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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나 Apr 18. 2025

빨강 앵두와 카지노 게임 사이트

음미하다. 31

산수유 노란 꽃이 보이는가 싶더니, 매화꽃이 스치고, 벚꽃 망울이 여기저기 잔뜩 힘을 모으는가 싶더니, 팡팡팡 피어났다가 눈처럼 떨어지고, 이내 연둣빛 고운 이파리들을 피워내는 봄이다. 언제부터인지 산수유, 매화, 벚꽃에게 봄소식을 먼저 듣는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살구꽃, 복숭아꽃, 앵두꽃이 봄의 시작이다. 시골 우리 집 앞마당 꽃밭에는 앵두나무가, 뒷마당 텃밭에는 살구나무가, 근처 친할머니 집에는 복숭아나무가 있었다. 봄이 되면 살포시 피어나던 온갖 농도의 분홍 꽃들은, 나를 동화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었다.


바람에 속절없이 흩날리는 꽃잎들은 별빛처럼 황홀했고, 후두둑 떨어지는 꽃잎들을 모아서 그 위에 올라타면 뭉게구름 가득한 하늘까지도 닿을 것 같았다. 그렇게 분홍 꽃들에만 빠져 있느라, 앵두나무 바로 옆에 있던 흡사 메주콩과 비슷한 색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 꽃에는 그 어떤 눈길도 주지 않았었다. 지금이야 카지노 게임 사이트 꽃에도 마음이 흠뻑 가지만, 어린 눈에는 분홍꽃만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이름도 웃겼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라니! 파리의 똥처럼 작은 점이 있어서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라고 했다더니, 아니나 다를까 열매에 작은 점들이 많기도 했다.


고등학생이 되어, 이름도 요상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 보리수라는 것을 알고 꽤나 충격을 받았었다. 부처님 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하는 상상의 나무인 줄 알았는데, 우리 꽃밭에 있던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 보리수였다니! 어쩌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그 고결한 보리수에,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밤이면 재래식 화장실에 얼굴을 비춘다는 귀신이 무서워서 가끔, 정말 아주 가끔 카지노 게임 사이트 나무 밑에 불경스러운 짓을 저질렀는데······. 자비로운 부처님의 용서를 믿으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의 찝찝함은 어쩔 수 없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꽃보다는 열매였다. 자칫 탁한 빨강의 덜 익은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먹으면 시고 떫은맛에 오만상이 찌푸려지지만, 맑은 빨강으로 잘 익은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무척 맛있었다. 동그랗고 단단한 앵두씨와 달리,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길쭉한 씨는 부들부들해서 껌처럼 씹는 재미까지 있었다. 동생들과 매일 따 먹어도 줄지 않던 앵두와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우리의 봄날을 맛있는 재미로 빼곡하게 채워주었다. 나무 밑에서 따 먹는 재미가 좋아, 접시라는 문명의 도구를 이용한 적은 거의 없었지만, 어쩌다 한 번씩 예쁜 그릇이 등장할 때가 있었다.


책 때문이었다. 앞선 글에서도 밝혔듯이 어린 시절 난 ‘책 따라쟁이’였다. 그런 내가 ‘효녀 심청이’를 읽어 버렸으니, 어쩌겠는가?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뛰어들어야 했다. 하지만 더 이상 책을 곧이곧대로 따라 하다 혼나던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몽골사람 시력을 자랑하는 아버지를 위해 어딘지도 모르는 인당수를 찾으러 가는 대신, 내 곁의 ‘인당수’를 찾았다. 생각 끝에 논일을 가신 부모님을 위해, 앵두와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따 놓기로 했다. 타고 난 효녀도, 맏딸 콤플렉스도, K-장녀의 책임감도 아닌, 순전히 독후감 차원이었다.


파란 바가지에 한가득 딴 빨간 앵두와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내 나름의 기준에 맞춰 세 개의 접시에 나눴다. 가장 크고 통통하게 잘 익은 건 첫 번째 접시에 담았다. 부모님 몫이었다. 남은 것 중 크고 통통하게 잘 익은 건 두 번째 접시에 담았다. 두 동생 몫이었다. 그리고 남은 것이, 내 몫이었다. 눈물겹다. 누가 보면 심청이가 환생이라도 한 줄 알겠다. 하지만 그때의 난 전혀 눈물겹지도, 심청이가 될 마음도 없었다. 그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책을 읽고 느낀 대로 실천하는 과정일 뿐이었다. 내가 정성껏 준비한 앵두와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먹고 좋아하는 가족들을 보며 뿌듯했다.부모님의 칭찬이나 동생들의 보답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칭찬을 받겠다는 의도도, 착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인식이나 의미 부여도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린아이의 순수함이어서 가능했을까? 아니면 보리수 밑에 몇 번 쪼그려 봤다고, 나름 깨달음 근처라도 갔던 것일까? 이유가 무엇이든 중요한 것은, 진심을 가득 담은 호의에는 상대의 반응에 요동치지 않게 해주는 강력한 힘이 있다는 것이다. “나처럼 이렇게 잘해주는 시어머니는 어디에도 없다. 너는 진짜 복 받은 거야”라고 말하는 시어머니가, 사실은 시집살이를 제일 심하게 시킨다는 말에 웃음이 나왔었다. 진심으로 잘해준다면, 할 수 없는 말이고,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의도가 다분한 호의는 호의가 아닐뿐더러, 갈등의 싹만 틔운다. “나는 이렇게 잘해주는데, 너는 왜 감사함도 모르고, 나한테 더 잘해주지 않는 거야?”라는 불만이 생기기 때문이다. 항간의 우스갯소리에 기대어 시어머니들만 탓할 일이 아니다.요즘 우리들은 진심은 버려둔 채, 본인이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만 내세워 인정과 칭찬, 보답 같은 대가에만 목말라하고 있다.그리고는 원하는 대가가 없으면 괴로워하느라 힘들어한다. 기꺼이 앵두와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나누어 담던 그 마음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지, 자꾸 살펴보게 되는 이유다.


참, 얼마 전 부처님은 보리수가 아니라 인도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보리수와 인도보리수는 전혀 다른 나무다. 어휴! 다행이다. 마음속 찝찝함을 털어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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