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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글연글 Apr 25. 2025

내 카지노 게임 관식아! 미안했다

은퇴 부부의 동거일기



아침부터 온 집안에 쌉싸름한 생마늘 냄새가 진동을 한다.

​에잇, 이번엔 또 생마늘인가 보다.

​우리 집 팔랑귀 남편은 요즘 유튜브에 푹 빠져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건강에 좋다는 건 가리지 않고 다 따라 한다.


인진쑥, 강황가루, 올리브오일, 토마토, 땅콩, 땅콩버터, 생강, 양배추, 브로콜리, 꿀, 오미자, 오트밀, 레몬, 겨우살이...종류도 가지가지라 기억을 다 못한다.


좋은 걸 먹는 건 누가 말릴까!
적당히 매일 섭취하면 될 것을 무더기로 쟁여놓고약처럼 먹는다.
늘 넘침이 부족함보다 못하다고 얘기를해도.


​구연산이랑 베이킹소다까지 사달라고 했을 땐,

"아니, 이젠 하다 하다 청소용품까지 먹겠다는 건가?"
기가 막혔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이 팔랑거림이 오래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한두 달 먹고 나면 언제 찾았냐는 듯이 처박아두고
또 다른 팔랑 아이템을 찾아 떠난다.

​싱크대 위에 주욱 늘어선 병, 병, 병,
냉동실에는 반쯤 남아 있는 온갖 가루들,
냉장고에 들어차 있는 먹다 남은 덩이들,
강황가루에 꽂혔을 땐 하얀 싱크대 위에 지워지지 않는 노란 얼룩을 매일 남겼다.
닦아도 닦아도 빠지지도 않는다.


​보기와는 다르게, 나는 이래 봬도 ‘공간의 미학’을 추구하는 할머니다.


예전부터 내가 머무는 공간이 깔끔하고 예쁜 게 참 좋았다.

그래서 집안 곳곳을 정리하고 꾸미는 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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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나는 일명 '개코'다.

냄새에 아주 예민하다.

​그런 나에게 남편의 건강 실험은
내 눈과 코를 공격하고, 내 카지노 게임을 파괴하는

불량한 침입이다.

​그럴 때마다 수십 년 전사립 국민학교 1학년 때의남자 짝꿍이 생각난다.


아침 자습 시간에 칠판에 적힌 문제를 풀다 보면,
어디선가 스멀스멀 김치 냄새가 풍겨온다.


아니나 다를까,

옆으로 고개를 휙 돌려보면
글씨 쓰기에 열중한 짝꿍의 입이 반쯤 벌어져 있다.

아침에 김치를 먹고 온 게 분명했다.
입가에는 벌건 김치 자국이 깨끗이 닦이지도 않았다.

​"야! 입 다물고 써. 김치 냄새나잖아!"

​쏘아붙이는 내 잔소리에 얼른 입을 꾹 붙인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또 벌어지고,
나는 또 잔소리를 한다.
번번이 반복되는 내 성질을
카지노 게임이처럼 묵묵히 받아주던 짝꿍이었다.

다른 남자아이들처럼 짓궂지도 않았으며

뭐든지 나 먼저 하라고 양보해 주던 친구였다.


​남의 집 귀한 막내아들을 날마다 구박한 벌로,
오늘의 나는남편의 공격을 받고 있나보다.


순하고 착했던그 카지노 게임이, 문득 생각이 난다.

​'그땐 내가 카지노 게임구나.'

​오늘 아침도 나는

카지노 게임을 채운 생마늘 향에 눈살을 찌푸리며,
창문을 열고 룸 스프레이를 뿌려댄다.


그리곤 블루베리를 씻어 남편접시에 내어준다.

​말은 안 해도,그 팔랑거림 속엔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은
소망 하나쯤 들어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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