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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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OB Dec 31. 2024

카지노 쿠폰 죽지 않아

살아. 사는 거야. (2)


“나는 커서 멋진 어른이 될 거야!” “나는 착한 아이가 될래요!” “나는 악당을 무찌르고 모두를 구하는 카지노 쿠폰이 될 거예요!” 동네 어른들은 아낌없이 웃음을 보내줍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선언에 박수도 쳐주고,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기특하다며 떡볶이를 사주기도 합니다. 그때는 매콤한 떡볶이를 먹으며 그렇게 멋진 어른이 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착한 어른이 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선한 마음을 가지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악의 반대편에서 사랑을 흘려보내고, 생명을 생각하고, 이웃과 함께하며, 평화를 이루는 그런 카지노 쿠폰이 되면 된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몸집이 어른처럼 되고 나서 알았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품었던 그 멋짐과 착함과 좋음과 선함은 삶과 동떨어진 먼지 쌓인 교과서 이상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요.




“파악해 봐.” 또 시작됐습니다. 제자리에 앉아 넌더리를 치는 순간에도 상사들은 떨어진 호령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상황을 조사하는 전화가 이곳저곳에서 오가고, 키보드 소리가 사납게 들려오고, 이내 프린터는 차갑게 작동합니다. 금세 숫자와 글자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상황 보고서가 제 앞으로 나왔습니다. 역시나 흠잡을 것 없는 깔끔한 보고서더군요.


“이 숫자가, 이 통계가, 이 글자가, 이 보고가 정말 그 현장을 말해줄 수 있을까요.”


상사는 제 말에 저를 빤히 쳐다보더니 입을 굳힌 채 어서 보고하러 들어가라고 손짓합니다. 저는 깔끔하게 정리된 보고서를 들고서도 선뜻 회의실 안으로 들어서질 못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보고서엔 숫자와 글자만 보일 뿐, 내가 아는 카지노 쿠폰와 카지노 쿠폰가 사는 현장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보고와 숫자가 현장을 다 담을 순 없다’고, ‘현장에 단 한 번이라도 내려와 함께해 달라’고, ‘우리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목 놓아 외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역시나 핀잔이었습니다. 결국 제 앞으로 다시 등장한 것은 드러나지 않는 돌봄은 모조리 삭제되고, 드러나는 행사만이 빼곡히 정렬된 기획안뿐이었죠. 숨이 턱 막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 개인과 한 생명은 대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자라나고 있는 걸까요.


그러나 이내 새로운 기획안을 향해 쏟아지는 박수갈채는 제가 틀렸다고 이야기해 줍니다. 넌 아직도 요령이 없다고, 넌 아직도 순진하냐고,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온 곳에서 박수가 쏟아집니다. 그 박수 아래 제 안의 동심은 또다시 무너지고, 괜한 죄책감에 마음 또한 뭉개지고, 저는 그렇게 하늘만 바라보는 몽상가가 됩니다. 하늘을 보며 새로운 삶의 터전을 꿈꾸기보다 이 땅에서의 먹고 살기를 걱정하라는 선배들의 조롱 섞인 말에 온몸이 파르르 떨립니다. 어렸을 적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겠다고 했을 때 받았던 박수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아니,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자들에게 하늘은 무엇을 하고 계시던가요. 하늘은 하늘의 길을 가는 자의 편에 서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요. 세상은 선을 향해 가는 사람을 환영해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요. 하늘을 향해 가는 자들에게 형통함과 부를 허락해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요. 이 땅의 박수와 응원이 무언가 잘못된 게 정녕 아니란 건가요. 울음을 조용히 눌러 삼키니, 조용한 울음이 제 온몸을 세차게 흔들었습니다.




깊은숨을 내쉬며 다시는 하늘을 바라봄으로 조롱을 당하지 않으리라 한껏 다짐했습니다. 그 결의에 맞게 떨리는 몸을 추스렀습니다. 이내 비장한 표정으로 사무실을 나섰습니다.

“괜찮으세요?”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한 카지노 쿠폰가 제게 다가왔습니다. 눈썹이 한껏 기운 것이 얼굴에 측은함이 가득합니다. 선배들에게 한 소리 듣던 모습을 봤던 걸까요. 재빨리 비장한 표정을 풀고 말했습니다.

“그럼! 어서 가자.”

카지노 쿠폰는 유연해진 제 표정을 본 후 안도의 한숨을 쉬며 세상 밝은 빛을 지어 보입니다. 맑은 하늘 따사로운 햇살을 맞듯 코끝이 시려왔습니다.

“00야, 먼저 갈래? 금방 뒤따라 갈게!”

속절없이 빛나는 카지노 쿠폰를 먼저 보내고 저는 억울한 심정으로 하늘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어느 방향으로 발을 내디뎌야 할지 모르겠는 제게 주어진 숙제는 ‘독립’(獨立)입니다. 어느 누구도 제게 답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제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습니다. 어떤 길을 선택하고 어떤 길에 책임을 질지는 모두 저의 몫입니다. 흘러가는 기류에 달관한 채 세상은 으레 그런 것이라고 받아들여도 저를 질책할 이가 따로 없고, 어둠의 반대편에서 선을 지키는 저항을 한다 해도 눈에 보이는 어떤 보상이나 보은이 따로 없습니다. 그 어떤 선택을 해도 된다는 것, 그 사실이 지금의 제게는 너무 위태롭기만 합니다.


하늘을 우러 본 고개를 떨구자 멀어져 가던 카지노 쿠폰와 눈이 맞았습니다. 어렸을 적 저는 어떻게 선을 향한 걸음을 굳게 다짐했을까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이니, 카지노 쿠폰가 갔던 길을 다시 돌아 제게 옵니다.


“이따 봐요!”


제 취향은 아닌 다크 초콜릿을 건네고 신나라 뛰어가는 카지노 쿠폰의 뒤에서 저는 카지노 쿠폰가 사라질 때까지 카지노 쿠폰의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멋짐과 착함과 좋음과 선함을 꿈꾸는 동심이 가장 위대하다는 생각과 함께, 그 동심을 지키기 위한 어른들의 보이지 않는 투쟁을 카지노 쿠폰의 뒤에서 발견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아이가 품은 꿈은 어른의 싸움이었습니다.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어른이 싸워주고 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동심을 품을 수 있게 싸워주는 어른이 있었습니다. 아이와 어른이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함께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꿈 아래 함께 있었고, 꿈 아래 나와 네가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뒤에서, 아이가 건넨 다크 초콜릿을 통해 저는 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 뒤에도 제 꿈을 함께 꾸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요. 아이의 뒤에서 아이보다 더 큰 제가 아이의 동심을 위해 싸워주고 있듯이, 제 뒤에서 저보다 더 큰 이가 저의 꿈을 위해 싸워주고 있었습니다. 제 안에 꿈과 동심이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이 제 뒤에서 저와 함께 치열하게 투쟁하는 이름 모를 존재들을 보여주었습니다.


등 뒤를 맡길 수 있는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우리는 선을 향하여 기꺼이 발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제 어릴 적 어떻게 선을 향한 걸음을 굳게 다짐했는지는 등 뒤를 맡길 수 있는 어른들이 참 많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박수가, 그들의 칭찬이, 그들의 격려와 그들이 사주는 떡볶이가 모두 제 등 뒤 어른들의 투쟁이었죠. 어른이 있다면, 카지노 쿠폰는 동심을 품을 수 있습니다. 어른이 있어야, 카지노 쿠폰는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어른이 있기에, 카지노 쿠폰가 꿈을 꿀 수 있었던 겁니다. 카지노 쿠폰의 동심에 어른이 함께하고 있었던 겁니다.


물론 꿈을 품는다고 그 꿈이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겠습니다. 함께 싸우는 어른이 있다고 다 이길 수 있으리라 확신할 수도 없습니다. 그 작은 동심이 세상에 사랑을 퍼트리고 생명을 흘리며 이웃과의 평화를 만연하게 만들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리 소망하고 기대하기엔 제 꿈도, 한 사람의 동심도, 우리의 힘도 너무 작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지노 쿠폰은 적은 이웃들의 작은 응원 속에서 꿋꿋이 살아갑니다. 죽을 것 같은 위기에도 그 적은 이웃들과 작은 응원에 카지노 쿠폰은 살아납니다. 그리고 살아난 카지노 쿠폰은 또다시 선을 위해 싸웁니다. 생명과 사랑과 웃음이 넘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포기치 않고 악의 반대편에 섭니다. 그게 카지노 쿠폰입니다. 그게 생명이 넘치는 세상을 만드는 카지노 쿠폰입니다.



아이가 건네준 다크 초콜릿을 입에 머금으며 쓴맛을 되새깁니다. 쓴맛 사이사이 미세한 단맛도 분명 느껴지더군요. 단맛을 느꼈을 때,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다시 멋진 어른이 될까 합니다. 다시 함께 꿈을 꿔볼까 합니다. 다시 악의 반대편에서 사랑을 흘려보내고, 생명을 생각하고, 이웃과 함께하며, 평화를 이루는 카지노 쿠폰이 돼 볼까 합니다. 등 뒤에 함께하는 이가 있으니 말입니다. 얼마 안 되는 적은 존재들이겠지만, 귀에 들릴까 싶은 작은 응원들이겠지만, 그 적은 존재와 작은 응원이 있는 한 선을 위해 싸우는 카지노 쿠폰은 죽지 않습니다. 세상 모든 마음속 생명을 위해 싸우는 카지노 쿠폰들이 끝까지 지지 않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함께 싸우고 있습니다. 어느 길로 갈지 선택도 책임도 제 몫인 이 길 위에서 다시 용기를 내봐야겠습니다. 다시 걸어봐야겠습니다.


“큰 아들은 화가 나서,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나와서 그를 달랬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이렇게 여러 해를 두고 아버지를 섬기고 있고, 아버지의 명령을 한 번도 어긴 일이 없는데, 나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삼켜 버린 이 아들이 오니까, 그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아버지가 그에게 말하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으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다.'” (눅15:28-31)


*컴퓨터나 태블릿으로 글을 열면 사진 오른쪽 끝 카지노 쿠폰의 아버지가 보입니다.


2024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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