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처음 날에게
2024년 11월 18일 밤 10시, 전라남도 영암
길을 나섰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이 새벽 1시에 출발하지만, 남아 있는 가족들의 다음 날 일정을 고려해 그렇게 늦게 데려다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빠빠이! 엄마, 잘 갔다 와!”
아홉 살 막내의 인사가 경쾌했다. 열셋, 아홉, 그리고 마흔셋. 세 식구를 한국에 남겨 두고, 첫째와 나는 한 달간의 독일 여행을 떠났다.
열다섯 딸아이의새 캐리어는 목포 버스터미널 바닥을유연하게 굴러갔다. 서른아홉의 내 몸뚱이는 남겨 둔 가족에 대한 걱정, 새로운 세상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여행을 떠난다는 설렘이모두 중첩되어 조금 뻣뻣하게 걸음을 옮겼다.
함께 여행을 떠나는 첫째는학교에 다니고 있지 않았다. 녀석은 중학교 1학년 2학기 중간고사를 치른 뒤, 학교를 그만두었다.엄마인 나는 서른이 넘어서야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고, 여전히 그 문 앞을 서성이고 있는 중이었다.
늦은 밤,버스터미널은 텅 비어있었다. 이 시간, 이 나이의 아이와 함께 공항 리무진을 기다리는 모습은 남들이 보면 참 특이하겠다 싶은생각이 들었다.
우리일상은 사실 지극히 평범한데 말이다.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기 전 몇 개월간 우리는 실랑이를 벌였고, 물어볼 수 있는 모든 이들에게 조언을 구했다.많이 불안했으니까.이여행도 마찬가지였다. 길을 떠나는 오늘 오전까지도 나는 ‘괜찮을까? 이게 과연 최선일까?’라고 적힌 마음속 질문지를 애써 외면하려 노력해야 했다.
왜 독일인가?
여러 번 들은 이 질문 앞에서 나는똑 부러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독일은 내가 오랫동안 막연하게 동경해 온 나라였다. 음악, 문학, 언어, 철학—차갑고 단단하면서도 어딘가 깊이가 느껴지는 나라, 사람들.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나의 영향인지 첫째 역시 독일로 유학을 가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아이의 수능이 끝나면 한 번 다녀오자고 막연히 생각했는데아이의 진로를 고민하다 보니 그때는 이미 늦을 것 같았다. 왜 그렇게 생각했느냐고 묻는다면, 역시나 뾰족한 대답은 없다. 그냥 내 육감이 그랬다.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늦을 거라고.열다섯, 서른아홉. 지금이 딱 좋은 그때라고.
지난여름어느 날, 늦가을 중 항공권이 저렴한 날짜를 골라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새벽 6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는 10시 출발이라아직 카운터가열리지 않았다.동남아 여행을 몇 번 다녀왔다고딸아이는 제법 덤덤한 얼굴로 잘 기다렸다. 앞으로 얼마나 자주 먹게 될 줄도 모르고, 우리는 아침으로 샌드위치를 먹었다.
비행기에 타자마자 아이는 곧장 잠에 들었다. 전날밤 10시에 집을 나서, 다음날 오전 10시 비행기를 탔으니 피곤할 만도 했다. 불편한 좌석에 몸을 기댄 채 잠든 아이의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는 너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내가 책임질 수 없는 너의 미래에 낯선 바람을 불어넣는 이 여정이맞는 건지, 틀린 건지.십 대 중반의 너에게 엄마로서 가르쳐야 하는 것이 모험인지, 안정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장거리 비행은 힘이 드니 좋은 목베개를 하나 사 주는 일정도였다.
잠시 경유한 베이징 공항은 한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처음 보는 중국 스타벅스 메뉴들도 신기하고 설레었다. 한국을 떠나니 비로소 실감이 났다.
“엄마, 우리 진짜 유럽 가는 거네?”
“그러게 말이다. 그날이 오긴 왔구나.”
온 밤을 길 위에서 지새우고, 여전히 길 위에 있었지만 아이는 웃고 있었다.그래서 나도 웃음이 났다.
‘그래, 가는 거다. 우린 정말 가는 중이다.’
드디어 독일, 카지노 게임. 현지 시간 오후 5시.
해가 빨리 진다는 소문처럼, 벌써 하늘은 어스름하게 저물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수십 번 학습한 대로 공항 지하철을 타러 갔다. 가는 길에 자판기에서 물을 사려다 아까운 유로를 날렸지만(이후에도 두어 번 자판기가 돈을 먹카지노 게임), 다행히지하철은 문제없이 탈 수 있었다.
안도감도 잠시, 인생은 늘 학습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진리처럼 우리는 얼마 못 가 길을 잃었다. 지하철에서 트램으로 환승을 해야 했는데 트램 정류장을 찾지 못했다. 지하에서는 구글 맵이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어느 게이트로 나가야 하는지알 수 없었다. 결국 아무 게이트로나오고 보니눈앞엔 컴컴한카지노 게임이펼쳐졌다.낯선 외국의 밤거리를, 구글 맵 하나에 의지한 채 걸어가야 했다.
“괜찮아. 여기는 주택가잖아. 독일은 한국이랑 치안이 거의 비슷하대. 그러니까 괜찮을 거야.”
무섭다는 생각이 들자내 입에서 습관처럼 아이를 달래는 말이 나왔다.
그 말을 하고 걷는데문득 지난 시간이떠올랐다. 지금과 닮았던, 아이를 키우던 대부분의 날들. 스물다섯에 처음 엄마가 된 후, 아이가 자라는 모든 순간이 내게는 처음이었다. 미숙한 엄마는새로 찾아온 생명체를돌보는 일이 두렵고 힘들었다. 하지만두려움보다 훨씬더 아이가 사랑스러웠다.무슨 일이있어도내가 가진두려움을아이에게보이고 싶지 않았다.안전한 벽이 되고지붕이 되어주고 싶었다.때때로 너무 벅차서아이앞에서 눈물을 쏟기도 했지만, 대체로 나는 엄마 오리 같았다.등에 업힌 새끼를 물에 빠뜨리지 않으려고물속에서 바삐 발을 움직이는 엄마 오리.내 발가락에 물갈퀴가 생기지 않아서 다행이라는생각이 들어혼자웃카지노 게임.
아이는나보다 조금 앞서 걷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인도 위로 굴러가는 캐리어 바퀴 소리가 어두운 카지노 게임 안에 씩씩하게 울려 퍼졌다.
“이야, 딸. 여기 좀 무섭지만 너무 예쁘지 않냐? 가로등 좀 봐. 유럽은 유럽이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프랑크푸르트의 밤 골목을 바라보았다.조금 전 비가 내렸던지, 골목 곳곳에 떨어진 낙엽들이 가로등 불빛 아래서 촉촉하게 반짝였다.
“그러게. 가로등부터 다르네. 너무 예쁘다.”
아이가 감탄했다. 녀석의말에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너를 키우던 그 모든 순간들도 그랬어. 두렵고, 어렵고, 막막했지만 또 자주 이렇게 아름다웠어. 그래서 충분히 버틸 만했어. 네가 나를 또 걷게 했으니까.'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몸을 던졌다.
잠시 누워 쉬다가 오늘의 사진들을 훑어보았다.많이 설레고, 조금 무서운 길 위의 두 모녀. 불안 속에서도 각자의 시간을 충실히 걷고 있는, 꿋꿋하게 자신의 속도를 잃지 않으려 애쓰는 두 여자가 보였다.
잠든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내 곁에 있을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너를 잘 키워볼게. 그리고 나도 잘 클게.’
오랜만에 한 방에서 함께 잠드는 둘의 숨결이생생해서,마음이뜨거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