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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타라 May 01. 2025

카지노 게임 틀릴 수도 있다

내 마음 속에 누군가 숨 쉴 공간을 남긴다는 것

지인과 일상적인 대화를 하던 중이었다.

“올해 딸기는 다 맛없어.”

또 저번 대화 중에는 이런 말도 했다.

“작년 복숭아들은 전부 맛이 없어. 날씨 탓인가 봐.”


하지만 나는 이 말들에 쉽게 공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카지노 게임 올해 먹은 딸기들-며칠 전에 먹은 딸기까지도-전부 맛있었고,

작년에도 맛카지노 게임 복숭아를 많이 먹어서 행복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이 지인과 대화를 나눌 때면, 어딘가 불편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왜 이런 마음이 드는지, 그 속을 파고 들어가 봤다.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 답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아, 이 사람은 자기가 겪은 게 ‘정답’이라고 생각하는구나.‘

그 ’정답‘이 틀릴 카지노 게임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자기가 겪은 것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 외의 수많은 가능성들은 떠올리지 못한 채.

그러니 그 사람의 마음 속엔 타인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나의 경우, 복숭아를 샀는데 맛없는 복숭아를 골라 왔으면, ’이번엔 복숭아를 잘 못 골랐네. 다음번엔 다른 곳에서 맛카지노 게임 복숭아를 골라 와야지.‘하고 다음번엔 맛카지노 게임 복숭아를 사 온다. 물론 열 번 중 열 번 다 맛카지노 게임 복숭아를 사온 적은 없다. 그래도 열 번 중 여덟 번 정도는 맛카지노 게임 복숭아를 사온다. 설령 맛없는 복숭아를 사왔더라도, 어딘가엔 분명 맛카지노 게임 복숭아가 있을 테니 크게 개의치도 않는다. 너무 맛없으면 잼으로 만들어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자기가 사온 그 맛없는 복숭아를 먹곤, ’복숭아 맛이 왜이래? 올해 복숭아는 다 맛이 없네.‘하고 단정 지어버렸다. 어딘가에 분명 맛카지노 게임 복숭아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경험을 일반화시키는 것은 우물 안 개구리와 다를 바 없었다.


고작 복숭아에 대한 사소한 태도일지도 모르지만, 이 사소한 태도 하나가 삶을 대하는 전반적인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실제로 이 지인과 대화할 때면 다른 주제, 다른 사건에도 같은 패턴을 보였다. 그러니 항상 대화할 때마다 무언가 결이 맞지 않음을 느끼고,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카지노 게임 안다‘, ’카지노 게임 옳다‘는 관념은 아집이고 에고일 뿐이다. 물론 사람은 자기만의 고유한 경험과 자신이 느낀 감정들로 삶을 채워 나간다. 하지만 이는 해답일 뿐 정답은 아니다. 수많은 해답을 품고 나아가는 각자의 인생에 정답이란 것은 없다. 이 넓고 넓은 우주에서 지구를 택해 살아가고 있는 나, 은하계와 팽창하는 우주에 담긴 이야기들, 삼라만상을 품고 있는 이치 등 이 세상엔 카지노 게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고, 나는 그 무한한 미지 속을 여행 중인, 작은 존재일 뿐이다. 작지만 우주를 품은 존재.

그래서 나는 항상 ’카지노 게임 틀릴 수도 있다.‘ ’이게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 라는 생각을 품고 산다. 그렇게 살면 내 마음에도 타인을 받아들일 공간이 생긴다. 타인이 놀러 와서 숨을 쉴 수 있는 공간.

내 생각으로 가득 차 있지 않으면 누군가 와서 잠시 머물 수 카지노 게임 여백이 생겨난다.

그러나 내가 옳다는 아집과 그릇된 견해로 꽉 차 있는 사람의 마음엔 타인이 들어설 수 없다.

타인 또한 그 공간에서 답답함을 느낀다.


당신은 나를 받아주는 사람과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

어느 사람의 곁에 머물고 싶은가?

또한 당신은 둘 중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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