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세풀베다 with 헤밍웨이
재규어에게 많은 감정이 이입이 되어 읽었던 소설이다.재규어가 겪은 트라우마는 '단장이 끊어지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세설신어의 일화처럼 새끼를 잃은 어미의 심정이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고통스러운 것이라면, 재규어 어미가 남편과 새끼를 모두 인간에 의해 잃는 모습은 더욱 비극적이다. 인간으로 인해 아무런 이유 없이 새끼가 죽었다. 그 어미의 심정이 어땠을까? 그뿐인가? 남편이 살해당하는 모습도 목도했다. 새끼 잃은 분노와 슬픔에 복수라는 칼을 휘두르며 날뛰던 재규어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건 그때였다. 그 슬픔과 분노가 결국 자기 파괴로 이어지는 과정은 너무나 안타깝다.
동물의 모성애는 어느 면으로는 인간의 모성을 뛰어넘는다. 가까이에 있는 반려견과 반려묘를 보면 충분히 인정하게 되는 일이다. 그러니 자연 속 동물들의 모성은 더욱 원초적이고 본능적일 것이다. 따라서 볼리바르 노인이 그 재규어를 죽이고 눈물을 흘린 심정이 너무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었다. 그 비극성에 대한 인식과 죄책감이 복합된 감정이었을 테니. 인간이 자연에 '군림'하려는 태도가 얼마나 많은 비극을 낳는지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태초에 신은 '다스리라' 명했건만 인간은 '군림'으로 오해한 것일까. 원래 히브리어 단어 '다스리다'는 '청지기'나 '돌보는 자'에 가까운 의미라고 한다. 이것이 지배와 착취의 개념으로 잘못 해석되어 온 것일까. 자연은 우리가 해치지 않으면 먼저 공격해 오는 일이 없다. 자연은 그저 순리대로 자연의 이치에 맞게 살아갈 뿐이다. 오직 인간만이 늘 그 이치를 깨고 자연의 순리를 벗어나 그 질서를 깨려 한다. 바벨탑 이야기는 이러한 인간의 오만함과 자연의 질서를 벗어나려는 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노인은 상어 떼로부터 청새치를 지켜내고 싶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산티아고 노인은 운다. 이 눈물과 볼리바르 노인의 눈물은 깊은 공통점과 미묘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두 노인의 눈물에는 모두 '경외'와 '존중'의 감정이 담겨 있다. 산티아고는 청새치의 우아함과 위엄에 감복했고, 볼리바르는 재규어의 야생적 아름다움과 생명력에 감동했다. 그리고 두 노인은 모두 자신들이 대면한 자연의 생명체에게 깊은 존경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눈물의 근원에는 차이가 있다. 산티아고의 눈물은 일종의 '비극적 연대감'에서 온다. 산티아고는 청새치를 잡은 사냥꾼이지만, 그 과정이 공정한 대결이었다고 느꼈고, 청새치의 살점이 상어들에게 먹히는 것을 보며 청새치의 존엄성이 훼손되는 것에 슬퍼한다. 산티아고의 눈물은 "우리는 함께 싸웠고, 당신은 가치 있는 적이었다"라는 감정을 담고 있다.
반면 볼리바르의 눈물은 더 복잡한 '죄책감'과 '회한'이 섞여 있다. 볼리바르는 단순히 생존이나 대결의 차원이 아니라, 인간 세계의 이기심과 잔인함으로 인해 파괴된 재규어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그의 눈물은 "당신의 비극은 우리 인간의 잘못 때문이다"라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두 이야기는 모두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지만, 헤밍웨이가 자연과의 '공정한 투쟁'에 초점을 맞췄다면, 세풀베다는 인간이 자연에 가하는 '부당한 침해'에 더 무게를 두었다.
이 두 작품에서 노인들의 눈물은 결국 인간이 자연과 맺는 복잡한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리라. 산티아고의 눈물은 대등한 존재 간의 존중과 경쟁에서 오는 공감이라면, 볼리바르의 눈물은 인간이 자연에 저지른 부당함에 대한 인식과 반성. 이처럼 헤밍웨이가 노인과 청새치 사이의 존중과 대등함을, 세풀베다가 인간과 재규어의 연결성을 보여주는 방식은 다르지만, 그 깊은 곳에 흐르는 메시지는 비슷하다.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는 것.
문학은 이처럼 사고와 감성을 확장시키고 더 깊은 통찰로 이끌어준다는 걸 새삼 다지게 되는 독서였다.문학을 읽어야 할 충분한 이유 아닐까.
볼리바르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문명 세계에서 겪었던 인간의 탐욕과 무질서, 그리고 제도적 폭력에 대한 염증을 느끼고 아마존 밀림 깊숙이 들어가 살기로 결심한다. 그곳에서라면 비록 외롭고 힘든 순간이 있을지언정, 최소한 거짓 없이 진실된 삶을 살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던 볼리바르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슈아르(Shuar) 족 원주민들에게 구출되어 그들과 함께 살면서 정글의 언어와 법칙을 몸으로 익히고 자연에 대한 겸손함과 경외심을 배운다. 그렇게 해서 밀림에 관해서라면 카지노 게임 사이트처럼 잘 아는 사람이 없기에 문명인들이 밀림에 들어가야 할 일이 생기면 그의 도움을 받게 된다. 슈아르 족 인디오들과 생활하면서 그는 "낮에는 인간과 밀림이 별개로 존재하지만, 밤에는 인간이 곧 밀림이다"라는 그들의 철학을 체득하게 된다.
친구 누시뇨의 죽음을 계기로 수아르 족을 떠나 엘 이딜리오로 돌아온 볼리바르는 치과의사 루비쿤도 로아차민이 가져다주는 연애소설을 읽으며 삶의 낙을 찾는다. 글을 읽는 것도 서툴고 쓰는 것은 더구나 미숙하지만, 오직 연애 소설만큼은 몰입하여 깊이 읽어낸다. 그는 "연인들이 사랑으로 인해 고통을 겪지만 결국은 해피엔드로 끝나는 연애 소설"을 열정적으로 읽으며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평화로운 노인의 일상은 문명의 침입으로 깨어진다. 백인들의 무분별한 개발과 침략으로 밀림은 황폐화되고, 원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어간다. 그러던 중, 백인 시체가 발견되고 마을의 뚱보 읍장은 '야만인'인 원주민들 중에서 범인을 찾으려 하지만, 노인 볼리바르는 시체를 보고 사람이 아닌 동물의 소행임을, 백인들의 총격으로 새끼를 잃은 어미 재규어가 복수하듯 인간을 노리고 있음을 간파한다. 밀림을 가장 잘 아는 볼리바르는 마지못해 숲 깊숙이 들어가 재규어를 찾아 사투를 벌이고, 재규어에게 끝내 총을 겨눈다. 그러나 그는 이 승리가 결코 영광이 아님을 깨닫는다. "생각보다 훨씬 큰 몸집을 지닌 짐승의 자태는 굶어서 야위긴 했지만 너무나 아름다워 도저히 인간의 상상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존재처럼 보였다. 노인은 자신이 입은 상처의 고통을 잊은 채 명예롭지 못한 그 싸움에서 어느 쪽도 승리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부끄러움의 눈물을 흘렸다." 그토록 존경했던 숲의 존재를 스스로 죽였다는 죄책감과 상실감에 잠긴 볼리바르는 연애 소설책이 있는 집으로 향하며 소설은 끝이 난다. 아마도 볼리바르 노인은 연애 소설의환상적인 세계에서 위안을 구하려 했던 건 아닐까.
볼리바르 노인에게 재규어는 위험하고 공격적인 맹수가 아니라, 숲의 질서를 대표하는 신성한 존재이다. 그래서 그는 재규어를 두려워하면서도 존경한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재규어는 분노하게 되었고, 볼리바르는 그 분노의 화살을 피할 길 없이 맞서야 했다. 소설이 절정에 이를 때, 볼리바르 노인은 재규어와의 대결에서 불가피하게 방아쇠를 당기지만 재규어를 해쳤다는 사실에 대해 깊은 죄책감을 느낀다. 그가 떠안은 ‘살아남았다’는 안도와 ‘죽였다’는 상실감이 교차하면서, 자연이 인간에게 지녔던 신뢰가 깨진 순간을 상징하는 듯 보였다. 재규어와 볼리바르는 둘 다 숲을 안식처로 생각한다. 재규어는 자기 영역을 지키려 했고, 볼리바르는 침입자로서의 죄책감과 자연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사이에서 갈등했다. 둘은 같은 숲에 머무르지만 인간이라는 존재와 동물이라는 존재가 충돌할 수밖에 없었고, 그 운명의 부조리는 소설 전반을 가로지른다.
인간에게 죽음이란, 대부분 피하고 싶은 공포나 패배 같은 감정과 연결되지만 볼리바르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재규어의 눈을 통해 죽음을 ‘필연적 순환’으로 인식하는 자연의 법칙을 깨닫는다. 그래서 재규어가 눈앞에서 쓰러지는 순간, 그가 느끼는 것은 단순한 승리나 안도감이 아니라, “이 생명이 이제 스스로 끝을 맺으려 하는구나”라는 숙연함과 연민이었다. 볼리바르는 재규어를 쏜 뒤에 큰 죄책감과 함께, 재규어의 죽음이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비극적 필연을 통감한다. 그리고 그 죽음의 본질이 ‘처절한 복수의 마무리이자 존엄의 선택’이었다는 사실에 경외심마저 느낀다. 이것이 작품에서 인간과 자연이 맞부딪힌 끝에 보이는 “죽음”의 결말로, 카지노 게임 사이트 스스로도 “자연은 우리와 달리 스스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장면이다.
소설의 결말은 열려 있다. 노인이 평화롭게 연애소설을 읽으며 여생을 보냈는지, 아니면 끝내 물질문명의 침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는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겨진다. 이 열린 결말은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직면한 딜레마를 반영한다. 완전한 탈출은 불가능하지만, 우리는 노인처럼 인간성의 아름다운 측면—사랑, 공감, 예술—에서 위안을 찾을 수 있다.
루이스 세풀베다의 이 아름다운 단편은 우리에게 묻는다. 문명의 진보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었는가? 그리고 그 상실 속에서도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본질적 가치는 무엇인가? 노인처럼 연애소설에 몰입하는 순간, 우리는 잠시나마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엿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칠레 출신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영화감독이었다. 그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특히 환경 문제와 사회 정의에 관한 강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세풀베다는 정치적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했는데,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 시절에는 대통령 경호원으로 일했다. 1973년 피노체트의 군사 쿠데타 이후에는 구금되었다가 국제 앰네스티의 도움으로 풀려난 후 정치적 망명을 떠났다.
망명 생활 동안 그는 여러 나라를 떠돌았으며, 그린피스의 활동가로도 일했다. 이러한 경험은 그의 작품에 환경 보호와 사회 정의에 대한 강한 메시지로 반영되었다.
1988년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고래를 읽지 않는다』 출간
1992년 『연애 소설 읽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발표
1996년 『파타고니아 익스프레스』 출간
2008년 『그림자의 끝』 출간
세풀베다는 2020년 4월, 코로나19로 인해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에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 원주민의 권리, 그리고 사회 정의에 대한 강력한 목소리로 기억된다.
먼저 싸움을 건 쪽은 인간이었다. 금발의 양키는 짐승의 어린 새끼들을 쏴 죽였고, 어쩌면 수놈까지 쏴 죽였는지도 몰랐다. 그러자 짐승은 복수에 나섰다. 하지만 암살쾡이의 복수는 본능이라고 보기에 지나치리만치 대담했다. 설사 그 분노가 극에 달했더라도 미란다나 플라센시오를 물어 죽인 경우만 봐도 인간의 거처까지 접근한다는 것은 무모한 자살 행위였다. 다시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뇌리에는 어떤 결론이 스쳐 가고 있었다.
맞아, 그 짐승은 스스로 죽음을 찾아 나섰던 거야.
그랬다. 짐승이 원하는 것은 죽음이었다. 그러나 그 죽음은 인간이 베푸는 선물이나 적선에 의한 죽음이 아닌, 인간과의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싸움을 벌인 뒤에 스스로 선택하는 그런 죽음이었다.
노인은 짐승에게 다가갔다. 그는 두 발의 총탄이 짐승의 가슴을 열어 놓은 것을 보며 치를 떨었다. 생각보다 훨씬 큰 몸집을 지닌 짐승의 자태는 굶어서 야위긴 했지만 너무나 아름다워 도저히 인간의 상상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존재처럼 보였다. 죽은 짐승의 털을 어루만지던 노인은 자신이 입은 상처의 고통을 잊은 채 명예롭지 못한 그 싸움에서 어느 쪽도 승리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부끄러움의 눈물을 흘렸다.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는 틀니를 꺼내 손수건으로 감쌌다. 그는 그 비극을 시작하게 만든 백인에게, 읍장에게, 금을 찾는 노다지꾼들에게, 아니 아마존의 처녀성을 유린하는 모든 이들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낫칼로 쳐낸 긴 나뭇가지에 몸을 의지한 채 엘 이딜리오를 향해, 이따금 인간들의 야만성을 잊게 해주는, 세상의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을 얘기하는, 연애 소설이 있는 그의 오두막을 향해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볼리바르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 재규어와 맞대결하는 장면에서 함께 들으면 좋은 음악
Silvestre Revueltas의 Sensemayá
이 곡은 쿠바 시인 니콜라스 길렌(Nicolás Guillén)의 동명 시를 바탕으로 작곡된 관현악 작품인데, 본래는 ‘뱀을 제물로 바치는 주술적 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시작부터 원시적 리듬과 어두운 관현악 톤이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곡이 진행될수록 무거운 운명감과 장엄한 에너지가 차오른다. 마치 숲의 질서를 대표하는 맹수, 재규어의 그림자가 서서히 다가오는 듯한 울림이 있다.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들으면 좋은 음악(노래)
Villa-Lobos: Floresta do Amazonas, W551 - 4. Melodia Sentimen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