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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KUNDO Jan 21. 2025

카지노 게임 속에서 길을 잃다




“꼬마야, 너는 꿈이 뭐야? “


어린 시절 가장 싫어하던 카지노 게임의 완전체다. 어려도 이름이 있고 키가 작아도 꼬마는 아닐 수 있는데 무턱대고 불러대는 꼬마라는 지칭어가 싫었다. 뒤에 이어지는 카지노 게임은 더 최악인데 진솔하게 답을 할 때마다 내 마음을 할퀴는 비웃음이나 질타가 늘 이어졌기 때문이다.


저 카지노 게임과의 악연은 꽤나 길었다. 나의 꿈이 바뀌는 동안 사람들의 카지노 게임도 변했다. “꼬마”라는 지칭어는 사라졌고, “꿈”이라는 단어는 “장래희망”을 지나 “진로”로 바뀌었다. 카지노 게임 속 단어는 바뀌었지만 내가 답변할 때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대는 것은 그대로였다. 그들이 묻는 카지노 게임의 의미를 모르진 않았지만, 원하는 답을 줄 수가 없었다. 덕분에 정형화된 길로 가야 한다는 모종의 압박이 들어있는 그 카지노 게임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사람들의 질책이 더해질수록 반항심은 커져갔고, 그렇게 나는 입을 닫게 되었다.


나는 꿈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꿈꾸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꼬꼬마 시절 내 꿈은 깍두사였다. 깍두사란 “깍두기 만들기를 도와줄 수 있는 로봇이나 무엇이든 만들어 내는 사람”을 말한다. 엄마가 만들어주는 대부분의 음식을 좋아했지만 그중에 유난히 설익은 깍두기를 좋아했다. 입맛이 까다로운 막내딸 덕분에 엄마는 몇 주에 한 번씩은 김치를 담가야 했다. 깍두사는, 미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깍두기는 포기할 수 없었던 아이가 만들어낸 참신한 직업이었다. 어른이 되면 좋아하는 음식을 죄책감 없이 누리고 엄마의 수고까지 덜어내는 방법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입학 후부터 꽤 오랜 시간 동안 설탕과 소금을 하나의 물질로 만드는 소박한 연금술사를 꿈꿨다. 내 별난 입맛 덕분이다. 사탕이나 초콜릿같이 달달한 느낌이 입안을 가득 채우면 행복하긴 했지만, 심심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꼭 단 음식을 먹고 난 후에 김치나 장아찌 같은 짭짤한 음식을 찾곤 했다. 어쩌면 마법 같은 단짠조합의 시초는 나일지 모른다. 설탕과 소금을 절구에 넣고 같이 부수거나, 냄비에 물도 안 넣고 태우다가 냄비까지 통째로 태워버리기도 했다. 약국에서 받은 캡슐 속의 약을 비워내고 한쪽에는 설탕을 한쪽에는 소금을 넣고 뿌듯해하기도 했었다. 시간이 지나 화학에 대한 어느 정도 지식이 생기고 나서야 설탕과 소금은 기본 구성성분 자체가 달라 하나의 물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야 기괴한 실험을 끝낼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갖게 된 마지막 꿈은 좋은 사람이다. 대학교를 졸업하면 완전한 어른이 된다고 믿었다. 성인이 된다는 것이 두렵고 겁이 났지만 피할 수 없다면, 그중에서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내가 생각했던 좋은 어른의 정의는 이렇다.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선배가, 친구들에게는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좋은 벗으로, 선배들에게는 열린 마음과 언제든 소통이 가능한 좋은 후배가 되는 것이다. 그것만이 나를 성장시킨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과 관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지만, 내가 되고 싶고 꿈꿨던 이 모든 것들은 사람들의 카지노 게임에 대한 답이 되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대학교 4학년이 된 나는 모두를 이해시킬 만한 명확한 답변을 만들어 내야만 했다. 사람들의 카지노 게임에 침묵으로 일관할 수 없는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학교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형태의 카지노 게임을 만들어 괴롭혔다. 앞으로의 진로를 고려해 졸업방법을 제출해야만 했다. 교수님들의 연구실 중 한 군데를 골라 들어갈 것인지, 졸업논문을 쓸 것인지, 졸업작품을 만들 것인지 결정하라고 했다. 겨우 결정하고 났더니 이번에는 어느 방향으로 취업할지를 결정하란다. 대학원에 가서 연구원이 될 것인지, 사기업 취업을 할 것인지, 공공기관 취업을 할 것인지 이런 세세한 것들까지 답해야 했다. 그 어떤 카지노 게임에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나는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로 취급당하기 일쑤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카지노 게임이 날아와 비수처럼 박혔다. 염증이 났다. 스쳐가는 모든 사람들이 나의 진로에 대해 독촉을 했다.


사실 그 시기의 어떤 사람도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지 말라고 한 적은 없다. 다만 취업의 방향을 정하라는 단순한 카지노 게임을 할 뿐이었다. 걱정해 주는 마음들에 감사할 수도 있었건만, 꼬일 대로 꼬인 상태였던 나에겐 그 모든 말이 날 선 공격으로 들려왔다. 하루빨리 적절한 답변을 만들고 그들의 걱정 어린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의 정규교육과정, 그리고 4년의 대학생활까지 반항기 가득한 침묵으로 버텼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미뤄두었던 카지노 게임에 대한 답을 이제 제대로 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사람들의 압박 때문은 아니었다. '넌 꿈이 뭐야?' 그 말은 곧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라는, 나 자신을 향해 묻는 가장 중요한 카지노 게임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피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앞으로의 내 삶에게 대답을 돌려줘야만 했다.


나는 과연 좋은 어른이 될 준비가 되었는가?

어떤 길을 선택해야 나의 꿈에 가장 알맞은 진로를 선택한 걸까??

나는 어떤 능력과 지식을 가졌는가? 사회에 나가기에 충분한 경험을 쌓았는가?

그저 돈을 벌기 위해 20여 년의 삶을 충실히 살아온 것인가?

앞으로 나의 가치는 내가 버는 돈의 액수로 결정되는 것인가?

모두가 알만한 이름을 가진 안정적인 회사를 찾아 입사를 하는 것만이 옳은 길인가?


카지노 게임을 거듭할수록 인생의 방향을 성급하게 결정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카지노 게임을 피하기 위해 떠밀리듯 조급하게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나는 나 자신을 납득시키지 못하는 대답을 입 밖으로 꺼낼 수도 없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마음껏 고민하고, 경험하고, 방황한 후 결정하기로 했다.

평생 별종으로 살았는데, 이제 와서 조금 늦는다고 크게 달라질 것은 없지 않은가.


나는 조금 더 별나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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