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과 팀최마존(더클래스,2025)
공정은 가진 자의 잣대로 재는 게 아닙니다. 재력, 권력, 매력을 가진 자는 함부로 공정을 말하면 안 됩니다. 가진 자들은 별생각 없이 키 차이가 나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의자를 나눠주고 공정하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그건 그저 공평에 지나지 않습니다. 키가 작은 이들에게는 더 높은 의자를 제공해야 비로소 이 세상이 공정하고 따뜻해집니다.
공평이 카지노 쿠폰을 만나면 비로소 공정이 됩니다. 카지노 쿠폰이 공평을 공정으로 승화시킵니다. 저는 모름지기 서울대인이라면 누구나 치졸한 공평이 아니라 고결한 공정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선배들은 입으로는 번드레하게 공정을 말하지만 너무나 자주 실천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만들어갈 새로운 세상에서는 종종 무감각한, 때로는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밀어붙이는 불공정한 공평이 아니라, 속 깊고 따뜻한 공정이 우리 사회의 표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38쪽)
1.
카지노 쿠폰(良心)이란 개념은 맹자의 것이다. 맹자는 마음의 철학자다. 그는 유교의 근본, 인간의 내심에 네 가지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惻隱之心], 부끄러워하는 마음[羞惡之心], 양보하는 마음[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是非之心]. 이 네 개의 마음[四端]을 잘 보살피면 사랑과 정의와 예의와 지혜가 넘치는 훌륭한 인간이, 아름다운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이 마음 하나를 간직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수양이며, 이 마음을 놓치지 말라고(求放心), 이 마음을 잘 조종(操心)하라고 충고했다. 그런 마음은 없다고 말하지 말고, 그런 마음을 갖지 않겠다고 자포자기(自暴自棄) 하지 말라고 강변했다.
2.
21세기의 진화생물학자 최재천이 <카지노 쿠폰이란 제목으로 책을 냈다. 카지노 쿠폰은 생물학적 진실인가? 카지노 쿠폰은 진화의 산물인가? 카지노 쿠폰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나? 뭐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그리하여 구입하여 읽었다. 책은 7편의 카지노 쿠폰이야기(방송을 글로 푼 글)와 서문 격에 해당하는 <차마, 어차피, 차라리가 실려 있다. 그리고 책으로 내면서 쓴 팀최마존의 해설이 실려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완전히 새로 쓴 글이 아니라, 최채천의 음성을 글로 바꾼 글이었던 셈.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주제가 '카지노 쿠폰'이었던 셈. 이전에 들었던 동영상도 있고 처음 듣는 동영상도 있다. (글 뒤에는 해당 영상을 볼 수 있는 큐알코드가 실려 있다.) 소리와 글자를 한꺼번에 듣고 볼 수 있다.
3.
물론 음성을 글로 바꾸면서 다듬고 보충했지만, 완전히 새롭게 쓴 글은 서문 <차마, 어차피, 차라리이며, 이 글이 카지노 쿠폰에 대한 최재천의 메시지를 가장 정확히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일종의 고백서이기도 하다.
"나는 솔직히 비겁한 사람이다. 신혼 시절 아내에게 비겁하다는 꾸지람을 참 많이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어려서 엄한 아버지 아래서 큰 아들들이 대체로 비겁한 편이다. 무엇보다 사과하기를 꺼린다. 엄한 아버지한테 잘못을 자백하면 너그러이 감싸주시기보다는 비슷한 실수를 저지를 때마다 자백이 빌미가 되어 벌의 강도가 점점 더 세어진다는 걸 체득했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깔끔하게 사과하면 쉽게 끝날 일일 줄 뻔히 알면서도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대신 어제보다 오늘 더 잘하려 애쓰고 오늘보다 내일 더 잘하려 노력한다. 그렇게 비겁하던 내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제법 용감한 일을 여러 차례 저지르며 살았는지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할 따름이다." (16쪽)
카지노 쿠폰은 용감한 자의 산물이 아니다. 비겁한 자에게도 카지노 쿠폰은 있다. 생물학자 최재천은 호주제가 생물의 세계에서도 없고, 인간사회에서도 아주 드문 제도이며, 만약에 호주제가 필요하다면 당연히 호주는 암컷일 것이라고 생물학적 현상을 이야기한 것이 빌미가 되어 호주제 논쟁이 본의 아니게 끼어들게 된다. 당시 호주제 폐지가 여성계의 오랜 숙원인데, 남성 최재천이 동의한 꼴인 셈. 그때 최재천은 이렇게 말한다. "차마 외면할 수 없고, 어차피 할 일이라면 차라리 온몸으로 덤벼들자. 차마... 어차피... 차라리...."(20쪽)
그리하여 최재천은 자신이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어차피 자신이 할 일이라면 차라리 자신이 해야겠다는 그 마음을 '카지노 쿠폰'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이렇게 고백한다.
"그렇다. 카지노 쿠폰.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내 안의 깨끗한 무엇', 바로 카지노 쿠폰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카지노 쿠폰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한다. 카지노 쿠폰은 내심의 가치적 또는 윤리적 판단은 물론 세계관, 인생관, 주의, 신념 등을 포함하는 심성으로서 그 형성과 유지에 이어 실현에도 자유가 주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이다. 카지노 쿠폰을 규제하면 남몰래 어기며 내심 불편하더라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 들키지 않는다면. 그러나 카지노 쿠폰에 자유를 허락하면 모든 책임이 다 내게 쏟아진다. 그래서 훨씬 더 무겁고 무섭다."(24쪽)
4.
최재천의 <카지노 쿠폰을 읽으며, 우리 사회는 얼마나 카지노 쿠폰을 지키고 살아가고 있는지 반추하게 된다. 그리고 한숨이 절로 새어 나온다. 우리는 연일 카지노 쿠폰의 털 달린 괴물 같은 고위공직자들을 목격하고 있다. 카지노 쿠폰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자들이 우리 사회 권력을 지배하고 조종하고 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만천하에 알리고 있다. 그러다가도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카지노 쿠폰을 지키려는 국민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에 가슴이 녹여지기도 한다. 안도의 한숨을 쉰다.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명예는 밖으로 나타난 카지노 쿠폰이며, 카지노 쿠폰은 안에 깃든 명예이다." 나는 시민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오늘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생각한다. 맹자가 이야기한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을 가슴에 품고 내 할 일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