 할 건데요
"부장님, 저 12월 31일에 연차 쓰겠습니다."
"왜?" 최 부장이 친절하게 묻는다.
고용노동부 직장 갑질 매뉴얼 어쩌고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 사유는 묻지 말라고 되어 있던 것 같지만 나도 친절하게 대답해 준다.
"연말이니까요, 부장님."
"이 대리, 연말이라고 다 연차를 쓰면 일은 누가 하나?"최 부장이 부드럽게 묻는다.
"아유, 부장님. 대통령이 며칠 없어도 나라가 돌아가는데 저따위 하나 없다고 이 동전만 한 회사가 안 돌아가겠습니까."
"그건 우리 일 잘하는 장 대리가 자네 직무대행을 하니까 그런 거 아냐. 장 대리도그날 온라인 카지노 게임 낸다던데 이 대리는 출근하는 게 어때?"
"직무대행의 직무대행인 한 주임이 있지 않습니까?"
"이 사람, 큰일 날 소리 하네! 한 주임은 여직원이잖아! 여직원한테 요즘 연차 쓰지 말라고 하면 난리 나! 자네 감옥 가고 싶어?" 최 부장이 숨을 죽이고 눈을 부라렸다.
"한 주임도 연차 쓴답니까?"
"아니, 안 쓴다고는 하는데! 혹시 쓸 수도 있잖아. 그때는 내가 쓰지 말라고 할 수가 없으니 우리 이 대리가 처음부터 회사에 나와 있으면 된다는 거지. 이렇게 나처럼 상황 판단이 빨라야 이 대리도 나중에 관리자가 되는 거야. MZ세대처럼 '전 그런 거 안 할 건데요-전 관리자 안 할 건데요-에베베' 하지 말고 말이야."
"전 그런 거 안 할, "
"그리고 너무 쓸쓸해하지 마, 이 대리. 나도 31일에 나올 거야. 위로가 좀 되지?"
"(아니요.) 부장님은 사모님이 집에서 나가라고 해서 회사 나오시는 거잖아요."
"무슨 소리야! 우리 애들이 집에서 나가라고 해서 나오는 거야!"
최 부장은 씩씩대더니 슬그머니 안락의자를 뒤로 젖히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나저나 말이야, 이 대리가 결혼해야 된다고 파인애플 썰어서 야간 수당 벌 때부터 내가 상당히 대견한 마음으로 이 대리를 눈여겨봤거든. 그래서 말인데, 우리 막내 처제 만나볼 생각 없어?선생인데 애가 예쁘장하고 좀 괜찮아. 세종에 집도 있어."
"예쁘고 집이 있는 분이 왜 저를 만나시죠?"
"그냥, 저기 뭐야, 한번 갔다 왔어. 요즘은 갔다 오는 게 워낙에 흔하잖아! 어떻게, 차 한잔 할텨?" 최 부장이 위협적으로 말했다.
"좀 생각해 본 뒤에 말씀을."
"생각은 무슨 생각이야? 이 대리, 생각하지 마. 결혼은 생각이 많으면 못하는 거야. 내가 사실 처제한테 김해경 과장을 소개해주려 했는데,아무리 생각해 봐도 김해경이가 들어오면 처제 인생이 다시 골로 갈 것 같단 말이야..."
"부장님, 안 그래도 제가 지금 거처가 없어서 김해경 과장한테 얹혀살고 있는 상황이라 누구를 만날 처지가, "
"잘 됐네! 이 대리 결혼하면 바로 집 생기는 거야!"
"... 세종에요?"
"KTX 타고 서울로 출퇴근하면 되지! 이 대리, 자네 월급으로 집 살 수 있을 것 같아? 집이 생기는데 출퇴근 왕복 네 시간이 문제야?"
"(네.) 그래도 일단 생각을좀..."
"이 사람 봐라? 왜 이렇게 따져? 우리 처제가 한번 갔다 왔다고 그래? 자네는 젊고 반반하고 총각인데 늙고 배 나오고 돈 많은 여자한테 얼굴 하나 들이밀어서 재취 자리로 가려니 기분 상한다 이거야?"
"(맞습니다). 그게 아니라, "
"그래, 아니지? 내가 처제 번호 넘겨줄 테니까, 먼저 연락해서 차 한잔만 해."
"처제 분이 안 나오겠다고 하실 수도 있는데 그건 좀, "
"그건 신경 쓰지 마! 이 대리 사진은 내가 벌써 줬거든. 만나서얘기하자고 하더라고.참, 내가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우리 막내 처제가 한 번인가 두 번인가 갔다 왔을 거야, 응, 아마 두 번일 거야... 뭐, 한 번이나 두 번이나 상관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