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게임, 그냥 카지노 게임
큰 통창에 습기가 가득 차있는 카페. 주황색의 전구는 채도가 낮아서 계절의 맛을 더 깊게 하고 익숙한 음색과 낯선 멜로디의 재즈 사운드는 다가온 카지노 게임을 더욱이 상기시켜 주며, 그날의 기억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 것이 심장을 조금 더 빨리 뛰게 만드는 것 같다. (마침 그 자리이기도 하고.) 오늘은 오래전에 사두었던 책 하나를 챙겨 나왔다. 나는 기필코 앉은자리에서 책의 페이지를 많이 넘기자고 굳게 마음을 먹는다. 일보에 없던 다발의 흰 눈. 예측 불허의 날씨는 반갑고 또는 쓸쓸하다.
사랑을 노래하는 책이라 그런 것일까? 언젠가 네게 자주 뱉었던 사랑 고백에 대해서 떠오른다. 하지만 오늘, 익숙한 사랑 노래가 흘러나와도 쉽게 흥얼거리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다. 또한 내가 느낀 사랑을 완전히 해부하여 정확하게 설명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타자가 도래하기 위해 나의 자아를 파괴해야 한다.’ 웃음이 나온다. 동의를 함과 동시에 초라해진다. 나는 눈에 초점을 더 확실히 맞춘 뒤 한 글자, 한 단어, 한 문장을 날카롭게 응시한다. 모르는 단어는 사전을 뒤져 찾아내고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되뇐다. 밑줄을 치기도 한다. 짧은 감탄사와 함께 혹은 탄식일지도. 저자와의 대화도 시도해 본다. 동의를 하기도 하지만 의문도 생기기 마련. 어느새 머그잔 속 커피는 바닥을 보인다. 한 잔을 더 주문할지 고민하다 이내 카페를 나선다.
책을 그만 읽고 싶은 것인지 집에 가고 싶은 것인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지만 우선 걷는다. 걷는 내 모습은 고개가 떨구어져 있는데, 카지노 게임따라 몇 년을 함께한 검정색 구두의 주름이 잘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