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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혜경 May 07. 2025

Y2K,카지노 게임 마지막날 추억

믿음의 민낯!

1999년의 12월이 시작되면서 전 세계는 보이지 않는 불안 속에서 들끓고 있었다.

밀레니엄 버그, 혹은 Y2K 문제라 불리는 사건은 세기말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컴퓨터가 2000년을 1900년으로 오인해 시스템이 마비되고, 전기가 끊기며, 항공기나 금융망까지도 오작동할 수 있다는 말들이 뉴스와 입소문을 타고 퍼졌다.

“비행기가 떨어진다”, “은행이 멈춘다”, “세계가 멈춘다”는 식의 이야기들이었다.

선진국들은 거대한 예산을 들여 시스템을 점검한다고 하고, 대부분은 별다른 사고 없이 그 밤을 넘길 것이라고들하였다.



이집트에 사는 한국 선교사들에게 이날을 준비하는 것에 대한 설명서도 한국본부에서 보내왔고, 대사관에서도 안내문과 상황 설명에 대한 소식들을 받았다.


그 당시에 인터넷이 그리 발달되지도 않았기에 전화도, 정확한 정보도 닿지 않는 그곳에서, 나와 가족에게 밀레니엄은 단순한 날짜의 변화가 아닌 생존의 문제로 다가왔다.


전기가 끊기면? 물이 끊기면?

쌀조차 구하기 어려운 이곳에서 우리 가족은 과연 그 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세상의 종말은 오지 않더라도,
사막에 있는 우리에게는 그 하루가 충분히 낯설고 두려운 밤이었다


우리가 머물던 사막 마을엔 인터넷은커녕, 신문 한 장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전화는 가끔 연결되었지만, 그것마저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통화가 되는 정도였다.

외부 소식은 사역자나 여행자들을 통해 단편적으로 들려왔고, 그 말들은 종종 소문과 걱정이 덧붙은 채 과장되어 퍼졌다.


“비행기가 떨어질 거래요.”
“전기가 끊기면 물도 못 쓰게 될 거래요.”
“은행도 마비돼서 돈을 못 찾게 된대요.”


아이들도 듣고 와서 전하는데, 무어라 말해주지 못하는 어른인 나도 점점 마음이 흔들렸다.

도시에선 별일 없을 수도 있겠지만, 여기 사막은 이야기가 다르다.

하루만 물이 끊겨도 삶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곳, 믿음으로 버티는 삶이지만, 현실의 불안 앞에서 나는 자꾸만 '혹시'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드디어

1999년 12월 31일, 우리 가족은 한국에서 마침 이때에 들어온 한국대학생들과 함께 사막베이스에 머물렀다.

온 세상이 세기말을 앞두고 전 세계가 긴장에 휩싸인 이 시간에 남편은 너무 신나 하면서 2000년 1월 1일에 어떤 세상이 열릴지 기대하며기도하자했다.


“괜한 소문에 휘둘릴 필요 없어. 하나님이 지켜주시잖아.” 남편은 담담하게 말했다.


믿음의 말이었지만, 나는 불안했다.

혹시 모를 사태에 물과 쌀이라고 사놓고 대비하고 싶었지만, 남편과 뜻이 달랐다.

의견 차이는 곧 갈등으로 번졌고, 나는 깊은숨을 내쉬며 조용히 결정을 내렸다.


그렇지만 나의 불안은 모든감각의구석구석을 흔들어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조용히 나가 물과 쌀을 사서 남편 모르게 집안 구석에 숨겨 두었다.

마치 비밀 프로젝트라도 하듯, 아이들은 아빠 몰래 엄마와 함께 같은 마음으로 움직였다.

은근한 긴장감에 신이 나서 조용히, 그러나 들뜬 발걸음으로움직였다.


카지노 게임 마지막날, 그날따라 사막의 바람은 유난히 차가웠다.
방이 두 개인 사막의 작은 집,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그 밤, 사막의 냉기는 뼛속을 파고들었고, 나는 그 차가움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느꼈다.

그래서 항상 한국에서 갖고 온 전기장판의 따뜻함을 누리고 있었는데, 불빛이 희미하게 깜빡이더니 결국 꺼져버렸다.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이제 시작인가보다.’
창밖을 보니, 모래 언덕 너머로는 달빛마저 가려져 어둠이 묵직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아이들이 자는 이불을 한 번 더 덮어주고, 나는 조용히 앉아 두 손을 모았다.
기도를 하면서 마음은 점점 차가워지고 있었다.


그 밤의 적막은 내 마음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전기 한 줄기조차 오지 않는 이 사막에서,

혹시 정말로 이 모든 것이 시작되는 걸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우리가 고립되는 건 아닐까!


그러나, 다음 날 아침.

햇살보다 먼저 전기장판의 따뜻함이 등을 덮었다.

'칙—' 소리를 내며 전등이 다시 켜지고, 냉장고가 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괜찮구나! 아! 괜찮구나! 아무 일도 아니었구나! 아고 주여 죄송해요. 이렇게 미련했네요.’

숨겨둔 쌀자루를 슬쩍 바라보며, 아이들의 얼굴을 다시 확인했다.



1999년 12월 마지막 밤은 끝났고, 어김없이 2000년 1월 1일 아침은 시작되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부엌에 섰다.

아이들은 평소보다 조금 더 말이 없었고, 아빠를 슬쩍 보고 엄마인나를 한 번씩 쳐다보며 웃었다.
그 작은 웃음 속엔 공모자의 끄덕임이 담겨 있었고, 그들이믿음이 약한 엄마를 이해하고 용납할 만큼 자랐다는 것을 느꼈다.

물과 쌀은 여전히 구석에 숨겨져 있었지만, 그것은 더 이상 두려움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막한복판에서,
무언가를 지켜내고 싶었던 한 사람의 조용한 저항이자,
엄마로서 작은 사랑의 준비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밥솥을 열었다.

고소한 밥 냄새가 퍼지는 그 순간,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제와 오늘은 변하지 않았는데, 아무 일 없이 지나가서 다행이다.

하지만 어젯밤은삶에 깊은 후회로 남을 것 같네 꼭 기억해야겠다.’


사막은 여전히 고요했고,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무사히 2000년의 첫날을 맞았다.

세상의 소리에 이렇게 민감하여 흔들려서 비밀스럽게준비하며 믿음이라는 이름을 붙인 나의 모습이 상당히부끄럽게 느껴졌다.


그 밤 나는 내 믿음의 얕은 바닥을 마주하고 말았다.
겉으로는 담대했지만, 속으로는 내가 믿던 모든 것을의심했던 그 믿음!



‘하나님은 믿음 없는 나의 작은 준비마저도 이해하셨겠지!’


그날 이후로 카지노 게임 어느 밤도, 그 밤처럼 깊이 떨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내일을 만나기 위해

마냥 떨며 보낸 그날 밤이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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