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 정지아 수필집 추천
남편은 구례사람이다. 작년 추석, 시부모님들과 들른 구례의 식당 '구례역대합실'. 진짜 구례역의 대합실은 아니고 구례구역에서 가까운 식당이다. (사실, 구례역은 사실 없습니다. 구례구역이 있어요. 구례역이 아닌 구례구역인 이유는 그 역이 구례에 매우 가깝지만 행정구역상 순천 소속입니다. 그래서 구례의 입구라는 의미로 구(口)를 붙여 구례구역이 되었다고 합니다. )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서점 같은 작은 매대가 보인다. 구례출신 작가인 정지아 작가의 책에 친필 사인본의 책들이 있었다. 그 유명한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당시로선 읽지는 않았지만 집에 있었고, 꼭 읽고 싶다고 생각했던 수필집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가 있길래 냉큼 집었다. 책 좋아하는 며느리 사랑은 역시 시아버지! 아버님이 사주신 책을 들고 기분이 좋아졌다.
술술 읽히는 술이 얽힌 에세이들.
제목부터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제목이니까. 날이 좋으면 날이 좋아서 날이 궂으면 날이 궂어서, 안주가 좋으면 안주가 좋아서, 안주가 없으면 깡술이 땡겨서 술을 마실 이유는 365일 1000가지도 만들 수 있다고 하신 친정 아빠도 생각나는 제목이기도 했다. 평생 동안 술이 고파본 적 없으시겠지만 글 읽기를 좋아하는 친정엄마 같은 분에게는 이런 제목의 책에 손이 갈까 아닐까도 매우 궁금하다. (술은 안 드셔도 재미있어서 읽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니까요!라고 외치고 싶기도 하다.)
이 책은 저자에게 의미 있었던 에피소드와 술이 절묘하게 엮여 있다. 일부러 어느 술에 대한 에피소드를 만들려고 해도 그렇게 만들 수 없겠다 싶을 정도로 카지노 게임의 경험들은 진귀한 무엇이었다. 대기업 회장님과의 인연으로 먹어 본 최고급 음식과 초고가의 술 이야기부터 친구가 장애를 입게 된 슬픈 이야기, 북한을 방문해서 북한 카지노 게임들과 나눈 술과 이야기, 일본 야쿠자를 인터뷰한 이야기, 술 안 마시는 분들과 몽골에서 보낸 괴로웠던 밤들 등 재미있게 술술 읽히면서도 생각할 거리들도 있고, 무심한 듯 다정한 카지노 게임의 마음도 여기저기서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슬픈 에피소드에조차 유머가 녹아있어 전체적으로 유쾌하다.
이 책은 조니워커블루에서 협찬을 해줘야 할 만한 책이다. 작가의 최애 위스키라 '블루'라는 이름으로 자주 등장해서 나도 읽는 내내 조니워커블루가 궁금했다. 마침맞게 집에는 선물 받은 지 오래된 조니워커블루가 한병 있었다. 비싼 술이라 아껴둔 것이기도 하고, 독주를 잘 마시지는 못해서 묵혀둔 것이기도 했다. 이런 우연 같은 운명이? 위스키를 잘 못 마시는 편이었지만 책이 이제는 배우라고 재촉하는 것 같아서 책을 읽는 동안 남편과 몇 번 조니워커블루를 기울였다. 위스키는 아직 어려운 술 같았지만 왠지 작가와 함께하는 듯, 위스키를 마실 수 있는 어른이 된 듯 기분은 좋았다.
- 수배자의 패스포트
- 첫카지노 게임 아빠가 허락하신 매실주
- 회장님, 샥스핀 그리고 로얄살루트38년
- 학벌콤플렉스와 시바스 리갈
- 타락을 맛 보여준 맥켈란 1926
- 기적의 남원 막걸리
- 치과가 무서운 야쿠자와 히비끼30년
언젠가 에피소드별로 술을 정리해 그 술을 마시면서 이 책을 다시 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마치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을 그 책에 나온 노래를 들으며 읽는 것처럼 말이다. (하루키를 좋아하시는 분들 꼭 해보시길...) 소주나 매실주, 막걸리는 언제나 가능하겠지만 맥켈란 1926은 평생 불가능할 거고 (가능해도 그 돈 주고는 안 사 먹을 테다. 궁금하신 분들 찾아보시길 1986년에 3천만 원이었던 그 한정판 술이 지금 얼마정도 되어있는지를... 술테크란 말도 붙일 수 있을 정도다. ), 발삼(발렌타인30년)이랑 로얄살루트와 히비끼는 언젠가 손에 넣게 되면 꼭 그 에피소드를 찾아 읽으며 마셔보리라 다짐을 해본다.
책을 읽다가 남은 부분이 너무 적어서 아쉬운 그런 때가 있다. 책장이 자꾸자꾸 넘어가는 것이 아까운 그런 마음. 바로 이 책이 그랬다. 반이 넘어가자 아쉽다 못해 안타까웠다. 결국 1/3 즘 남겨둔 때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시대를 관통하고 공간을 초월할 대단한 깨우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피식 웃다가 코끝이 시큰해지기도 하고 눈물겹게 안타깝다가 눈물 나게 웃게도 되는 이야기들에 고생 많았던 카지노 게임가 짠했다가 진귀한 경험을 한 그녀가 부럽기도 했다. 술이 좋고 책이 좋으시다면 일독해도 후회가 없을 사랑스러운 책이다.
*덧붙이는 글: 야쿠자와 히비끼 30년이 나오는 '존나 무서웠을 뿐...'을 보시면 꼭 아이들 그림책 '악어도 깜짝 치과의사도 깜짝'이란 책을 같이 보시길 추천! 아이들이 어릴 적에 마르고 닳도록 봤던 책인데 공교롭게 그 책도 일본 카지노 게임(고미 타로)의 책이라 혹시 그 실화를 고미타로라는 카지노 게임가 야쿠자를 악어로 바꾸어 그림책으로 쓴 게 아닌가 하는 상상에 또 한 번 즐거웠다. 그림책에 열광했던 사춘기 아이들에게 야쿠자 에피소드를 권해볼까 생각 중이다. 야쿠자의 '존나'가 난무하는 이야기에 사춘기 아이들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