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찾아보니 이 책을 2020년 5월에 읽고 리뷰를 썼다. 벌써 5년이 흘렀다. 그때 나에게 너무 재미있고 신선하게 느껴졌었다. 구입했던 책이 사라진 후(누구에게 준 것 같다) 도서관 서가를 지나다 오랜만에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데리고 왔다. 다시 읽기 시작하니 처음 읽을 때의 생각이 스치면서도 이런 이야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낯선 부분도 있었다. 5년이라는 망각의 강을 흐르며 기억에서 사라진 것이다. 다시 읽어도 좋은 책이어서 읽는 중간에 또 책을 구입했다. 마음껏 밑줄을 긋고 싶었다.
이 책을 읽고 작가의 다음 책도 읽었었다. 파괴자들이라는 책이다. 첫 책에서 너무 좋았던 생각에 기대를 많이 해서일까? 첫 책이 훨씬 좋았다. 과거가 궁금했던 그 시절이 더 흥미진진했던 것 같다. 스케일이 작은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이 좋았던 모양이다. 파괴자들 내용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읽고 리뷰도 쓰지 않았었다. 작가가 고난을 겪으며 짬짬이 썼을 이 책이 훨씬 좋은 이유가 궁금하기도 하다. 어쨌든 나에게는 명작이다. 이 책을 읽고 전에 읽었던 레이먼드 챈들러의 책을 다시 읽었고, 켄 브루언의 책도 읽었다. 작가가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는 작가들이다. 나도 그 책들이 좋았다.
책의 주인공은 10년이라는 과거가 알려지지 않은 택배기사다. 딸을 먼저 보냈다는 것, 그리고 K라는 이름으로 불린 적 있었다는 걸 제외하고. 1인칭 소설인 점에 비해 주인공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그는 택배 배달 지역인 ‘행운동’으로 불린다. 허리가 아파서 아파트만 배송하는 ‘아파트’ 형님, 마스크를 쓰고 폐지를 줍는 ‘마스크’, 깡마른 형사 ‘장작’과 같이 이름을 재미있게 붙였다. 대사는 어찌나 재치가 있는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실없는 농담을 하는 걸 보면 지나치다 싶긴 하지만 그래도 피식 피식 계속 웃으며 읽을 수 있었다.
가장 멋진 건 주인공이 언제나 책을 읽는다는 것이다. 서머싯 몸의 <면도날을 읽고, 엘모어 레너드의 <로드 독스를 읽는다. 명작과 범죄소설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영화의 대사를 읊는 택배기사.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다. 술을 많이 먹는 게 흠이다. 돈에 욕심도 없다. 마지막 장면은 정말 대단하다. 이런 사람이 있을까? 세상을 달관한 택배기사. 그 덕분에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 모모처럼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게 만드는 남자다. 소설을 성공시키려면 이 정도의 매력적인 주인공이 필요하겠다.
책에서 소개되는 주인공이 읽는 책과 영화들은 사실 작가의 취향이다. 그동안 읽었던 책과 영화의 오마주를 엮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등장하는 책들을 읽으며 작가의 취향에 취해보고 싶다. 검색하다가 재작년에 택배기사 경험을 담은 에세이를 출간했음을 알게 되었다. 조만간 읽어봐야겠다.
* 목소리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