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여성들이라면 다 알 것이다. 각종 매체에서 애교 섞인 목소리로 오빠야~ 라고 할 때 느껴지는 그 심드렁함을.
실제 생활에서 오빠야 라는 말은 친 형제나 사촌쯤 되는 가까운 혈육을 지칭할 때나 쓰인다. 그리고 그들을 부를 때 절대 그런 콧소리는 내지 않는다.
언젠가 오빠와 통화하는 내 목소리를 듣고 남편이 깜짝 놀라 물었다. “목소리가 왜 그리 낮고 굵어?” 그들은 그런 존재다.
내게도 어쩌다 태어나보니 그런 두 살 터울의 오빠야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생각했다. 저거랑 다른 집 언니야랑 바꾸면 안되나? 저거가 꼭 우리 집에 있어야 하나?
내 주변에는 오빠에 대한 환상을 가진 친구들이 많았다. “너도 정말 오빠랑 싸우다가도 밤 늦으면 데리러 오고 그래?” “오빠랑 서로 툭탁거리면서 말해?”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오빠랑 말을 왜 해?”
그리고 친구야, 집에는 항상 술 마시고 내가 제일 늦게 들어갔어.. 술 취한 아빠랑 다른 동 입구에서 마주친 적도 있어. “아빠~ 여기 아니야!!” 하고 같이 들어갔지. 그리고 같이 엄마한테 혼나곤 했단다.. 오빠? 몰라. 집에 있었는지, 말았는지.
철저한 무관심 속에 살다가 그나마 각자 결혼하고 우리는 이제 어른이다, 하는 생각이 아주 조금 생겼다. 관심이 생겼다는 게 아니고 적어도 눈 마주치면 싸우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카지노 게임가 와서 “누구세요?” 하니까 “내다, 느그 오빠야.” 하는 식이었다. 그럼 나도 그 낮고 굵은 목소리로 바뀐다. “만다꼬 카지노 게임했는데?” 그러면서 서로 근황을 전하고는 한다.
부모님과 오빠네는 경상도에, 나는 경기도에 살고 있다. 부모님이 나이를 들어가시니,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나와 우리 부모님 모습을 어렸을 때부터 오롯이 알고 있는 건 나와 오빠 뿐이구나. 전 생애를 걸쳐 나와 가장 오래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이 바로 오빠구나.
그럼 좀 안심이 된다. 내가, 우리가 부모님께 받은 관심과 사랑을 같이 목격한 사람이 있다는 게 다행이다. 이 뿌리가 나만 뻗어나간 것이 아니라 같이, 다른 방향으로 간 사람이 있다는 것, 한쪽이 세월에 흔들려도 함께 지탱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사실이 이토록 마음 깊이 안심이 될 줄이야.
한 두번 멀리 사는 동생에게 카지노 게임하는 데 재미가 들렸는지, 오빠는 요즘 부쩍 자주 카지노 게임를 한다. 말은 어찌나 많은지 ‘오빠야’라고 카지노 게임기에 뜨면 한숨부터 쉰다. 슬쩍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추며, 낮고 무뚝뚝한 목소리로 카지노 게임를 받는다.
“어, 오빠야. 만다꼬 또 카지노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