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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며 버틴 시간의 기록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
무엇을 느껴야 할지도 몰랐고,
슬픔이나 공포보다는
현실감 없는 멍한 감정이 오래 머물렀다.
그저 병원에서 주어진 일정을 따라가며
수술과 치료를 받는 것이 전부였다.
시간이 흐르고,
모든 게 조금씩 회복되어 가는 줄 알았던 어느 날,
‘재발’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제서야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무너졌고, 좌절했다.
‘이번엔 정말 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엔
그때의 나는 너무 지쳐 있었고,
그저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운 날들이 이어졌다.
슬픔, 두려움, 분노, 외로움…
감정은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나 자신을 다독일 힘조차 없었다.
이미 한 번 지나온 길인데,
그 길을 다시 걸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런 나에게 힘이 되어준 건
결국 가족들과 친구들이었다.
그들의 응원 속에 다시 항암을 결심했지만,
오랜 시간 지속된 치료는
몸의 모든 기력을 앗아갔다.
두 다리로 버티는 것조차 힘겨웠고,
휠체어 없이는 이동이 불가능한 날도 많았다.
다리가 떨려 제대로 들 수조차 없었기에,
버스의 낮은 계단 두 칸도
넘기 힘든 벽이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작은 운동부터 시작했다.
가만히 있으면 더 나아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되었고,
체력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다시 일을 시작했다.
살기 위해, 나를 다시 세우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하지만 그 노력 뒤에 마주한 건
또 다른 벽이었다.
몸은 아직 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무리한 나머지,
또다시 항암치료를 시작해야 했다.
되풀이되는 치료,
다시 반복되는 고통.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었고,
나는 또 하루를 살아내야 했다.
그 시기엔
‘정상’이라는 단어가 가장 아프게 다가왔다.
남들과 같은 시간, 같은 삶,
그 평범한 일상들이
나와는 너무 먼 것처럼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은 앞으로를 이야기하는데,
나는 하루를 견디는 것으로 충분한 시기였다.
하지만 그 모든 날들을 지나며
서서히 감정의 바닥을 디뎠고,
그곳에서 다시 천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힘들었지만, 분명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건 ‘살아 있으니까’라는
단순하고도 강한 이유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장은,
무너지고 버텨낸 시간,
그 안에서 만들어진
나의 감정의 기록이다.
희망이나 극복이라는 말보다는
그저 ‘살아냈다’는 사실에 집중해 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