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회학을 전공했다. 브런치 작가 소개에도, 책 저자 소개에도 이를 가장 먼저 밝힌다. 그만큼 나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라고 여긴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인식의 기초가 대부분 사회학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글을 짓는 작법 역시 마찬가지다. 주제를 구체화하고, 서사를 조직하며, 세부 논의를 전개하는 방식을 사회학자들에게서 배웠다. 특히 찰스 라이트 밀스의 ‘사회학적 상상력’이라는 테제는, 작가로서 견지할 평생의 화두이기도 하다. 요컨대 내 글은 (좀 거창하게 표현해서) 사회학적 글쓰기의 한 예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래서 확신할 수 있다. 만약 사회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나는 훨씬 무지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고, 작가가 되는 일도 없었을 거라고.
사회학을 전공으로 택한 이유는 평범했다. 사회과학을 기초부터 제대로 공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학부에서 사회학이 아닌 사회과학을 4년간 배웠지만, 남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운동권에서 학습한 사회과학 야매 이론이 세계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작용만 생겼다. 졸업할 무렵이 되어서야 대학 4년을 헛다녔다는 현타가 밀려왔고, 대학원에서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그러니 새 전공은 가장 기초적이고 포괄적인 학문이어야 했다. 그때 내 생각으로는 사회학이 그것에 가장 가까웠다. 물론 진학 상담을 했던 사회학 강의 교수님은 나를 뜯어말렸다. “사회학보다 지금 네 전공이 훨씬 취업에 유리하고, 학문을 계속하더라도 학부와 대학원 전공이 다르면 교수 임용에서 불리하다”라는 이유로. 아마 정확한 현실 인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고집대로 했고, 이는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사회학은 순수기초학문이라, 전공을 살리는 길은 연구자가 되는 것 말고는 거의 없다. 언젠가 대학원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고 가질 수 있는 직업은 세 가지라고. ①교수, ②공공기관 연구원, ③재야 학자. 여기서 ①, ②번보다 ③번이 될 가능성이 90%에 수렴한다는 게 킬포다(…).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재야 학자로 살 자신이 없었던 나는 석사까지 마치고 취업으로 급선회했다. 운이 좋게도 적성에 맞으면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한 가지 궁금한 건, 나를 뽑을 때 회사의 높은 분들이 내 전공을 어떻게 생각했을지다. 이 바닥의 주요 전공(경영‧경제학, 이공계, 국제학…)과는 영 딴판이어서다. 사회학 전공이라 뽑지 말자고 했을지, 반대로 뽑자고 했을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궁금하다(내가 면접위원이었으면 뽑으면 안 된다고 했을 거다).
실제로 회사에 들어와 보니 사회학 전공자는 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 전공은 직원들과의 대화에서 아이스 브레이킹으로 딱이었다. 어떤 이공계 출신 직원은 사회학 전공자를 난생처음 본다며, 혹시 국영수사과할 때 그 ‘사회’냐고 물어보았다. 대충 비슷하다고 답했더니 돌아온 대답이 이랬다. “아니… 그걸 대학원까지 가서 배운다고요?”(…) 하긴 뭐 이공계에서만 공부했으면 모를 수도 있겠다. 나만 해도 무기재료공학을 전공했다는 선배에게 대포나 미사일 만드는 연구했냐고 물어본 적이 있으니. 그런데 그나마 사회학을 좀 안다는 사람들의 선입견은 더 심했다. 그야말로 아는 사람이 더하달까. 사회학이라는 학문에 오해(?)가 많음을 그때 알게 되었다.
우선 젊은 직원 중에서는 나를 통계 능력자로 착각해서 뭘 부탁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대사회학에서 통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기는 하다. 학부 시절 어떤 교수님은 "사회학과 학생이 통계를 모르는 것은 영문과 학생이 영어를 모르는 것과 같다"라고도 하셨으니. 문제는 내가 그 ‘영어를 모르는 영문과 학생’이었다는 것(…). 사회학 공부 시작할 때 통계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고, 석사학위 논문에도 통계를 1도 안 썼다.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개념과 논리로만 푸는 논문이었던 거다(그래서 디펜스할 때 탈탈 털림).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주류 패러다임에 반기를 드는, 학문적 자존심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통계 알려달라는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면 “그러고도 용케 졸업은 했네?”하며 어이없어한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언젠가 브런치에도 썼지만, 나는 논문자격시험 필수 과목이었던 통계에서 낙제할 뻔했기 때문이다(교수님께 사정해서 겨우 재시험 본 건 안 자랑).
반면 연배 지긋한 윗분들은 사회학을 무슨 좌파 학문으로 생각했다. 사회학 전공이라고 하면 “너 학교 때 데모 좀 했구나?”라는 반응이 돌아오곤 했다. 이 또한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학부 때 데모질을 안 했다면,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할 생각은 못 했을 거다. 내가 다닌 대학원에도 (나 같은 뉴비는 명함도 못 내밀) 찐운동권들이 많았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자퇴한 사람, 공장에서 노조를 만들다가 온 사람, 시민단체에서 상근했던 사람 등등… 다만 이것도 이제는 옛이야기다. 사회학이 사회성격논쟁이나 진보적 학술운동의 구심이었던 시절은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그 시기는 아무리 가깝게 잡아도 30년이 넘어간다(진작에 다 망함). 사회학의 진보성을 대표했던 정치사회학, 노동사회학, 계급론, 문명론 등은 최근 전공자를 찾기도 어렵다. 물론 전공 수업에서 마르크스를 배우기는 한다. 하지만 사회학의 한 분파인 비판적 사회이론의 조상님 정도로만 다룰 뿐이다. 마르크스 이론의 핵심인 정치경제학까지는 진도가 나가지도 않는다.
요즘 나는 작가로서 사회학을 전공하기 잘했다고 뒤늦게 느끼고 있다. 사회학의 특징인 넓은 범위, 통합적 관점, 자유로운 접합성이 책 작업에 도움이 많이 되어서다. 내가 주로 쓰는 분야가 과학이라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나는 작가로서 ‘문과의 관점에서 쓰는 과학 글’로 브랜딩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순전히 흥미로 선택했던 사회학이 여기에 효과적인 수단이 되어주고 있다. 사회학이란 학문의 스코프가 원체 커서(세상에 '사회'에 속하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되겠냐긔)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일례로 이매뉴얼 월러스틴이나 조반니 아리기 같은 양반들을 보면, 역사와 제도와 인물을 한 큐에 엮어서 입론을 한다. 이렇듯 사회학은 넓은 기본 판을 깔고, 다양한 구성 요소들을 서로 조립하고 섞어서, 큰 그림으로 보이게 하는 데 강점이 있다.
그런데 이는 다른 학문 전공자들에게 까이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즉 사회학은 '정체불명의 잡식성 학문, 하이픈(-) 학문'이라는 비판이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면, 사회학은 워낙 넓어서 전공만으로는 뭘 연구하는지조차 알기 어렵다는 의미다. 그나마 정치-사회학, 과학기술-사회학, 산업-사회학 하는 식으로 세부 전공이 하이픈으로 붙어줘야 가늠이 된다. 사회학은 또 사회변화를 신생 분야로 창조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디지털사회학, 스포츠사회학, 감정사회학 같은 네이밍들이 그렇다(뭔 갖다 붙이기만 하면 다 분야가 됨). 이걸 나쁘게 보자면, 미래 먹거리로서의 연구비를 따내려는 꼼수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나는 사회학이 맥락 없는 잡식성이란 비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 전공을 세부로 보면 정치사회학인데, 이건 노동사회학이나 사회사 등의 사회학 분야보다는, 정치학 같은 외부 학문에더 가깝다(…).
그럼에도 작가로서 하는 작업에는 단점보다 장점이 많다고 느낀다. 출판사 대표님도 말씀하셨듯, 나의 강점은 여러 분야의 지식을 엮어서 신선한 통찰로 보여주는 데 있기 때문이다. 대학원 때 역사적 제도주의라는 방법론에 꽂혔던 적이 있다. 오래되어서 기억은 잘 안 난다만, 대략 이런 논리였던 것 같다. “사회 제도는 역사의 경로를 따라 거시적으로 변화하는데, 이 과정에서 정치‧경제적 요인의 제약을 받는다.” 그때도 신박하다고 느꼈지만, 지금 와서 보니 내가 쓰는 과학 글에서도 알게 모르게 이 이론을 따르고 있었다. 물론 내 글은 학술 논문이 아니므로 이걸 엄밀한 의미의 방법론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과거 전공의 유산을 아직 써먹고 있으니, 그 시절 고생해서 공부한 보람은 있구나 싶다.
그래서 나는 사회학 전공에 꽤 부심이 있다. 만약 딸도 사회학을 전공하겠다면 적극 지원할 생각이다. 다만 학부 4년 전공으로 한다면 그건 반대다. 내가 문과에서만 6년을 공부해보니, 문과 과정은 대학원만으로 충분한 것 같다. 그보다는 이과 공부가 더 중요한 진리를 탐구하고 세상에 보탬도 된다(그만큼 어렵다는 문제도 있긴 하다). 따라서 딸에게 전공을 추천한다면, ‘학부 이과 + 대학원 문과’ 조합으로 권할 것 같다. 실제로 내가 글을 쓰는 과학기술학(STS) 분야에서 이 조합의 작가들을 꽤 본다. 아무래도 융합 지식의 힘인지, 글이 과학적 원리에 충실하면서 문과적 맥락도 잘 살린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참으로 잘들 쓴다. 나도 학부에서 이과를 전공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어차피 초딩 때부터 수포자였으니 뭐 의미 없는 가정이겠다.
물론 사회학의 미래는 밝지 않다. 저성장과 인구절벽이 맞물리며 순수학문이 박살나는 시대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학은 그 최일선에 놓이게 될 것이다. 작년 모 대학교의 사회학과도 35년 만에 폐과가 결정되었다. 이에 학생들은 캠퍼스에 빈소를 차리고 '사회학과 장례식'을 치렀다고 한다. 아마도 시간이 흐를수록 비슷한 현상이 반복될 것이다. 이런 시대에 과연 사회학을 전공하는 게 유의미할까. 사회학 전공 부심이 넘치는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는 있다고 생각한다. 학문의 존립 근거는 소비 수요가 아닌 탐구할 진리의 가치에 있는 것이니까. 그리하여 나는 앞으로도 사회학을 근거로 삼아 꾸준히 글을 쓰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