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카지노 게임, 내 아픈 손가락은 너야 -2
그 후의 이야기
최근 지난 브런치 글에서 이야기했던,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와 그의 가족사를 오마주한 시놉시스를 완성했다.
당초에 계획했던 것과는 아주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정말 마음에 든다!
처음에는 2인극, 아니면 1인극으로.. 등장인물들이 제카지노 게임, 유진 오닐, 누레예프, 마고트 폰테인을 번갈아가며 연기하면 어떨까.. 유진 오닐이 가면을 활용한 극을 꽤 여러 번 썼으니 나도 그런 모습을 오마주해서 가면을 이용하면..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갑자기 다른 생각이 떠올랐던 것 같다. 어쩌다 이런 생각이 떠올랐는지, 꽤 최근의 일인데도 잘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현대 배경 속에서, 유진과 제이미가 이야기를 나누는 거다. 물론 진짜 과거에 존재했던 유진 오닐과 그의 형 제임스 오닐 2세(애칭이 제이미다.)가 아니라, 이 두 사람을 모델로 한 인물들이다. 실제로 유진 오닐의 어머니는 서부 쪽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이들 가족의 근거지는 동부였고, 유진 오닐의 형 제이미가 어머니의 유해를 모시고 동부로 왔다. 자기 작품의 개막공연을 앞두고 있던 유진 오닐은 뉴욕에서 형을 기다렸다. 그때 기차 안에서 제이미는 하도 취해서 인사불성이었으며, 어머니의 유해를 어디에 뒀는지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이것이 내 극의 시작점이 되었다.
성공한 극작가인 카지노 게임은 뉴욕에 머물며 극을 쓴다. 어머니가 한국에서 돌아가셨다. 언니 재이가 장례를 치르고 어머니의 유골함을 가지고 뉴욕에 온다. 카지노 게임은 자신의 작품의 첫 브로드웨이 개막공연을 앞두고 있오 한국에 들어가보지 못했다. 카지노 게임이 언니를 공항으로 마중나가보니, 언니는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고 어머니의 유골을 어디에 뒀는지도 헷갈려한다. 카지노 게임이 상황을 수습하여 언니를 호텔방으로 데려온다. 언니가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사이,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며 푸념을 하고, 오늘이 자신의 작품 개막공연이니 공연 보고 끝난 후에 전화로 관객의 반응을 알려달라고 한다. 카지노 게임은 자기 작품의 개막공연을 보지 않는 습관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 떨리니까.
전화를 끊고 잠시 후 재이가 깨어나 카지노 게임을 연신 ‘우리 꼬맹이’라고 부르며 애정을 표한다. 브로드웨이에서 카지노 게임의 작품이 공연되는 동안 자매는 호텔방에서 대화를 나눈다. 애정, 원망, 독설, 후회가 오간다..
시놉시스를 죽 다 쓰고 나서, 정말 마음에 들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예상하지 못했던 몇가지 재미있는 지점들도 생겼다. 먼저, 카지노 게임이 스스로를 아주 절제하며 가족과 자신을 구원하려 애쓰는 인물이 되었다는 점. 사실 실제 작가 카지노 게임 오닐은 젊어서 알코올 중독이었고 선원이 되어 바다를 오가다 술집에 눌러앉아 외상으로 술을 받아먹기도 하는 등 상당히 망나니 생활을 했다. (실제 그의 초기 작품들은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해양극들이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은 ‘신조차도 흠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살고자 한다. 그런 카지노 게임이 책임을 놓아버리고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재이와 대비되는 구도가 좋았다. 사실 내 안에도 그런 욕구가 있었으니까. 책임이며 올바른 삶이며 다 놓아버리고 막 살아보고 싶다.. 그런 욕구 말이다.
그리고 시작부터 결말까지 한 장소에서 한 호흡으로 죽 달음질치는 속도감도 너무 좋았다. 대사 흐름도 박진감이 넘치고.. 결말도..여기서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니까 말은 안 하겠지만! 내게는 강력했다.
와, 이건 진짜 누가 제작만 해주면 금세 초고로 완성해서 무대에 올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진짜 좋은데! 혼자 그런 생각을 했다. 언젠가는 기회가 올 수도 있겠지?
-저의 지난 글을 아직 못 보신 분은 다음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표지 카지노 게임지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밤으로의 긴 여로』 개인 소장본을 직접 촬영한 사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