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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초야 May 01. 2025

온라인 카지노 게임 태어난 김에, 몽골의 밤하늘

떠나야 보이는 것들 5

2024년 8월

초원 위에서 (밤)


밤이 되면 하늘과 초원의 경계가 흐려졌다. 어디까지가 땅이고 어디부터가 하늘인지 모를 만큼, 깊고 어두웠다. 우리는 매일같이 초원을 찾아, 서로의 다리를 베고 누웠다. 검은 캔버스 위에 흩뿌려진 은빛 물감은 반짝였고,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았다.


"어? 나 방금 유성 본 것 같아!"


정이가 손가락으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가리키며 말했다. 곧이어 정이의 무릎을 베고 누운 현이가 답했다.


“대박! 빨리 소원 빌어.”


이번엔 현이의 종아리를 베고 누운 솔이중얼거렸다.


“방금 별 하나 죽었나 보다…”


그때 멀리서 삼각대를 설치하던 윤이 말했다.


“그건 별이 죽은 게 아니라, 운석이나 우주 쓰레기가 대기권에 들어와 타는 거야.”


솔이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았어… 이과.”


나는 의기소침해진 솔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쨌든, 뭐가 사라지긴 하는 거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솔을 확인한 뒤,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빛나는 쓰레기라니… 멋진데?”



별똥별 하나를 보고도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을 했고, 다른 말을 했다.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국적과 성별을 갖고 있는 우리조차 이렇게 다른데, 세상엔 얼마나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할까.


삼각대 설치를 끝낸 윤이 돌아와 말했다.

“너네 그거 알아? 지금 보이는 별들 중 일부는 이미 죽었을 수도 있대. 너무 멀어서 아직 우리가 모르는 거래.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의 빛도 도착하는 데 4년이 걸린다더라.”


윤의 말을 흥미롭게 듣던 정이가 대답했다.

“4년 전이면 우리 졸작하던 때네?”


윤이 대답했다.

“응, 맞아. 만약 10분 뒤에 그 별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사실은 4년 전에 사라졌던 거지.”


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했다. 내가 죽은 뒤 수백만 년이 지나, 다른 별에 사는 누군가에게 내 빛이 닿는 장면을. 아니면, 별이 되지 못한 채 우주의 먼지로 타들어가는 장면을. 그런 나를 보며, 누군가는 소원을 빌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죽음이 조금은 덜 무섭게 느껴졌다.



이렇게 사고를 우주로 확장하면, 두려움과 평온함이 동시에 밀려온다.


이 감각은 광활한 초원과 사막, 그리고 별이 가득한 은하수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과 닮아 있다. 인간이 만든 시스템-도시와 경제, 정치 같은 것들-속에서 느끼는 무력감이 좌절에 가깝다면, 자연과 우주 앞에서느끼는무력감은 겸손이나 숭고함에 가깝다.


우리는 그저 작다는 걸 느끼면 된다. 이 작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기에 오히려 위로가 된다.


‘지구의 나이에 비하면 인간의 삶은 먼지도 되지 않는다’는데,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먼지의 먼지’쯤 될까. 아등바등 고민하는 작은 먼지를 상상하니 웃음이 났다. 옹기종기 모여 별을 올려다보는 우리도 그저 먼지 같아서, 이 순간이 어쩐지 귀엽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퇴사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다 보니 그동안 마음이 조급했던 것 같다.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면, 나 혼자 멈춰있는기분이기도 했고.


애초에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도는 별. 아니, 작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였을 뿐인데. 뭐가 그리 급했을까.


그렇게 반짝이는 작은 별들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태어난 김에, 내 맘대로 살아보지 뭐.’



“여러분도 광활한 자연 앞에서 조급함이 사라졌던 순간이 있었나요? 그때의 마음을 댓글로 들려주세요.”


초초야 인스타그램

@chocho_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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