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쿠폰17, 17번째 미키가 보여주는 한국사회 아니 세계의 현실
복제란 개념은 가치를 떨어뜨린다. 유일무이한 한 가지일 때 모든 존재는 가치가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같은 것이 또 존재하고, 나아가 계속 복제될 수 있을 때 원본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사진이나 문서 같은 사물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것이 생명을 가진 존재라면 말이 달라진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카지노 쿠폰17의 미키 반스(로버트 패틴슨)는 '익스펜더블(expendable)'이란 직군에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도 모른 채 지원한다. 니플하임 행성 이주 프로그램에 들어가려면 이렇다할 기술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하나도 없어서 별 자격 조건도 없는 '익스펜더블'에 지원한 것이다. '익스펜더블'은 그 말뜻 그대로 소모품 역할을 하는 일이다. 여러 잡스러운 유기물질들을 뒤섞어 육신을 기록된대로 프린팅해내는 기계를 통해 미키는 죽은 후 반복적으로 복제된다. 죽었다 살아나기를 반복하는 것인데, 기억마저 지워진다면 그건 삶이라 말하기 어렵겠지만, 이 기계에는 복제된 미키에게 업데이트된 기억들을 주입시키는 기능(?)도 들어있다. 그래서 미키는 계속 죽지만 삶이 이어진다.
삶이 이어지지만 중요한 건 죽어도 다시 살게된다는 그 관념이 만들어내는 이 존재에 대한 사람들의 가치 평가다. 니플하임 행성에 도착해 크레바스에 떨어져 죽게 생겼지만 마침 나타난 친구 티모(스티븐 연)조차 그를 굳이 구하려 하지 않는다. 왜? 어차피 주어도 다시 복제될 텐데 뭐하러 힘들게 구하느냐는 것. 그리고 심지어 그런 티모의 이야기에 니키 역시 수긍한다. 그러면서 다가오는 외계 생명체가 제발 한 번에 먹어줬으면 하고 바란다. 스스로까지 자신의 삶의 가치를 이처럼 '익스펜더블(소모품)' 취급하게 된 데는 그 복제라는 인간 프린팅 기술 때문이다. 그 기술을 이용해 미키는 행성까지 가는 우주선 안에서 인간이 그 행성에서 생존할 수 있기 위한 갖가지 실험을 당하는 실험쥐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그것이 위대한 인간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이 이주 프로그램의 리더 케네스 마샬(마크 러팔로)은 강변하지만, 미키는 16번째 죽는 실험을 당하고 17번째 태어나도 되는 진짜 소모품이 되어 버린다. 미키를 프린팅하는 기계는 마치 프린터처럼 생겼고 그래서 복제되어 나오는 미키의 모습은 프린터에서 비져 나오는 종이처럼 보이는데, 그래서인지 미키는 마구 아무렇게나 사용되다 버려져도 되는 소모품처럼 쓰인다.
<카지노 쿠폰17은 바로 그 실험쥐처럼 소모품 취급 당하며 '죽는 것이 일인' 미키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소 잔혹한 하드고어 같은 끔찍한 느낌을 영화 초반부에 느끼게 한다. 또 봉준호 감독 특유의 블랙코미디가 섞여 그 잔혹함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를테면 노동현실 같은)을 떠올리게 하면서 자학적인 웃음을 피어나게 만들기도 한다. 우주 바깥에서 손목이 날아가는 그 장면에서 우리네 노동현장에서 여전히 벌어지는 '손무덤'으로 대변되는 착취적 노동현실이 떠오르는 건 그래서 자연스럽다. 흔히들 '몸을 갈아넣어서 일한다'고 한국인들은 종종 표현하는데, 미키는 실제로 그렇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반복되고 그럼에도 큰 변화없이(실제로 70년대나 지금이나 노동현실은 그리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굴러가는 세상 앞에서 우리는 둔감해진다. 그건 손목이 날아가는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어도 누구나 그 자리를 대체하는 또 다른 노동자가 있다는 암묵적인 믿음이 만들어내는 둔감함이다. 미키도 그렇다.반복되는 다양한 죽음들이 처음에는 잔혹하게 느껴지지만 관객들은 차츰둔감해진다. 손목이 날아가든,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피를 토하다 죽든, 활활 타는 불길에 던져지든 어차피 다시 카지노 쿠폰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케네스 같은 니플하임 행성 이주 프로그램의 리더와 그의 아내 일파(토니 콜레트)는 자신과 다른 존재들을 소모품처럼 바라보는 인물이다. 행성까지 가는 동안 우주선 안에서 지내는 이들에게 칼로리 소모를 최소화해야 한다며 사랑조차 금지시킬 정도로 인간 자체를 목적을 위한 소모품 정도로 여긴다. 그러니 17번째 복제된 미키를 어떻게 보겠는가. "너는 소모품이야. 소모되기 위해 여기 있는 거야"라고 그가 외치는 모습이 당연해 보인다. 또 행성에 그 곳에 살아가는 생명체인 크리퍼들 또한 마찬가지다. 케네스는 새 식민지에서 씨를 퍼트려 후세를'생산할' 한 여성이 크리퍼에게 먹혔다는 사실에 분개해 그들을 모조리 독가스로 제거하려 한다. 음식 소스에 집착하는 그의 아내 일파는 잡아온 베이비 크리퍼의 꼬리를 잘라 소스를 만든다. 이들에게는 미키나 크리퍼나 모두 소모품이다.
영화 상영 후 케네스에게서 트럼프가 떠오른다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는데(물론 봉준호 감독은 특정 정치인 풍자가 아니라고 단언했지만) 그건 이 자신만을 중심으로 생각해 타자들은 소모품 취급해버리는 세상의 모든 권력자들(정치가든 기업가든)의 잔혹함이 그 인물에 투영되서일 게다. 복제는 이처럼 기술이면서도 하나의 관념처럼 작용한다. '익스펜더블'이라는 관념은 세상의 고유한 가치를 가진 무수한 존재들을 소모품처럼 취급해도 된다는 무자비한 생각을 만들어낸다. 수치로 환산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렇다. 생명들조차 가격의 꼬리표가 붙고, 하다못해 인간들도 연봉 같은 꼬리표가 달린다.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을 표의 수로 판단하고, 기업가들은 소비자들을돈의 액수로 환산되는 고객으로 판단한다.여러 권력자들에 의해 '익스펜더블'한 존재로 치부되는 사회 속에서 우리 스스로도 자신을 '익스펜더블'로 생각하게 된다. 미키처럼. 과연 이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미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나샤(나오미 아키)라는 연인이 있었다. 모두가 소모품 취급하는 미키를 유일한 사람으로 보듬어주는 사람이다. 실험용으로 죽어가는 미키를 방호복을 입은 채 꼭 껴안아 주는 그런 존재이고, 두 사람만의 숫자로 그것이 어떤 섹스의 체위인지가 통할 정도로 각별한 존재다. 미키는 나샤의 품 안에서 그렇게 소모품이 아닌 사람으로서 살게 되는데 그렇다고 그들이 각성하는 건 아니다. 미키의 각성은 크레바스에 빠져 크리퍼들에게 죽은 줄 알았던 그가 돌아오면서 일어난다. 자신이 죽은 줄 알고 미키18이 프린팅되어 나왔다는 걸 알게 된 미키는 그가 나샤를 차지하려 하자 이를 막으려 한다. 자신의 복제인 미키18의 등장을 통해 오히려 유일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각성하게 된 것이다. 카지노 쿠폰17과 미키18 그리고 나샤의 기막힌 동거는 그래서 그들을 각성시키면서 동시에 연대하게 만든다.이것은 봉준호 감독이 이 '익스펜더블'한 세상과 맞서는 방식이기도 한데 소모품 취급받던 이들은 그렇게 연대함으로써 저들과 대항한다. 카지노 쿠폰는 심지어 케네스에게 '익스펜더블'이 되어버린 크리퍼들과도 소통하고 연대한다.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 <카지노 쿠폰17에는 이 대사가 반복된다. 죽었다 다시 재생되는 미키에게 잔인하게도 주변 동료들은 그런 질문을 던진다. 물론 두렵고 끔찍한 경험이지만 미키의 죽음이 진정한 죽음의 기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차피 다시 재생될 걸 알고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카지노 쿠폰17은 죽음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지만, 이를 통해 진짜 묻고 있는 건 '존엄한 죽음' 아니 나아가 죽음으로써 비로소 증명되는 인간의 존엄에 대한 질문이다.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라고 묻는 상황에 존엄이 있을 턱이 없다. 또는 누군가에 의해 떠밀려지거나 방치되는 죽음 나아가 생에 대한 애착 없는 죽음도 마찬가지다. 대신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죽음에는 숭고한 인간의 존엄이 생겨난다. 카지노 쿠폰17은 미키18의 선택을 통해 그 존엄을 발견한다.
<카지노 쿠폰17은 전 세계의 '익스펜더블' 경향을 날카롭게 포착해 풍자해낸 작품이지만, 더할 나위 없이 한국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이건 개인적인 인상이지만, 할리우드 영화를 보며 니플하임 같은 변방에서 자라온 '할리우드 키드'들이 그 반복된 복제 혹은 오마쥬를 통해서 자신들만의 세계를 찾아나간 한국영화들에 대한 이미지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후발자의 이득을 가진 채 독재에 의해 개발되고 무한실험되어 서구가 300년 동안 해왔던 근대화를 30년만에 복제해내면서 맞이하게된 많은 부작용들을 각성하고 그 문제들을 자신의 영화 속에 녹여냈던 무수히 많은 감독들의 전사(前史)들이 봉준호1, 봉준호2, 봉준호3... 를 거쳐 지금의 봉준호에 도달했던 건 아닐까. 그런 상상까지 해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202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