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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Apr 11. 2025

카지노 게임 늙고, 병든다.

집도 사람처럼 세월에 따라늙고 병든다. 나이 든 부모님이 몸여기저기가 고장 나 병원순례를 하는 것이 하루 일과가 되어버린 것처럼 집도 그렇다. 어제는 화장실에서 오늘은 주방에서 손 볼 것이 하나 둘 생긴다. 벌써 네 번째 집에서 전세살이를 하다 보니 명백한 나의 잘못으로 집수리를 했던 경험도 반대로 이전 세입자들의 잘못을 운이 나쁘게 내가 뒤집어쓴 적도 있었다. 때로는 잘잘못을 따지기가 애매한 경우도 있었고.

첫 번째 전세살이는 삼십 년 된 구축아파트였다. 시간의 흔적이 집 안 곳곳 고스란히 남아 자잘한 일들이 생기곤 했다. 주말 오후 거실에 누워 느긋하게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내 머리 위로 거실 전등이 떨어졌다. 그 안에 숨어있던 먼지와 빛을 따라 들어왔다가 생을 마감한 하루살이의 시체들이 바닥에 흩어졌다. 공부만 하느라 집 안 일에는 영 무심했던 남편과 나는 전등 하나를 내 손으로 갈 줄 몰랐는데 전등이 통째로 떨어지자 당황했다. 집주인에게 사실을 알렸지만 집주인은 멀쩡하던 전등이 왜 떨어지느냐며 고쳐줄 수 없다고 했다. 계약서 상에'현시설물 그대로 임대차한다.'라는 조항을 들며 따졌다.


모든 것이 서툴고 처음이었던 우리는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집주인의 호통에 되려 겁이 나 꾸역꾸역 셀프로 수리하고 바닥에 떨어진 먼지와 시체를 치우며 다짐했다.


"앞으로 집을 고를 때는 집주인의 인성을 꼭 확인하자!"


아이의 첫돌부터 네 돌까지 가장 버라이어티 한 시절을 보냈던 두 번째 집에서는 전혀 반대의 상황이 생겼다. 한창 호기심 많고 사고치 기를 좋아하는 미운 네 살. 배변훈련을 하며 화장실과 친숙해지라고 열어둔 변기 앞에 아이가 섰다. 그러고 보란 듯이 내 눈앞에서 그 속으로 장난감을 넣어버렸다. '안 돼'라는 말과 재빠르게 뻗은 손이 무색하게 아이는 물을 내려버렸고 그대로 변기는 꽉 막혔다. 하필이면 변기 배수관과 크기와 모양이 똑같은 장난감을 넣은 탓에 전문가를 불러 온갖 기계를 써도 빼낼 수가 없었고 결국은 변기를 뜯어야 했다. 신축아파트로 우리가 첫 입주자였기 때문에 혹시라도 공사가 커지면 집주인에게 보상을 해 줄 일이 생길까 봐 노심초사하며 돈을 더 주고라도 공사마감을 완벽히 해달라고 거듭 부탁했었다.


세 번째 집에서는 별 탈 없이 3년을 살고, 이사를 한 달 앞두고 있을 때 역대급 큰일이 터졌다.공동주택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두려워카지노 게임 누수가 발생한 거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연락을 받고 떨리는 가슴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사가 얼마 남은 마당에 공사로 이사가 지연되거나 새로 입주할세입자가 사실을 알고계약을 취소하기라도 하면 일이었으니까. 다행히 우리 집의 문제는 아니어서 일주일 정도 공사에 협조카지노 게임 것으로 일이 마무리되었다.


공사를 하러 온 인부들이 채 털어내지 못한 귓가의 시멘트 먼지를 그대로 둔 채 서둘러 집을 나가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친정식구들 대부분이 블루칼라 노동자인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의 가족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힘드시죠? 기껏 일해도좋은 소리도 들으시고. 사실은 제일 감사해야 할 사람들인데."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칠순은 되어 보이는 사장님은 허허 웃으며 곁에 서 있던 아홉 살 아들에게 한 말씀하셨다.


"야! 너는 공부 열심히 해서 몸 쓰는 일 하지 말어. 힘들어."정작 아저씨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몸 쓰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공사를 마치고도 나는 그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인생에서 진짜 필요한 공부는 이런 게 아닐까?' 하고.


수학의 정석이나 성문영문법 같은 책은 수능 이후로 내 인생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막힌 변기를 뚫고, 물이 새는 수도관을 고치고, 전등을 교체카지노 게임 일이야말로 살면서 꼭 필요한 기술이었다. 그런데왜 그런 기술은 어디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으면서그런 일을 카지노 게임 사람을 하찮게 여기며 혹은 스스로도 하찮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공부 열심히 하라'는 노사장님의 말씀에 가슴이 아팠다. 그런 기술들이야 말로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일들이며 때문에그런 기술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꼭 필요한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덴마크 작가가 쓴 베스트셀러 <가짜노동에서는 책상에 앉아 불필요한 문서작업을 요구하고, 복잡한 평가 절차를 만들어 필요 이상의 시간을 들여 직원을 평가하는 관리직에 대해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가짜노동이라고 칭하면서.


하지만 우리는 모두 가짜노동자를 꿈꾼다. 내 나이가 몸을 쓰며 힘든 일을 하는 대신 우아하게 책상에 앉아 쉬운 일을 하며 살기를 바란다. 돈을 많은 벌어 집수리쯤은 돈을 주고 전문가에게 맡기는 삶과내 집수리는 남의 손 빌리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삶. 감히 두 가지 중 어느 하나가 더 성공한 삶이라고말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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