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그 후, 더 넓은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브런치 작가를 신청한 장소는 도쿄의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이었다. 관광지에서 꽤나 먼 와세다 대학에 있는 기념 도서관. 웅장한 돔 형태의 높은 서고에 소개된 세계의 문학서들을 마주하고 왼쪽으로 코너를 돌아가면 연도별로 전시된 그의 작품이 나즈막히 깔려있다. 성실한 작가의 시간이 물성으로 다가왔다. 나는 항상 언젠가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 작가로서의 하루키의 긴 여정을 보여주는 서가는 친숙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지만, 그 성실함이 나를 살짝 압도했다. 내가 저런 작가가 될 수 있을까. 무거운 마음을 좀 내려놓고자 계단을 따라 카페로 내려가 커피를 한잔 주문하고 노트북을 펴 들었다. 다시 시작하겠다 결심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와서 보니 '대 하루키 선생' 같지만 30대의 하루키도 어느 날 작가가 되겠다며 첫 원고를 써내려 갔다. 그게 한 30년 전쯤일까 떠올리는 34세 라희, 조용히 노트북을 열고 다시 글쓰기를 두드려보기로 했다.
일본어 학원도 등록했다. 스페인어를 배우자고 맘 먹었던 게 대학생 때 일이니, 언어를 공부하겠다는 마음은 그로부터 10년 만의 일이다.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언젠가 해야지 하고 마음 속으로만 되뇌이던 일본어 배우기가 실제 나의 시간과 도쿄라는 공간을 만났다. 더듬더듬이라도 현지어를 하니 도쿄 사람들은 (원래도 친절하지만) 한층 밝은 톤으로 환영해준다. "에-!", "스고이" 하는 칭찬을 들으면 짧은 단어로도 박수갈채를 받는 어린 아이가 된 것 같이 으쓱했다. 아직 한자로 가득한 간지 읽기는 까마득하지만 벌써부터 새로운 언어의 세계를 만날 생각에 마음이 앞선다.
'죽밥' 정신을 다시 새기고 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자'다. 항상 잘 하고 싶은 마음이 발목을 잡고 있었다. 시작한다면 바로 두각을 나타내야 할 것 같아 오히려 멈춰있었다. '글 써보고 싶다', '일본어를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은 마음 속에서만 둥둥 떠다니다 현생을 만나면 증발했다. 글쓰기와 일본어 배우기는 일본에서의 시간을 더 소중하게 했는데, 그건 일본이나 도쿄여서 느끼는 특별함이 아니라 시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환희에 가까웠다. 나중에 보면 엉성한 구성으로 써내려간 거친 글이 부끄러워질지도 모르고, 처음 배우는 일본어가 다소 엉망진창일 수도 있지만, 시작이 있어야 다음도 있다. 하고 싶은 마음을 고스란히 현실시간 속에 늘어놓았다.
한 곳에서 머물면서 비슷한 사람들만 만나다보면 그 담 너머에는 어떤 게 있는지 잘 들여다보지 못할수 있다. 4년제 문과대학을 나온 회사원인 나에게는 회사원 친구들이 많았다. 회사원 끼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다른 회사를 다니면서도 손뼉을 치며 공감하는 경우가 많았다. 회사원이라면 겪는 공통된 회사원 라이프라는 게 있으니까 말이다.
도쿄는 그 담 너머 다양한 삶의 모양새를 힐끗 보여주었다. 운이 좋게도 나는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재능있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나는 회사원이 뭉쳐있는 한 그룹에서 인형뽑기 하듯 뽑혀져, 전혀 다른 미지의 통계분류 그룹에 툭 떨어뜨려진 느낌이었다. 내가 아는 세상이 다가 아니다. 세상은 넓고 카지노 게임 추천은 다양하고 인생을 사는 방법은 수만가지다.
1) 취미로 핸드메이드 수제 기타(맞다, Guitar)를 만드는 독일 사람. 일본에 올 때마다 라이브 클럽을 순회하며 밴드를 보러 다닌다. 이번에 만든 기타는 도쿄 신예 밴드의 기타리스트에게 전했단다. 시모키타자와에 갔던 날 도쿄 10대-20대 친구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던 그 밴드였다.
2) 40대에 회사 하나를 팔며 엑싯(Exit)하고, 세계 여행을 카지노 게임 추천한 브라질 사람. 전공대로 광고를 하는 대신 친구 셋이 옥외 광고 플랫폼을 만들었단다. 지난 10년 간 쉼 없이 일한 것을 이제야 보상을 받는 것 같다며 편안한 어른의 웃음을 보였다.
3) 사이드 프로젝트를 카지노 게임 추천할 요량으로 마차 판매 공급원을 찾아 온 비즈니스 여행 중인 호주 사람. 웰니스에 빠져 운동과 건강한 식사를 즐기게 되었는데, 아직 호주에 차 문화가 별로 없어서 마차 문화를 들이기로 했단다. 그는 나를 만난 다음 날 마차 생산자들을 만나기 위해 교토로 떠났다. (EP11편의 그 차장님이다!)
4) 본인을 사범대 2학년 학생이라고 소개한 오스트리아 카지노 게임 추천. 인스타그램을 보니, 인플루언서이자 본인 패션 브랜드도 운영 중이었다.
한 달 일시정지만으로 나는 대단히 다른 사람이 된다거나, 훌륭한 사람이 된다거나, 인생의 기똥찬 정답 같은 것에 가까워진다거나 할 수는 없었다. 어떤 날은 해도 잘 안 드는 한 칸짜리 숙소에 가만히 누워 핸드폰만 쳐다본 날도 있었다. 하지만 어렴풋한 가능성이 몽실몽실대는 것을 느꼈다. 삼십대 중반 자락에 맞이한 내 인생 0.24% 남짓의 시간을 보낸 후 나는 분명 이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 수 있었다. 다시 카지노 게임 추천하는 자신감과 고요 속에서 찾은 내면의 힘, 더 넓은 세상을 보려는 눈이 생겼다. 내가 돌아가야 곳은 같았다. 내가 살던 집, 내가 다니는 회사. 하지만 같은 사무실에 출근해도 같은 내가 아니라는 (아마 나만 아는) 사실은 발걸음을 더 신나게 했다.
내 안으로도, 내 밖으로도 더 넓은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도착점이 카지노 게임 추천. 그러나 시작점이 도착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출발하지 않고 도착할 수는 없다. 출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시작점만 있을 뿐 도착점이 없다. 아니, 그에게는 시작점도 없다. 아직 출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그는 시작점으로 돌아왔지만, 원래 있던 자리로 단순히 회귀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자리에 새로 선 것이다. 자리는 같지만 그 자리는 같은 자리가 아니다. 사람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는 도착한 자로서 시작점에 섰다. (...) 그러므로 그는 다른 그다. 고백한 사람은 고백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승우, 고요한 읽기 p. 31
* 제목은 이승우 작가님의 <고요한 읽기에서 빌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