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부부의 동거일기
아침부터 온 집안에 쌉싸름한 생마늘 냄새가 진동을 한다.
에잇, 이번엔 또 생마늘인가 보다.
우리 집 팔랑귀 남편은 요즘 유튜브에 푹 빠져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건강에 좋다는 건 가리지 않고 다 따라 한다.
인진쑥, 강황가루, 올리브오일, 토마토, 땅콩, 땅콩버터, 생강, 양배추, 브로콜리, 꿀, 오미자, 오트밀, 레몬, 겨우살이...종류도 가지가지라 기억을 다 못한다.
좋은 걸 먹는 건 누가 말릴까!
적당히 매일 섭취하면 될 것을 무더기로 쟁여놓고약처럼 먹는다.
늘 넘침이 부족함보다 못하다고 얘기를해도.
구연산이랑 베이킹소다까지 사달라고 했을 땐,
"아니, 이젠 하다 하다 청소용품까지 먹겠다는 건가?"
기가 막혔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이 팔랑거림이 오래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한두 달 먹고 나면 언제 찾았냐는 듯이 처박아두고
또 다른 팔랑 아이템을 찾아 떠난다.
싱크대 위에 주욱 늘어선 병, 병, 병,
냉동실에는 반쯤 남아 있는 온갖 가루들,
냉장고에 들어차 있는 먹다 남은 덩이들,
강황가루에 꽂혔을 땐 하얀 싱크대 위에 지워지지 않는 노란 얼룩을 매일 남겼다.
닦아도 닦아도 빠지지도 않는다.
보기와는 다르게, 나는 이래 봬도 ‘공간의 미학’을 추구하는 할머니다.
예전부터 내가 머무는 공간이 깔끔하고 예쁜 게 참 좋았다.
그래서 집안 곳곳을 정리하고 꾸미는 걸 좋아한다.
게다가 나는 일명 '개코'다.
냄새에 아주 예민하다.
그런 나에게 남편의 건강 실험은
내 눈과 코를 공격하고, 내 카지노 게임을 파괴하는
불량한 침입이다.
그럴 때마다 수십 년 전사립 국민학교 1학년 때의남자 짝꿍이 생각난다.
아침 자습 시간에 칠판에 적힌 문제를 풀다 보면,
어디선가 스멀스멀 김치 냄새가 풍겨온다.
아니나 다를까,
옆으로 고개를 휙 돌려보면
글씨 쓰기에 열중한 짝꿍의 입이 반쯤 벌어져 있다.
아침에 김치를 먹고 온 게 분명했다.
입가에는 벌건 김치 자국이 깨끗이 닦이지도 않았다.
"야! 입 다물고 써. 김치 냄새나잖아!"
쏘아붙이는 내 잔소리에 얼른 입을 꾹 붙인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또 벌어지고,
나는 또 잔소리를 한다.
번번이 반복되는 내 성질을
카지노 게임이처럼 묵묵히 받아주던 짝꿍이었다.
다른 남자아이들처럼 짓궂지도 않았으며
뭐든지 나 먼저 하라고 양보해 주던 친구였다.
남의 집 귀한 막내아들을 날마다 구박한 벌로,
오늘의 나는남편의 공격을 받고 있나보다.
순하고 착했던그 카지노 게임이, 문득 생각이 난다.
'그땐 내가 카지노 게임구나.'
오늘 아침도 나는
카지노 게임을 채운 생마늘 향에 눈살을 찌푸리며,
창문을 열고 룸 스프레이를 뿌려댄다.
그리곤 블루베리를 씻어 남편접시에 내어준다.
말은 안 해도,그 팔랑거림 속엔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은
소망 하나쯤 들어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