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은 객관적 기준으로 결과를 수치화하는 일이다. 만약 어떤 학생이 디자이너로 능력을 이미 갖고 있다면 같은 기준으로 다른 학생과 비교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평가의 대상이 되는 모든 학생이 카지노 쿠폰 능력에 차이가 크지 않다면 결과에 따라 완성 정도에 차이를 가릴 수도 있다. 하지만 각자의 취향은 모두 다르므로 표현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모두 같지않다. 이런 경우 단순화된 기준으로 비교하여 성적을 내는 것도 불합리하다. 또한 개인적인 발전의 정도를 구간별로 수치화하여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도 힘들다. 어떤 학생은 수업 초반에 많은 발전이 있고 어떤 학생은 수업 후반에 갑자기 발전하기도 한다. 때문에 카지노 쿠폰 수업의 결과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어렵다. 그래서 나의 은사님은 출석 비중을 많이 둬서 근면성을 성적에 반영하면 시시비비를 가리기 좋다고 가르쳐주셨다. 하지만 나는 근면성과 카지노 쿠폰의 성과는 관련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제출한 카지노 쿠폰은 좋지 않으나 근태가 좋은 학생과 카지노 쿠폰을 잘하는 친구들과 함께 밤을 새워가며 카지노 쿠폰 토의를 하고, 아침 창이 밝아 올 즈음 자신의 결과물에 상심하여 수업에 늦게 나타난 학생이 있다면 후자의 카지노 쿠폰 성과가 훨씬 우월할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근태로 카지노 쿠폰 수업의 성적을 낼 수는 없다. 하지만 결과물의 완성도가 유사하다면 카지노 쿠폰 감각을 타고난 학생보다 수업과정에 노력해서 자신의 카지노 쿠폰 능력을 향상한 학생이 교육적인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스포츠와 예술을 유사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김연아선수의 경기는 예술처럼 보인다. 피겨스케이팅의 심판은 각각의 동작에 점수를 정해 성공여부에 따라 성적을 매기기도 한다. 카지노 쿠폰도 스포츠처럼 특정한 항목에 성적을 정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과정 과정이 별 볼 일 없고 계속 카지노 쿠폰을 바꿨는데 마지막 결과물은 감동을 주기도 한다. 어떤 경우는 진행 과정은 매 시간 놀라웠지만 결과물은 아무런 감동이 없기도 한다. 카지노 쿠폰 과정에서 성적을 수치로 매길 수 있는 항목은 기껏해야 스케치 갯 수 정도 인데 이것도 각각의 스케치가 얼마나 치밀하게 카지노 쿠폰되고 예술적인 가치를 갖고 있는지 고려한다면 숫자는 의미가 없어진다.
카지노 쿠폰 수업에 성적을 내는 것은 정말 곤란하다. 그래서 외부의 평가자를 여럿 모시고 평가를 해보기도 했다. 최소한 결과물에 대한 객관성을 얻어보려고...... 하지만 외부 평가자는 작품의 모든 면을 볼 수 없다. 너무나 당연하다. 짧은 시간에 각자의 기준으로 작품을 평가하는 것은 마치 손바닥만 한 그림을 100미터 밖에서 보고 평가하는 것과 유사하다. 어떤 감정을 표현하려고 했고 어떤 과정을 겪어 완성되었는지 알지 못하면 진정한 평가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의 수업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내가 객관성을 갖고 평가하려고 노력한다. 이쁜 학생이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모든 학생을 이뻐한다. 모두 똑같이 이뻐할 수 없기 때문에 조금 덜 이쁜 학생에게는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혹시라도 학생이 거짓 노력을 했을 수도 있으니 눈을 마주치며 속마음을 읽으려 한다.
그래도 나의 평가가 틀릴 수 있으니 충분히 치사와 사과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