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새벽 Apr 20. 2025

카지노 게임

케이에게

어제는 공원을 걷다 현웃이 터졌어. 팻말에 걸려 있는 식물 이름 때문이었지. 좀작살나무. 그걸 보며 난 식물학자들이란 참 화가 많은 존재 아닌가 생각했어. 뭘 어떻게 작살내고 싶길래 저런 이름까지 고안해냈을까. 흐흐. 그러면서 동질감도 들었어. 왜냐하면 나야말로 요새 뭘 좀 작살 내고 싶은 그런 기분이었거든.


케이.

시간 지나고 돌아보면 지금은 이렇게 기억될 한 때인 것 같아. ‘회사 동료 케이와 치열하게 일과 조직에 대해 고민했던 시기.’ 그래서 말인데, 업무시간에도 의논하자고 찾아와주고 밤늦게도 집앞으로 맥주 한잔하자며 찾아와줘서 고마웠어. 주제가 뭐든 대화하고 싶은 카지노 게임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잖아. 너에게 그게 나라는 건 특히 기분 좋은 일이더라.


우리를 결속 있게 묶어준 것은 뭘까.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아무래도 위기 의식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 우리 프로젝트는 곧 서비스 론칭을 하잖아. 기한은 임박했는데 정신차리고 일하는 카지노 게임은 없는 것 같다고 우리는 느꼈지. 그래서 둘이서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2분기 팀 비상운영계획까지 들고 나섰네. 밤에 화상으로 만나 회의까지 해가면서.

너와의 결속은 좋았지만 결과는 별로 였어. 듣는 카지노 게임은 없었고 안달이 난 건 여전히 우리둘뿐이었지. 기분은 좀작살나무처럼 되고 말았고.


케이. 한번은 네가 물었지? 이 모든 문제를 팀장에게 정확하게 알렸냐고 말야. 네가 보기엔 안 알린 것 같은데, 혹시 알아봤자 해결 못할 위인이라고 생각해서는 아니냐고 물었지. 나는 부인했어. 이미 다 말했다고 말야.

그런데 사실 케이. 네 말이 맞아. 의도적으로 뭔가 감춘 적은 없지만, 팀장에게 적극적으로 답을 구한 적이 없는 것도 사실이야. 네 말대로, 나는 그의 문제해결 능력을 조금도 신뢰하지 않으니까.


케이. 이전 직장에서 너는 일찌감치 리더자리에 올라 다양한 팀원들과 다양한 경험을 만들었다고 했지. 나는 그런 얘기 듣는 게 참 즐거웠어. 너에겐 참 값진 경험이 많더라. 성취를 위해 참 노력하는 너의 태도도 멋지고 말야.

그런데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들었어. 네게 다소 성급한 면이 있어 보인다는 생각이. 케이가 카지노 게임을 흑과 백으로 나누는구나. 게다가 그걸 너무 빨리 해버리는구나.

솔직하게 그 얘기를 꺼내자 너는 진중하게 경청했어. 그 모습을 보면서 느꼈지. 아. 이 카지노 게임은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도 있고 자신감도 넘치지만 그게 다가 아니구나. 더 잘하고 싶어하고, 무엇이든 개선할 준비가 된 카지노 게임이구나. 더 잘할 카지노 게임이구나 하고 말야.


그렇게 너와 가까워지는 동안, 나는 점점 회사 생활에 지쳐가고 있었어. 혼자 열심히 뛰면 뭐해. 도통 들을 생각이 없는 사람들뿐인데 말야. 팀장도 동료도 같이 일하는 다른 부서도 모두 한심하게만 보였어. 그런데 그 무렵 읽던 책을 통해 좀 생각이 달라지더라. 그 책은 경영학 코칭 서적도 아니고 유명한 창업가의 에세이도 아니고 카지노 게임에 관한 책이었는데…


어떤 이는 투수가 공을 던져야 비로소 카지노 게임가 시작된다고 했다. 이것은 투수의 시선으로 본 카지노 게임다. 또 다른 이는 포수가 사인을 내야 투수가 움직인다고 했다. 이것은 포수의 시선으로 본 카지노 게임다.


이 단락을 읽고 생각이 많았어. 사실 그동안 나는 스스로를 에이스 투수라고 생각했었거든. 그러다보니 내가 던지는 공 하나하나가 팀의 승패를 좌지우지할 거라고 믿었나봐. 다른 카지노 게임은 어차피 승패에 기여를 못한다. 그러니 제발 다들 내가 하자는대로 좀 했으면 좋겠다…라고. 엄청 오만한 생각이었지.

그런데 저 네 문장을 읽고 자기 객관화를 해보게 됐어. 너무 내 시선으로만 이 게임을 바라봤던 거 아닐까. 눈앞에 분명히 포수가 있었을텐데. 분명히 내게 사인을 보내고 있었을텐데. 한번도 쳐다본 적이 없었구나 싶었어.


책을 읽은 날은 금요일이었어. 그리고 주말에 걸쳐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지. 태도를 좀 바꿔보자. 원맨팀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자. 포수의 사인을 기다렸다가 던지자. 그런 생각이었어.

월요일 아침, 회사에 도착해 한 가지 태도부터 바꿨어. 그게 뭐였냐고? 바로 가만히 있는 거였어. 자꾸 나서서 이게 맞네 누가 틀렸네하지 말고, 모든 카지노 게임이 충분히 정보를 주고받고 대화하도록 두는 거였어. 결과는 대성공. 덕분에 모처럼 평화롭게 주간회의가 마무리됐지. 그날 회의가 끝나고 너도 말했잖아. “오늘 아침은 왜인지 별탈 없이 스무스했다”고 말야.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 문제는 나였는지도 몰라. 나는 흑과 백으로 카지노 게임을 나누는 걸 넘어 내심 모든 카지노 게임의 능력을 무시하고 있었거든. 그러면서 스스로를 맹신하고, 전혀 들을 준비가 안돼 있었거든.


책을 읽으며 생각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들어 볼래? 지금 우리팀은 한 뜻으로 민첩하게 움직이지 못하고 좌충우돌 혼비백산 하잖아. 와중에 너와 나는 좀 더 잘해보겠다고 워크샵까지 개최했다가 실망만 크게 했고 말야. 나는 그게 다 프로젝트의 실패의 징조일 줄 알았는데 말야, 어쩌면 이게 성공의 징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처음 책을 통해 해봤어. 그 얘기를 하려면 잠깐 시간을 좀 거슬러 올라가야겠다. (여기서부턴 꼬꼬무 톤으로 읽어주기 바라)


1986년 가을, 대한민국은 카지노 게임 열기로 뜨거웠대. 해태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간의 한국 시리즈가 열리고 있었거든. 양팀은 엄청난 관심 속에 분투하며 각각 1승을 올렸어. 그리고 경기장은 광주에서 대구로 옮겨가, 3차전이 시작됐지. 삼성 팬들 입장에서는 홈경기가 됐으니 한층 응원에 열기를 올렸을 거야.

홈팬들의 응원 덕분이었을까? 삼성은 초반부터 3점을 내며 경기를 리드하기 시작해. 그런데 해태도 만만치 않았어. 곧바로 3점을 내며 바짝 추격했지. 과연 이 경기는 어떻게 될까. 접전 끝에 해태가 6대 5로 승리했대.

중요한건 그때부터야. 삼성팬들이 분노하기 시작한 거야. 처음에 그들은 소리를 좀 지르다, 이후에는 해태 선수단의 버스를 향해 돌을 던졌어. 급기야 누군가에 의해 버스에 불이 붙는 일까지 벌어졌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된 대구와, 이를 지켜보던 KBO는 크게 놀랐어. 카지노 게임 계속 해도 되나? 이러다 내전이라도 발발하는 거 아니겠지?

고민 끝에 KBO는 전화를 한 통 걸었대. 그것은 다름 아닌 국제전화였다는데…


KBO는 경기 경험이 많은 MLB 커미셔너사무국에 연락해 자문을 구했다. 그런데 그쪽의 대답이 상상외였다. “걱정스럽다”가 아니라 “축하한다.”였다. 그처럼 홈 팬들의 열성이 뜨거운 한국이라면 프로카지노 게임의 성공은 확실하다며 오히려 부러워했다. 결국 우리 프로카지노 게임는 팬들의 그런 뜨거운 반응이 있었기에 국민 스포츠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케이. 1986년 삼성팬들의 행보가 어쩌면 지금 우리의 그것인 것 아닐까. 우리의 열정은 다소 지나친데가 있는 것 아닐까. 아직 승패가 갈린 것도 아닌데 몸이 달아 올라서 어쩔 줄을 모르잖아.

그렇다 하더라도 희망은 는 것 같아. MLB에서 그랬다잖아, 축하한다고. 지나친 열정이란 걱정스러운 게 아니라 축하할 만한 것. 난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어.


여기까지 쓰고보니 좀 웃기다는 생각도 드네. 고작 카지노 게임 책 한 권 봤다고 뭔가를 깨달아버린 양 구는 게. 그런데 간절한 사람한테는 뭐든 단서가 되는 모양이더라. 네가 별탈 없이 ‘스무스’했다고 말한 날 저녁, 팀장이 그러더라고. 자기 오늘 좀 다르지 않냐고. 평소보다 차분하고 덜 공격적이지 않냐고. 누가 맞장구치자 팀장이 그러대. 주말에 교회가서 기도하고 왔다고 말야. 순간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말했어.

“예배를… 매일 가실 수는 없는 걸까요?”

그러자 팀장이 깔깔 웃었어.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낄낄 웃었지. 어쩌면, 앞으론 좀 많은 것들이 나아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그때 처음 들었어.


신뢰는 서로에 대한 존경으로 이어진다. SK의 김광현은 2010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4차전 투수로 한국 시리즈를 끝내면서 인상적인 장면을 남겼다.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모자를 벗어 포수 박경완에게 인사를 했다. 자신을 잘 이끌어준 베테랑 포수에 대한 최고의 예우였다.


케이.

누군가는 이렇게 회사일에 진지하게 고민하는 우리를 보고 비웃기도 해. 그거 어차피 회사일 아니냐고, 지나가면 별 것도 아닌 고민이라고, 왜 그리 힘빼냐고 묻는 사람들 있지. 그에 관해 책에서 인용한 말을 여기 재인용하며 편지를 마칠게. 이번주도 수고하자. 그리고 곧 만나서 마시자. 그날을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남으면 책 한 권 읽어도 좋고. 뭘 읽어야 할 지 모르겠다고? 글쎄. 내 생각에는 김종건 전문기자의 <카지노 게임가 10배 더 재미있어지는 55가지 이야기(원앤원스타일, 2014)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카지노 게임는 단지 게임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사실이죠, 그랜드캐니언도 애리조나에 있는 구멍일 뿐이고.
-조지 윌(<워싱턴포스트지의 칼럼니스트)


P.S

좀작살나무를 영어로는 ‘카지노 게임(beautyberry)’라고 한대. 보석 같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다는 뜻에서 말야. 과연 사진을 찾아보니 아름다운 열매네. 작살내고 싶은 기분을 나타내는 그런 식물인 줄 알았는데 역시, 성급한 결론은 자주 틀리는 모양이야.

그나저나 이렇게 부딪히고 깨지는 우리의 지금도, 돌아보면 카지노 게임인 것이겠지?


2025. 04. 20

덕아웃에서

새벽 씀


카지노 게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