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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람 May 0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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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방

내가 어린 시절에는 나방을 손으로 절대 잡지 않았다. 날개에서 떨어지는 비늘가루가 눈을 멀게 할 수 있다는 어른들이 경고 때문이었다. 그래서 모기뿐 아니라 나방이 실내로 들어오면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것으로 두들겨 잡고 쓸어낸 것이 일상이었다. 그렇게 나방은 귀찮고 위험한 존재였다.


혐오스러움까지 더한 나방의 존재는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여름밤에 시골길을 자동차로 달리다가 깜짝 놀라는 순간이 있다. 심상치 않게 들리는 ‘딱’하는 소리 때문이다. 나방들이 자동차 불빛을 보고 달려들어 부딪히는 소리다. 다음날 낮에 살펴보면 차 표면에 나방 사체가 터져 오염되거나 덜렁덜렁 매달려 있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볼썽사납고 불결하다. 죽을 줄 모르고 무모하게 달려든 행동도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나방은 어디에나 많다. 화려한 도시는 그나마 흩어져 있으나 불빛이 드문 시골은 어쩌다 자동차가 나타나면 달려든다. 도시에도 가로등 불빛에는 어김없이 나방이 몰려있다. 아침이 되면 길바닥에 날벌레들의 사체와 섞여 수북이 쌓여있다.


‘나방은 왜 집요하게 불빛에 몰려들까?’ 오래전부터 이러한 궁금증은 인간에게 여러 분야에서 의문점을 갖게 한 관심사였다. 생물학적인 이유는 단순하다. ‘주광성(走光性)’이라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야행성인 나방은 달이나 별처럼 멀리 있는 불빛을 기준으로 이동한다. 그런데 가까운 곳에 인공 불빛이 나타나면 이를 길잡이 하여 날다가 지나쳐버린다. 당연히 왔다 갔다, 맴돌게 되고 결국은 방향을 상실해 부딪혀 떨어진다. 익숙한 관성 본능의 오류가파멸을 불러온 셈이다. 그러나 이 무모한 행동이 인간에게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인간의 삶도 여러 형태의 불빛과 마주한다. 나방이 쫓는 물리적 빛이 아닐 뿐이다. 누군가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이는 성공이라는 불빛에 몰입한다. 설사 본질적인 게 희미해진다는 걸 알아도 자기 통제를 믿고 불꽃을 쫓는다. 불나방 같은 인간의 이 모습을 무모하고 어리석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불빛은 나방을 죽이지만, 빛이 없다면 나방은 날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욕망이라는 불빛이없었다면 인간도 삶을 치열하게 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불빛에 상처를 입어도 빛을 찾아 쫓는 여정은 계속된다. 생존의 본능이며 아름다운 무모함이다. 그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도전이다.


나방은 나비목()으로 나비와 같은 무리이고 우리 말이다. 나비와 나방은 전 세계 20만 종 이상으로 약 90%가 나방이다. 둘을 구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두 가지 사실이 가장 눈에 띈다. 나비는 주로 낮에 나방은 밤에 활동한다. 나비는 앉아 있을 때 날개를 접어서 세우지만, 나방은 접지 않고 몸통을 편평하게 덮는다.

나방은 밤의 불청객으로 해로운 존재로 여겨지나 유익한 점도 많다. 나비처럼 밤에 꽃가루를 옮겨 식물의 수정을 돕는다. 유충과 성충은 먹이사슬의 한 단계로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어 생태계 유지에 필요하다. 특히 누에나방은 인류의 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다. 누에는 옛날부터 사육된 곤충이다. 애벌레가 고치를 만들 때 뽑은 명주실로 비단을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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