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아무 말 대잔치, 혹은 아무 말 대환장 파티!
"오늘도 즐겁게 지내고 와~"
아이가 등교할 때 나는 항상 이렇게 인사한다.
물론 속으론 '차 조심해라'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친구들과 싸우지 말아라' '급식 골고루 먹어라' '하교 후 바로 집에 와라' '군것질 많이 하지 말아라' '집에 오면 바로 또또 산책시켜 줘라' 하고픈 말들은 많지만,
무슨 말이든 잔소리로 변환되는 필터를 낀 사춘기 시기이기도 하고, 아침엔 기분좋게 보내자라는 마음에참고 또 참는 것이다.
예전에 흥미롭게 봤던 콘텐츠에서 일상생활에서 쓸모가 없을 것 같은 수학을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바로 논리적 사고를 기르기 위함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산수도 수학도 잘하지 못하는 나는 논리적 사고가 부족하다.논쟁도 토론도 싸움도젬뱅이다.
어느 순간 회피를 가장한 평화주의자가 되어 버렸다. 잘 싸우지 못하니 피할 수밖에...
좋은 게 다 좋은 건 아닌데,좋은 거라 생각하자~ 그래야 속 편하다 이러고 만다.
등교를 하는 학기 중엔 서로 얼굴을 잘 보지 않으니 괜찮은데, 방학이 되어 함께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한 마디 하던 게 두서너 마디까지 하게 만든다.
그날의 사건의 발단은 '방청소'였다. 청소기를 돌리기 위해 둘째 방문을 열었는데... 자유분방함과 무질서함에 절로 속에 참았던 한숨이 나왔다. 분명 돌아오는 토요일까지 정리 정돈하겠다고, 이번에는 자신과의 싸움에 지지 않겠다던 아이는 또 자신과의 싸움에서 졌나 보다. 이번엔 두고 볼 수 없어 말이 나갔다.
카지노 게임 : 너 방 안 치워? 조만간 귀신 나오겠다.
사춘기 : 내가 알아서 할게.
카지노 게임 : 뭘 알아서 해? 알아서 한다고 하면서 알아서 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엄마 할머니 되겠다.
사춘기 : 아~ 진짜! 내 방이 이잖아! 엄마 방도 아닌데 왜 그래.
카지노 게임 : 지금 소유권 주장하는 거니? 이 집 엄마 아빠 집이야. 그리고 누누이 말했지만,너희들한테 물려줄 생각이 1도 없어. 따지면네가 빌붙어사는 거지.
사춘기 : 와~ 진짜! 치사하게, 법학 전공하신 분이 이러시면 안 되지. 법적으로 나 아직 미자(미성년자)야.
카지노 게임 : 언제는 다 컸다고 하더니, 이럴 땐 미자냐?
사춘기 : 법이 그래, 법이.
누굴 닮아 이렇게 말을 잘하는지... 그래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자칫하면 말리니까!!
방 안을 빙 둘러보고 공격할 수 있는 것을 찾는데, 그럼 그렇지 금방 눈에 띄었다.
카지노 게임 : 도대체 다 먹은 초코파이 껍질은 왜 책상에 모아 두는 거야? 누가 와서 치워주니? 청소 도우미 오셔?
사춘기 : 이거 내가 모으는 거야.
카지노 게임 : 그러니까 그걸 왜 모으냐고, 글쎄?
사춘기 : 수집하는 것도 이유가 있어야 해?
카지노 게임 : 좋아! 그럼 왜 양말은 빨래통에 안 넣고 왜 자꾸 매트리스 사이에 쑤셔놓는 건데? 코딱지만 한 집에서 세탁실까지 가는 게 그렇게 멀고도 힘든 일이냐?
사춘기 : 또또 심심할까 봐 내가 숨겨 놓은 거야. 또또가 우리 양말 찾는 거 얼마나 좋아하는데.
카지노 게임 : 남자들 군대 가야 하는 게 맞네! 거기 가면 스스로 정리하고 빨래도 해야 하고 그러잖아. 거기 가서 배우고 와야겠네.나라 지키는 것보다 그게 더 시급한 문제네. 너 꼭 군대 가야겠다!
사춘기 : 엄마, 군대를 그렇게 생각했다면 틀렸어. 군대 갔다 집에 돌아오잖아! 그럼 똑같아진대~
하... 미치겠다. 말이라도 못 하면.
카지노 게임 : 야~ 말 진짜 잘한다. 요즘 책 좀 보나 보다.
사춘기 : 엄마, 나 수능 마지막 세대인 거 알지? 수능 보려면 문학은 필수야.
카지노 게임 : 책 다 봤으면 제자리에 꽂아 놓기나 해. 원래 있었던 자리 내가 다 기억하고 있어. 너 엉뚱한 곳에 꽂아 두기만 해 봐.
사춘기 : 엄마, 그거 강박이야! 지나치면 병원 가봐야 해.
카지노 게임 : 정리정돈 안 하는 너보다는 더 나은 것 같은데.
사춘기 : 엄마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거지. 이거 다 정리된 거야. 내가 편한 대로.
그래, 그러시겠지.
카지노 게임 : 하... 너 한마디만 더 해라?
사춘기 : 아니, 민주국가에서 내가 말도 못해? 엄마 김정은이야?
카지노 게임 : 뭐어~ 김정은? 북쪽에 있는 그 김정은? 참 나, 태어나서 진짜 처음 듣는 말이다. 적어도 성별은 맞춰서 얘기해야 하는 거 아냐?
사춘기 : 그래? 그렇게 원하면 김여정으로 해.
나는 방문 밖에서 둘째 아이는 방 안에서 열띤 논쟁(?)을 펼치고 있을 때, 방관자(남편)와 관람자(큰 아이)는 눈은 당구 방송,귀는 우리의 논쟁을 듣고 있는 중이었다.
하... 어이구 우리 아들, 태어날 때부터 아프게 태어나서 애를 태우더니 이렇게 잘 커서(?) 아주 속을 태우고 있다.정말 성질이 나서... 결국 내가 가장 치사하다고 생각하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인 "너 집에서 나가!"라는 말이 목울대를 치려는 순간.더 이상은 안 되겠는지 관람자가 먼저 또또를 안고 내게 왔다.
관람자 : (또또 품에 안겨주며) 선수보호~ 선수보호~ 엄마, 엄마 혈압 생각해야 해. 또또야 얼른 엄마한테 애교 보여 줘. 틀리플 액셀(빙글빙글 도는 거~)
슬슬 눈치를 살피던 작은 아이는 남편에게 구조요청 눈빛을 보내며 말한다.
사춘기 :아빠, 나 여기서 한 마디 더 하면 집에서 쫓겨나겠지?
방관자 :아이스크림 먹을 사람? (작은아이에게) 아이스크림 사러 나가자!
결국, 이번에도 승자 없는 논쟁이 마무리되었다.
지난날을 복기해 글로 옮겨놓고 보니 유치하기 짝에 없는 '아무 말 대잔치'가 되어 버렸다.
아.. 역시 싸움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