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 아내와 Le Puy(르쀠)길 산책하기’
‘안녕하세요? <사랑방에 실린 수필 두 편 읽었어요. 멋진 인생, 축하드립니다.’
카톡으로 축하 인사를 받았다. 발신자는 십 년 전까지 함께 근무했던 김일환 교장 선생님이다. 온화한 성품으로 직원 간의 인화를 강조하며 학교 운영을 민주적으로 잘했던 분이다. 야간대학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한 인연으로 주 프랑스 교육원장으로 파견 근무한 적도 있다. 퇴직을 앞두고는 아동문학으로 등단해 지금은 한국불교아동문학회를 이끈다는 소식만 전해 듣던 차다.
<사랑방이라는 동인지에 실린 내 글을 읽으셨나 보다. 답장을 보내기 전, 지난 세월의 간극으로 프로필부터 잠시 살펴봤다. 인물 사진은 없고 책을 찍은 사진 한 장만 썰렁하게 올라와 있다. 사진을 확대해 보니 ‘파킨슨 아내와 Le Puy(르쀠)길 산책하기’라는 선 굵은 제목이 선명하다.
‘설마, 그럴 리가.’
다시 저자의 이름을 확인했으나 틀림없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얼이 빠져 잠시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가다듬었다. 얼른 컴퓨터를 켜 키보드에 책 제목부터 처넣었다. 세상에, 사모님이 파킨슨병에 걸렸다고? 발병한 지 올해로 여덟 해째라면 예순 살부터 앓기 시작했다는 건가. 모든 게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 같다.
동화 속 예쁜 집을 연상시키는 교장 선생님 댁을 나는 잊지 못한다. 해마다 2월 말이 되면 부장들은 6학년 담임들과 함께 교장 선생님 댁으로 초대를 받았다. 갸름한 얼굴의 사모님은 몸에 밴 친절한 목소리로 우리를 맞이했다. 집 안 구석구석을 장식한 프랑스 뒷골목에서 찾아낸 벼룩시장표 수공예품에서 소박한 인품을 엿보았다. 앞치마를 두른 사모님은 바삐 움직이면서도 호탕한 웃음으로 내 집처럼 편안함을 안겨주었다.
네 시간넘도록 말로만 듣던 프랑스풍 식사를 즐겨본 건 난생처음이었다. 요리사를 불렀다 해도 곧이들을 만큼 그 많은 요리를 사모님 혼자 준비했다는 말에 모두 기함했다. 먹기에 아까울 정도로 품위 있는 음식, 거기에 어울리는 그릇까지 세심하게 맞춘 안목이 남달랐다. 살아가는 얘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가운데 끝도 없이요리가 식탁 위로 올라왔다. 교육과정을 진지하게 토론하는 동안 동료애가 다져진 것은 물론, 새 학년을 앞둔 교사들의 의지도 활활 불타오르며분위기를 달구었다.
-교장 선생님이 만든 오늘의 식사 메뉴판-
그날의 훈훈한 만남이 바로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그려진다. 외부 식당에서였다면불가능했을 지도 모를 가족적인 유대감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있다. 하나라도 더 먹이려고 애쓰던 사모님은 떠나는 우리 손에 자그마한 꾸러미를 하나씩 들려주었다. 음식은 프랑스식이었지만인심은지극히한국식이었다. 빈손으로 손님을 보내지 않는다는 베풂의 실천에 감동받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직접 구웠다는 과자 상자를 치켜들며 나는 치사 한 마디를 남겼다.
“우리, 사모님이 일하는 분이라는 걸 알리면 절대 안 돼. 집에서 살림만 하시는 분인 거야.”
부부 교사면서도 집안 살림까지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능력은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
‘파킨슨 아내와 Le Puy(르쀠)길 산책하기’
이 책은 파킨슨병을 얻은 아내를 위해 프랑스 르쀠길을 다시 걸으며 쓴 에세이다. 8년 전에는 함께 걸었던 길을 이번에는 몸이 성치 않은 아내와 울고 웃으며 걷는 이야기이다. 건강했을 때는 하루 목표인 230킬로미터를 꼬박 걸었지만 이번에는 15킬로미터의 짧은 거리를 느릿느릿 걸었다. 걷다가 아내의 발가락이 꼬부라지고 오그라들면주저앉혀 주물러 주느라 차를 탄 날도 있다. 작가는 담담한 심정으로 읊는다.
‘느림보 달팽이가 하루 10미터를 갔다면 그것도 완벽할 삶이 아닐까’라고.
남편보다 먼저 퇴직한 사모님은 다양한 취미 활동과 모임에 열성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활달한 성격과 마음 품이 넓은 분한테 왜 몹쓸 병이 찾아왔는지. 무엇이든 늘 함께하던 부부 중 어느 한쪽이 건강을 잃게 된다면 얼마나 허망할까. 전처럼 함께하지 못한다는 진단에 눈앞에 장막을 드리운 듯 캄캄했을 테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 추천의 끈을 놓지 않고 스러지려는 아내를 일으켜 세워 다시 한번 여행길을 계획한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나는 그냥 놔두고, 이제는 당신을 위해 사세요.”
남편의 눈물겨운 희생이 미안해서, 남편의 눈물겨운 사랑이 안쓰러워서 건넨 아내의 말이 가슴을 저릿하게 한다.
도대체 파킨슨의 정체는 무엇인가. 도파민 결핍으로 신체 운동 기능과 감정에 변화가 나타나는 질환이라는데. 노화의 과정에서 생기는 퇴행성 뇌질환으로써 인지능력에 이상을 보이는 치매와는 달리 운동능력에 이상을 보인다고 한다. 명확한 원인을 알 수 없고 뾰족한 치료 방법도 없으면서 만성 진행형이라니. 물론 약물이나 운동, 재활치료가 있으나 합병증 위험에노출되기 때문에 두려운 병이다.완치는 어렵고병세가 느리게 진행되기만을 바랄 뿐이라니 첨단을 걷는다는현대 의학 기술이 무색하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환자 가족들의 글이 컴퓨터 화면을 가득 메웠다. 스스로 보행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환자의 모습이 보였다. 몸이 경직되고 마음이 위축되는 환자에게 삶의 의지를 심어주려는 댓글들이 물결을 이룬다. 지리멸렬한 투병 속에서 맞닥뜨린두려움과 자포자기에 용기를 전하려는 천사들의 격려가 줄을 잇는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치료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나누는 모임도 여럿 있다. 슬픔을 나누어 반으로 줄이기 위해 소통과 교류에 열심인 가족들의 헌신에 코끝이 찡하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병은 예고 없이 누구한테나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 오늘 씩씩하다고 해서 자만하지 말고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겠다. 모든 병의 근원인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채움'보다는 '비움'에 비중을 두는 것이 좋겠다. 뇌한테 좋은 것을보여주고,좋은 생각을들려주고 휴식을 준다면 뇌도 그만큼 보답을 해주지 않을까.
책은 서점에는 내놓지 않아 메일로만 주문할 수 있다. 수익금 전액을 파킨슨병 환우한테 기부한다고 하니 카지노 게임 추천의 씨앗 하나 보태는 심정으로 주문부터 해야겠다. 언제나 사람을 좋아하고 예쁜 말을 해주며 성실하게 살아온 카지노 게임 추천이 조금이라도 덜 힘드셨으면.무한한 가족 사랑 안에서 병세가 달팽이처럼 아주 느릿느릿 진행됐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