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하게 말하자면, 목표와 가치, 의미였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내가 25살 때, 삶의 목표를 정하고 48살이 된 오늘 이 순간까지 일관된 삶을 산 것, 거기엔 분명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내가 추구하고자 했던 가치 : 더 많은 이에게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어 그들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좋게 말하면, 타인의 행복, 공익이었다. 나는 좀 별난 사람이어서 그랬는지 그 목표 하나로 내 삶을 살았다. 작가란 꿈도 바로 이 가치 위에서 결정한 것이다.
기자가 된 것은, 첫째는 나 역시 먹고 살 방법이 필요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크게 벗어나 있지 않은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기자(카메라기자)가 되고 나서 나는 지옥을 경험했다. 그야말로 직장인 마인드로 무장한 이들을 상대로 맞서야 했고, 그렇게 맞선 대가로 집단 내에서 혹독한 생활을 감내해야 했다. 직장 생활 하시는 분들은 내 이야기가 대충은 어떤 것인지 알리라. 집단 생활의 제1 덕목은 튀지 않는 것인데, 나는 언제나, 수시로 튀는 사람이었다.
내 삶이 가치와 목표를 따라 온 것이긴 해도, 그 뿌리에 깃들어 있는 것은 느낌, 즐거움, 감정 같은 것이었다. 이게 좋겠다는 느낌, 이렇게 산다면 즐겁고 행복하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이 나를 이끌었다. 작가가 되고자 한 것은 책의 확장성(많은 사람들에게 내 말을 들려줄 수 있는 도구) 때문이기도 했으나, 책 쓰는 일이 즐겁지 않다면, 그 일이 내게 재미를 주지 못한다면 결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글 쓰는 일이 무척 카지노 게임운 사람이다.
글 쓰는 일은 고통이란 말이 있는데, 동의한다. 아니, 그럼 카지노 게임과 고통이 어떻게 둘 다 있을 수 있는가? 라고 물을 수 있겠다. 그러나 만물의 이치가 그러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축구선수는 축구가 좋아서 축구를 시작했겠지만 선수가 되는 과정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닌가? 글쓰기도 똑같다. 글 쓰는 게 좋아 작가가 되었으나 고통 없이는 결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고백하건대, 한 문장을 쓰려고 몇 달을 고민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상상해 보시라.
모든 카지노 게임 그러하겠지만, 이 고통의 터널을 빠져나올 수만 있다면 그 너머에 고속도로가 열린다.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겠으나 그만큼 실력과 통찰의 그릇이 커지는 카지노 게임다. 처음 작가가 되고자 했던 25살의 어린 나와 지금의 나 (23년이 흘렀다)는 완전히 다르다.
지난 23년 동안, 카지노 게임 하루를 백 년처럼 쪼개어 쪼개어 분투하고 투쟁하고 벼랑 끝까지 나 자신을 몰아붙이며 살았다.
이 삶은 돌아볼 때, 고통의 삶이 아니라 카지노 게임의 삶이었다. 매 순간이 즐겁게 기억될 뿐이다. 적어도 나에게, 그 이상으로 밀도가 높고 충만하며 아름다운 시간은 샹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재미, 카지노 게임, 행복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고백하게 된다.
내가 카지노 게임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도 이런 삶일 뿐이다. 1분 1초가 즐겁고 재미있는 삶. 의식의 흐름 대로 흘러가도 그것으로써 최선인 삶 말이다. 물론 그러한 레벨까지 이르는 데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노력해야 하고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내 아이들이 어느 분야에서건 그러한 삶을 영위하리라는 것을 의심한 적이 없다. 카지노 게임 내 딸들을 그렇게 가르쳤고, 그렇게 길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