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
1주일마다 1편의 글을 정기적으로 쓰고 있다. 2년 전부터 애쓰고 있는 일이다. 우연한 기회로 시작한 일이 지금은 일상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이번 주는 쓰지 말까?’라는 유혹에 시달리지만 그래도 매주의 루틴이 되었다.
무언가를 창작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 주는 뭐 카지노 쿠폰? 하는 걱정으로 글감에 허덕이다 보니 결국 신변잡기식의 별의별 소재가 다 등장한다. 우리 반에 있었던 아이들과의 일도 쓰고, 남편 흉을 보기도 하고, 산과 들을 다니며 본 것들도 풀어놓는다. 그 옛날 사춘기 시절엔 행여 누가 볼까 싶어 꽁꽁 숨겼던 일기장을 이제는 만천하에 스스로 공개하는 걸 보면 얼굴 참 두꺼워졌다.
가장 오래전 기억은 아홉 살 그림일기다. 따사로운 햇빛이 내리쬐던 어느 오후였을 것이다. 마루에 배를 깔고 엎드려 어설픈 그림을 그리느라 낑낑거리고 있는데 구세주처럼 아빠가 나타났다.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고 집에 계셨던 아빠는 나를 데리고 돼지우리 앞으로 갔다. 하얀 종이 위로 납작한 돼지코, 팔랑 접힌 귀, 그리고 퉁퉁한 몸통, 짧은 다리 네 개, 꼬부랑 돼지꼬리가 스삭스삭 그려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세상에서 제일 멋진 새끼 흑돼지 한 마리가 탄생카지노 쿠폰. 핑크빛 새끼들도 몇 마리 그렸던 것 같은데 크기도 훨씬 작았거니와 워낙 검은 놈이 강렬해서 존재감이 미미카지노 쿠폰. 아빠가 그려준 멋진 흑돼지 덕분인지 글이 저절로 써졌다. 같은 어미에게 어떻게 색깔이 다른 새끼가 태어났는지 알쏭달쏭하고 신기하다는 얘기를 썼을 것이다. 그 일기장은 잦은 이사 탓에 사라졌지만 신기하게도 아직도 그날의 그림과 작문 내용이 생생하다. 그림이든 글쓰기든 주인공이 있어야 한다는 걸 아빠의 그림 속에서 어렴풋이 배웠던 것 같다.
초등학생땐 글짓기로 곧잘 상을 받았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국어 시간을 가장 좋아했고 교과서에 나오는 시들은 모조리 암송했다. 혼돈의 사춘기는 고전 문학작품을 읽으며 ‘사랑’도 ‘인생’도 미리 경험했다. 가슴이 일렁이고 바람만 불어도 하늘로 둥실 떠오를 것만 같았던 날들도 있었다. 등굣길에 만나는 잘생긴 남학생을 마음에 담고 밤늦도록 편지를 썼다. 우울한 날들도 빼곡히 채워졌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학생운동을 하던 큰오빠의 감옥행, 온몸으로 그 모든 걸 감당하던 엄마의 모습은 열여덟 소녀가 감당하기엔 버거운 것들이었다. 밤이 유난히 시릴수록 슬픔을 꼭꼭 눌러썼다. 공부만 하는 모범생들을 ‘비겁한 이기주의자’로 손가락질하던 열혈 전교조 선생님이 싫어 독설을 한가득 쏟아내기도 했다. 그땐 정말 카지노 쿠폰 않으면 내가 소멸될 절체절명의 시기였다.
말랑말랑하던 내 글은 대학 학보사를 다니면서 큰 변화를 맞았다. 도대체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똑똑한 동기들이 맨날 구박을 했다. 선동하는 카지노 쿠폰 쓰라는 말로 들려 우리가 무슨 권리로 누굴 가르치고 변화시킨단 말인가 반항하고 거부하고 싶었다. 그때는 논리적이고 직설적인 게 수준 낮은 언어처럼 느껴졌다. 문학반에나 갈 걸 주제 파악 못 하고 번지수 잘못 찾아든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절 기사를 쓰며 객관성을 담보한 글쓰기와 부족한 논리력을 배웠다.
첫 직장도 글쓰기와 무관치 않은 곳이었다. 글을 다루는 직업은 스트레스가 많았다. 마감시간의 피 말리는 긴장감을 즐길 즈음 일을 그만뒀다.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가 공부하고 두 아이를 키우며 학교에 근무한 10여 년은 글을 쓴다는 건 감히 생각지도 못한 시간이었다. 연년생 독박 육아와 새로 시작한 일에 적응하느라 지쳐 쓰러져 잠들기에 바빴다.
다시 글을 끄적이기 시작한 건 둘째 딸 덕분이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남달랐던 작은 아이의 사춘기는 평온한 집안에 풍파를 일으켰고 부모로서의 답답한 마음을 카카오스토리에 올렸다. 지인들은 남의 집 사건 사고에 재밌다는 반응을 보이며 위로받는다고도 했다. 어쩌다 뜸하면 요즘은 왜 글 안 올리냐며 궁금해했다. 내 이야기에 누군가 귀 기울이고 내 글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묘해졌다. 코로나 시절 쓰던 교단일기엔 반 학부모님들의 반응이 대단했는데 그 경험도 쓰기를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사실 카지노 쿠폰 쓰지 않을 때도 큰 문제없이 잘 살았다. 그런데 되돌아보니 즐겁고 신나고 행복한 때도, 허기지고 답답하고 힘들었던 순간도 끄적거렸다. 고통스러울 땐 정리하며 떨쳐버리고 싶어서 펜을 들었고, 가슴 떨리도록 설레던 순간에 그 기억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쓰고 싶은 욕망이 나의 밑바닥엔 늘 꿈틀대고 있었나 보다.
명작을쓴 대작가들의 삶은 대부분 비범했다. 그들의 운명은 가혹했고 외로움과 고단함은뭔가를 토해내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 결국 위대한 글을 남겼는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그저 그런 사람의 글 속엔 줄 그으며 곱씹을 만한 명문 한 줄 없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사 모두 비슷하니 보통 사람의 글도 나름의 의미는 있지 않을까 한다. 평범한 일상에서 위로와 공감은 더 커질 수도 있는 법이니 말이다. 맨날 스테이크 같은 특식만 먹고살 순 없다. 술술 넘어가서 속 편한 된장국 같은 밥상도 받아야 하지 않겠나. 은유 작가의 말을 빌리면 나의 글쓰기는 ‘생존의 글쓰기’는 아니고 아마도 ‘향유의 글쓰기’쯤 되겠다.
릴케의 문장을 내 식으로 고쳐보겠다. ‘카지노 쿠폰 쓰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거라 믿지만, 더 잘살기 위해 오늘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