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점심 드셨어요?”
“그래, 은서구나. 너는 점심 먹었냐?”
흰머리는 사흘이 멀다 하고 살가운 목소리로 안부를 묻는 며느리의 전화를 받았으나 썩 달갑지는 않았다. 머릿속에는 얼마 전에 며느리가 했던 말만 비수처럼 박혀 있기 때문이다.
“며느리가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지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야? 살갑게 전화까지 했다면 훌륭한 며느리고만.”
꽁지머리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쏘아댄다.
“그러니까 말이야. 그런 전화라도 걸어주는 며느리라도 있어 봤으면 좋겠다.”
찰랑머리도 거들고 나선다.
"그래, 알았다. 술이나 한 잔 따라 봐라."
흰머리는 조용히 술잔을 들었다.
흰머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들이나 며느리나 모두 S대 공대 박사 출신으로 우리나라를 먹여 살린다는 기업의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억대 연봉을 받고 있으니 둘이 합하면 웬만한 중소기업 수준이다. 그런데도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한다. 소위 '딩크족'으로 살겠다고 한다.
"그게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하는 조건이라고 하던데."
콩지머리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딩크족이라도 괜찮으니 우리 아들이 결혼만 하면 좋겠다. 비혼주의가 다 뭐다냐? 나참,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 비혼을 선언하면 친구들이 축의금을 준단다."
찰랑머리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 은서라고 했지? 내가 그냥 반말로 할게. 괜찮지?"
흰머리는 결혼하겠다고 인사를 온 며느리 후보감을 앉혀놓고 비장하게 물었다.
"네, 그럼요."
"은서 너는 민석이 아내가 되려는 거냐, 아니면 우리 가족이 되려는 거냐?"
흰머리는 몇 번을 망설이다가 물었다. 사실 어떻게 답을 해도 반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물었다.
"아버님, 저는 민석 씨와 결혼하는 거지만, 그건 결국 아버님 가족이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족의 일원으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족하지만 잘 가르쳐 주십시오."
"그래 고맙다. 내가 문제가 많았지만 어쨌든 가족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고 보니 가족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고 있어서 물어봤다. 너희들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기를 바란다."
가정을 쪼개야 하는 아픔을 겪은 흰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마음 한구석이 늘 허전하였다.
"야, 그러려니 하고 살자. 남은 날은 우리도 좀 편하게 살아보자."
찰랑머리가 흰머리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럼, 그럼 그렇고 말고. 우리도 자식 놈들 걱정하지 말고 좀 편하게 살아보자."
꽁지머리는 젓가락으로 돼지고기 수육을 한점 집어 올리며 자조적인 목소리를 뱉어내었다.
흰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며칠 전 아들, 며느리가 저녁을 먹자고 해서 아들집으로 갔다.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며느리가 좋아하는 와인도 한 병 사가지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아들 집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아버님, 그간 안녕하셨어요?"
"오, 그래 너희들도 잘 지냈지?"
"그럼요 저희들이야 잘 지내고 있죠."
아들의손을 잡고 식탁으로 가서 앉았다.
며느리가 준비한 감바스와 뵈프 부르기뇽은 참 부드럽고도 입안을 감싸는 맛이었다. 와인잔을 부딪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잔이 몇 순배를 돌아 얼굴이 불콰해지고, 마음도 상당이 무디어졌다. 흰머리는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야, 은서야,"
흰머리는 술기운을 빌어 은서를 불렀다.
"예, 아버님, 말씀하세요."
"어, 그러니까 말이야, 결혼한 지 1년이 지났는데 아직 좋은 소식은 없는 거냐?"
흰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며느리 눈치를 보며 은근슬쩍 물어봤다.
"아버님, 기대하지 마세요. 저희는 딩크족으로 살기로 했습니다."
술집여자가 시원한 콩나물국을 끓여 내왔다.
"속 시원하게 한 그릇씩 마셔. 찰랑머리 말대로 자식 걱정하지 말고 우리도 좀 편안하게 살아보자. 흰머리야 너무 그러지 마."
"야 술집여자야, 너도 한 때 며느리 입장이었으니까 말해봐라. 같은 말이라도 좀 돌려서 말했으면 내가 이렇게까지마음이 상하지 않았을 거다."
"며느리가 '아버님, 노력하고 있으니까 기다려 주세요' 이렇게 말했으면 좋겠다는 거지?"
술집여자는 답답하다는 듯이 소주잔을 들어 털어 넣고는
"며느리가 현명하네.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해야 네가 다시는 물어보지 않을 거라는 것을 다 계산하고 말한 거고만. 말을 돌려서 했다면 흰머리 너는 은근한 기대를 품을 것이고, 계속해서 물어볼 거잖아."
술집여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맞아, 며느리가 확실하게 못을 박았구먼. 흰머리야, 그렇게 받아들여. 아이들은 아이들 생각대로 사는 거야. 나는 아직 아들 장가도 보내지 못했지만, 그것도 비혼을 선언했지만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살기로 했다."
찰랑머리는 눈물이 맺히는 것을 숨기려고 얼른 탁자 밑으로 고개를 숙였다.
"야들아, 니들은 그래도 그놈의 아들들이 서울에서나 살고 있지. 우리 아들놈은 미국에서 살고 있고, 일 년에 한두 번 전화하는 것이 전부다. 내 몸 바쳐 키워놓았지만, 그래서 서운하지만 그래도 어쩌겠냐. 그저 잘 살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도 나는 부모이니까. 술이나 한 잔 줘."
술집여자는 꽁지머리가 따라주는 소주를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야, 술판이 왜 이러냐. 우리 자식 놈들 이야기는 하지 말자. "
찰랑머리가 판을 흔들었다.
"그래, 그러자, 죽어야 자식 놈들에게서 벗어나지."
"나도 모르겠다. 우리 며칠 여행이나 가자."
"우리가 한참 세상 일에 열심일 때는 늙어서 이렇게 푸념이나 하고 있을 줄 어디 생각이나 했었냐? 다 부질없는 일이다. 술이나 마시자."
"마시자아아아, 하아아안 잔의 술. 마시자, 마셔버리자"
"그런데 비혼이니 딩크족이니 이런 게 다 그놈의 TV 탓이다. 시집, 장가도 안 간 연예인들 불러다 놓고 혼자 사는 것이뭔 벼슬이라고 자랑질하는 게 뭐가 좋다고 방송을 하느냐 말이야. 이혼한 연예인들 앉혀놓고 시시덕거리는 것만 내보내고 있으니 그렇게 되는 것 아니냐고. 정말 미치겠다. 어디 가서 욕이나 실컷 했으면 좋겠다."
꽁지머리가 볼멘소리를 토해냈다.
"누가 아니래. 꼭 못된 것만 보여주고 있잖아. 뉴스에서도 딩크족의 비율이 늘어가고 있다고 떠들고, 지나가는 젊은이들 불러 세우고 결혼하지 않겠다는 인터뷰나 하고, 출산하지 않는 가구가 늘어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으니, 젊은애들이 보고 배우는 거 아냐."
흰머리는 이미 술이 취해버린 듯했다.
"야, 나는 내 아들놈이 딩크족이어도 좋으니 결혼은 했으면 좋겠다. 비혼을 선언하고 축의금도 받았다니까. 어쩌면 좋냐."
찰랑머리는 머릿속으로 파고드는 아들의 얼굴을 자꾸만 밀어내고 있었다.
"자아, 떠나자. 동해 바아아아다로오오오오.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자아아압으러."
흰머리는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늙은이들의 술판은 그렇게 무너지고 있었고, 늙은이들의 마음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