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부 봄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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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마칩시다.”
교수가 책을 덮자 탁 하는 소리가 강의실에 메아리를 만들 정도로 울린다. 저 교수는 어지간히도 수업하기 싫었던 모양이다. 혹은 빨리 담배가 피우고 싶었거나.
온라인 카지노 게임 반사적으로 손목을 들어 시계를 본다.
수업시간이 15분 이상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니 갑자기 불의감이 치밀어 오른다. 비록 등록금이 1/4 값이라는 국립 사범 대학이라고 하지만 이래도 되는 건가?
오석의 대학생활은 실망의 연속이다. 대학생이 된 지 2주 정도 지나서 고등학교 때와 확실하게 달라졌다고 느껴지는 것은 수업시간이 엿가락 처럼 제멋대로라는 것, 그리고 교수든 강사든 하여간 선생들이 가르치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 뿐이다. 이는 그 엿가락이 멋대로 줄어들기만 할 뿐 멋대로 늘어나지는 않는다는 점으로 증명된다.
“권오석. 수업 끝났어. 네가 아무리 버티고 있어도 교수는 돌아오지 않는다.”
교수가 나간 문을 허무한 모습으로 잠시 바라보고 있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어깨를 누군가 두드린다.
고개를 돌려 보니 과대표 이동성이다. 서울대학생 답지 않게 키가 훤칠하게 크고 부리부리한 눈과 울창한 곱슬머리를 가진, 어찌 보면 꼭 그리스나 터키 사람을 연상시키는 모습을 한 남학생이다. 강원도 삼척에서 올라왔다고 하는데, 거의 만장일치로 87학번 과대표로 선출되었다. 사실은 어른들로부터 과대표 같은 거 하면 데모하는데 끌려가기 쉽다는 말을 하도 들어서 서로 미룬 탓이 컸지만 말이다.
“고맙다. 가르쳐 줘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 간단하게 인사하고 가방을 싼다.
“오늘도 집으로 직행이냐?”
온라인 카지노 게임 동성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짐작할 수 있다. 과에서 하는 이런 저런 행사도 참석하고, 또 선배들이 운영하는 이런저런 학회에도 가입해서 같이 활동하자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86.87학번 대면식에도 참석 하지 않았고, 신입생 환영회도 불참했다. 과 전체 MT도 안 가겠다고 했고, 과 선배들이 운영하는 학회들에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과대표로서 한 마디 안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 카지노 게임 과에서 하는 행사라는 것이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며 시작해서 아침이슬 부르며 마무리되는 운동권 집회의 축소판이고, 학회라는 것도 이름만 역사, 문학, 경제로 되어 있을 뿐 ‘해방 전후사의 인식’, ‘철학에세이’, ‘민중과 지식인’ 같은 책들 읽으면서 운동권과 같은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만드는 의식화 과정이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다.
몇몇 과격한 선배들은 그 과정을 ‘시각교정’이라며 대놓고 말했다. 하지만 온라인 카지노 게임 자신의 시각(시력이 아니라)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설사 문제가 있더라도 선배들 손으로 강제로 교정당할 생각 따윈 없다.
“미안. 나 먼저 간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가방을 들쳐 메자 동성이 두 손을 으쓱 들어 올린 뒤 앞에서 비켜선다.
“야, 권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동성이 비켜선 자리에 금새 다른 누군가가 나타나 앞을 막는다. 경상도 어디선가 올라왔다는 곽재훈이란 녀석이다.
“왜?”
“내가 볼 땐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니는 대학 생활을 너무 형편없이 한다. 학교 끝나고 과모임에 한번이라도 나와 본적 있나? 대면식, 신입생 환영회를 가 본 적 있나, 학회를 하는 게 있나? 너 우리과 아들 이름이나 다 아나?”
“다 알아.”
“그럼 왜 같이 안 어울리노?”
“몰라. 그냥 그렇게 되네. 난 너희처럼 집 떠나서 자취하고 하숙하는 애들하곤 입장이 달라. 얼굴 벌겋도록 술 마시며 놀 수 없다고. 너무 늦기 전에 집에 들어가야지. 술취해서 부모님 계신 집에 들어갈 수도 없고.”
“하이고! 이기 대학생이라? 완전 고등학교 4학년 아이라?”
“맘대로 생각해.”
“그라고, 니는 머스마들하고는 말도 잘 안하고 딸아들하고만 노는 것 같다. 와카노?”
“딸아들이라니?”
“여자 애들 말이다.”
“아, 여자. 내가 그랬나? 특별히 그런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주민경은 같은 동네 살아서 같이 다니는 것이고, 오수현은 민경이랑 친해서 덩달아 같이 다니고, 그런 건데?”
“그랬나? 미안하다. 그건 내가 오해했다. 그라지만, 하여간에 니는 동료들하고 대화가 부족하다. 부족해도 이만저만 부족한 게 아이다. 그라서 언제 한번 니하고 마음을 툭 터 놓고 얘기 좀 하고 싶다.”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데?”
“마, 니가 장차 하고 싶은 일이 뭔지, 그런 것 말이다.”
“몰라. 아직 그런 것은. 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시, 소설, 아니면 희곡을 쓰고 싶었어. 하지만 지금은 모르겠다. 그러려면 차라리 국문과나 영문과 같은데를 갔어야 했나 싶기도 하고.”
“시라꼬? 어떤 시를 쓰고 싶은데?”
“아름다운 시.”
“아름다운 시? 순수문학 말이라?”
“순수문학이라면, 그게 무슨 뜻으로 한 말인데?”
“시를 가지고 현실에 참여하는 거는 안할 끼가 그 말이다.”
“정치 시 같은 것? 난 그런 건 싫어. 난 순수하고, 순진하고, 깨끗한 마음을 아름답게 다듬어 보고 싶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같은 것을 써 보고 싶어.”
“아서라. 그런건 시가 아이라 그냥 부르주아들 노리개다. 예쁜 노리개.”
“부르주아. 너 대학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마르크스주의냐?”
“마르크시즘이다 아이다가 문제가 아이고, 중요한 건 현실이다. 나라는 이래 두 동강 나 있고, 민중들은 가난에 허덕이고, 독재자와 부르주아는 떵떵거리며 사는 이 부조리한 현실 말이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살짝 부아가 치민다. 점점 말의 수위가 올라간다.
“그럼 시가 아니라 총을 들어. 광주의 그 사람들처럼 총을 들어. 그럼 간단하게 끝날 걸 왜 시를 쓰냐? 난 현실보다는 꿈이 더 좋다.”
하지만 재훈이 같잖다는듯이 코웃음을 친다.
“마 치아라. 은행장 아들은 꿈 꿀 여유나 있겠지만 내 같이 열 살 때부터 똥 지개 지고 논밭으로 뛰 댕기야 했던 아들한텐 꿀 꿈도 안 남았다. 니 꿈은 무지개빛 영롱한 그런 환상이겠지만서도. 니 그걸 아나? 알기나 하나?”
또 시작이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이래서 재훈이 싫다. 아니 지가 어릴 때 똥 지개를 지건 논 밭을 뛰어다니건 그게 어쨌다는 건가?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공부했다면 딱하긴 하지만, 또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여기까지 왔으면 장하기도 하지만, 그게 왜 오석에게 화 낼 일인가? 더 이상 대꾸하고 싶지 않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재훈 옆으로 돌아 강의실 문을 연다.
문을 열면서 민경이에게 슬쩍 눈빛을 던져본다. 혹시 집에 갈 거면 같이 가자는 신호다. 하지만 민경이 고개를 가로 젓는다.
“미안. 난 오늘 학회 같이 하고 갈거야.”
온라인 카지노 게임 별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바로 강의실을 나간다.
이때 메조 소프라노 톤의 여학생 목소리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등을 잡는다.
“같이 가.”
오수현이다. 87학번 신입생 20명 중 온라인 카지노 게임, 민경과 함께 단 세 명 뿐인 서울 출신 학생이다. 등록금이 반의 반 값이라 그런지 사범대학에는 유난히 지방 학생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네 과는 특히 심했다. 서울 출신 세 명에 경기도 안성에서 왔다는 진하영까지 쳐도 수도권 출신이 딱 넷, 나머지 열 여섯이 지방 출신이다. 더구나 수도권의 네 명 중에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 혼자 남자다.
오수현은 자그마한 체구와 하얗고 윤기있는 피부를 가진 반짝거리는 느낌을 주는 아이다. 눈썹이 짙고 그 아래 반짝이는 눈동자를 감싸고 있는 맑고 선명한 눈이 첫 눈에도 총명해 보인다. 어릴 때 즐겨 봤던 만화 ‘프란다스의 개’, ‘미래 소년 코난’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는데, 콧날을 중심으로 아래를 보면 무척 어른스러워 보이고 위를 보면 중학생 또래 소녀 같아 보인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수현과 어차피 평소 하교길을 같이 하는 사이이다. 오늘은 민경이 없으니 둘이 갈 수 밖에. 수현은 불광동인가 녹번동인가 살기 때문에 서울대 입구역에서 교대역까지 같이 간다. 그런데 수현의 표정을 보니 집에 갈 궁리가 아닌 것 같다.
“부탁 하나 할게. 싫으면 안 들어줘도 돼.”
말 하는 순간 이미 결론이 났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말해 봐. 웬만하면 들어줄게.”
“우리가 명색이 관악 캠퍼스라고 부르는 곳을 다니는데, 관악산이 어떤 곳인지 올라가 보고 싶어서 그래. 수업도 오전에 끝났으니 지금 한번 가 보면 안 될까? 어때? 오석아. 여기서 정상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니?”
온라인 카지노 게임 생뚱맞게 갑자기 이게 뭔소리냐 싶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이 말을 뱉기 직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생각해 보니 ‘그럼 누구한테 물어?’라는 답이 나온다. 과에서 서울 출신 남학생은 오석 혼자. 관악산을 한 번이라도 올라가 봤을 확률이 제일 높은 사람이 누구일지 바로 결론이 난 것이다. 평소 보여주던 총명한 모습으로 보아 수현은 그걸 다 계산하고 물어봤을 것이다. 다행히 온라인 카지노 게임 관악산을 한 번이 아니라 수십 번 올라 갔고, 웬만한 코스는 다 다녀 봤다.
사범대학에서 관악산에 오르려면 버들골이라 불리는 잔디밭에서 작은 저수지를 지나 올라가는 코스가 제일 무난하다. 그렇게 올라가면 한시간 반 정도면 정상에 도달할 것이고, 내려갈 때는 자하동천으로 해서 과천으로 가거나 낙성대 능선으로 내려가면 다섯시 전에 하산을 완료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등산화를 신고 준비를 갖춘 다음의 이야기고, 지금처럼 운동화 신고 블레이저 차림으로 산을 올라가자고?
그래도 일단 묻는 말에 대답은 한다.
“음, 올라가는데 두 시간, 내려오는데 한 시간 반?”
“그럼, 지금 올라가도 해 떨어지기 전에는 내려오겠네?”
“응. 그런데 정상은 무리고, 마당바위라고 전망 좀 열리는데 까지 갔다 내려가는 정도는 가능해.”
“그 정도면 충분해. 그럼 미안하지만 안내 좀 해 주면 안될까?”
뭐라고? 오석은 황당하다. 슬쩍 수현의 차림새를 살펴본다. 연두색 봄 자켓과 물빠진 청바지를 입고있다. 오석은 수현이 저 자켓과 청바지 입은 모습을 여러번 봤다. 아마 본인이 편하게 느끼는 복장인 모양이다. 그래도 운동화를 신고 왔으니 그런데로 갈수 있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표정에서 주저하는 기색을 읽었는지 수현이 바로 체념조로 말한다.
“역시, 힘들까? 괜찮아. 힘들면 그냥 집에 가던가 중앙도서관이나 가지 뭐.”
하지만 온라인 카지노 게임 이번에도 거절하지 못한다.
“힘들긴 하지만 못할 일은 아니야. 대신 간식거리랑 우유 같은 것 충분히 사 가지고 가자. 그리고 무리하지 말고 전망 보이는 데 까지만 갔다 바로 순한 길로 내려가자.”
“알았어. 나도 그 정도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