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려고 채널을 돌리던 중, 마침 〈인디아나 존스 3, 최후의 성전〉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방영되고 있다. 성배가 바닥에 뒹굴고 땅이 갈라진다. 낭떠러지로 추락하려는 여자의 한쪽 손을 존스 박사(해리슨 포드)가 가까스로 붙잡는다. 여자의 다른 손끝에는 절벽 턱에 걸린 성배가 닿을 듯하다. 여자는 성배를 붙잡으려다 존스 박사의 손을 놓치고 끝을 알 수 없는 골짜기로 추락한다. 다시 땅이 흔들리고 이번에는 추락하려는 존스 박사의 손을 아버지(숀 코너리)가 붙잡는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성배가 존스 박사의 손끝에 닿을락 말락 한다. 존스 박사는 그렇게 찾기를 원했던 성배가 바로 눈앞에 있자 위태로운 상황을 잊고 안간힘을 쓴다. 이때 아버지가 말한다. “Indiana……! 온라인 카지노 게임 it go. (인디아나……! 내버려 둬)” 존스 박사는 성배에서 아쉬운 눈길을 거두고 아버지의 손을 잡고 올라온다.
‘내버려 둬.’ 얼마 전에 이 말의 의미를 절감하는 경험을 했다. 베란다에서 키우는 그리노비아 다육식물이 말라가며 시들해졌다. 벌어진 양배추처럼 녹색 잎을 활짝 편 모습이 보기 좋았는데, 건조해서 그런가 싶어 물을 자주 주었다. 다시 새파랗게 살아날 줄 알았지만, 한쪽은 아예 흑갈색으로 말라버렸다. 부랴부랴 화분을 들고 다육식물 화원으로 향했다. 주인이 보더니 두 그루 중 한 그루가 죽어버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화분에서 꺼내 보였다. 시들한 다른 한 그루의 뿌리를 살펴보더니 “물을 너무 많이 줬네. 그리노비아는 여름에 휴면 상태에 들어가는 식물이어서 물을 주면 안 되는데.”라고 말했다. 살아 있는 그루의 뿌리에서 젖은 흙을 털어내고 마른 흙으로 갈아 심었다. 주인은 신신당부했다. “다시 깨어나는 가을까지 물을 주지 말아요. 그냥 내버려 둬요. 알았죠?”
내가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 다육식물뿐일까? 근면 성실하다는 말을 좋아하는 사람답게, 어떤 일이 내가 원하는 대로 진척되지 않으면 안달복달한다. 글쓰기만 해도 그렇다. 작문 강좌에서는 일단 쓴 파일을 폴더에 저장한 후 한참이 지난 뒤에 다시 열어 보라고 한다. 나는 그 말을 한가한 소리로 여겼다. 글을 묵혀 두기는커녕, 바로 폴더에 들어가 파일을 열고 고치고 또 고치기를 반복한다. 어떤 때는 글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낯설고 어설프게 된다. 억지로 꿰맞추려다 보니 어색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처음 원고가 남아 있는 경우에는 다시 돌아가서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부지런히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고 꼼꼼하게 저장한 경우에는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한숨을 내쉬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어이구, 가만히 내버려 둘걸. 이놈의 성질머리는.”
무너지는 성전을 빠져나와 아버지는 존스 박사에게 “엘사는 정말로 성배를 믿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엘사라고? 이전 장면들에서 존스 박사가 여자를 뭐라고 부르긴 했지만,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흘려들었나 보다. 엘사와 ‘온라인 카지노 게임 it go’라니…. 〈겨울왕국〉의 엘사와 그녀가 부른 ‘온라인 카지노 게임 it go’가 떠오른다. 날씨는 후텁지근하고 글쓰기도 지지부진하다. 이제 골머리 그만 앓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 it go’를 듣자. 그래, 내버려 둔다고 해서 무슨 일이 생기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