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인 응급의학과 교수/수필가
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하나의 키워드로 설명하는 것은 무례하다.
아니,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남궁인은 누구인가.
그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다. 이대목동병원 응급실에서 생사의 순간을 목도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다.
동시에 그는 작가다. “그린보트에 초대된 명사들 중 2번째로 어리다”며 겸손으로 시작한 그의 이야기가 “제가 원하는 세상은 이런 겁니다”라는 포부에 이르기까지.
카지노 게임 사이트 남궁인이 아닌, 인간 남궁인의 스토리다.
저는 전문의 17년 차입니다. 작가/수필가 등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강연 일들도 하고 있고요. 오늘 할 얘기는 그냥 제 얘기예요. N잡러 여정 가보겠습니다.
제 본업은 카지노 게임 사이트입니다. 보통 드라마 주인공 역할이죠. 이렇게 잘생기신 분들, 걸어 다니는 조각이라고 생각하셨나요? 저는 뭐... 보시다시피 그냥 잘 걸어 다니는 사람입니다.
제 첫 목표는 의대가 아니었어요. 평범한 중고등학생이었어요.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보통 대답을 못해요. 어른들은 줄기차게 물어보는데. 딱 하나 제가 하나 달랐던 점은 중2병이었어요. 사춘기를 엄청 세게 맞았어요. ‘나는 왜 이렇게 치명적이게 태어났을까’, ‘난 주인공인데 왜 다른 카지노 게임 사이트들은 이걸 모르지?’ 같은 것들이요. 제겐 문학이 있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려주기 위해서 문학을 읽기 시작했어요,
보통 학생들이 윤동주를 처음 접하죠. 처음 봤는데 이국적인 단어를 쓰다가 약간 소심하고 부끄러워합니다. 그러다가 항상 마지막에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면서 끝나요. 물론 실제로 요절하셨죠. 그게 너무 멋있는 거예요. 그다음은 작가 이상. 너무 멋있어.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어. 그냥 그게 좋은 시라고 생각해서 학창 시절 때 필사를 했어요. 그 노트를 지금도 가지고 있는데, 사실 제 개인적인 시집이죠. 물론 다 남의 꺼죠. 자기 생각은 없어요(웃음). 나름 열심히 썼어요.
내신 성적이 그렇게 좋진 않았어요. 카지노 게임 사이트 고2 말에 큰 계기가 하나 찾아옵니다. 그전까지는 모범생들이 멋이 없었어요. 고2 말에 공부를 잘하는 친구가 처음으로 멋있어 보였어요. 명문대 얘기를 하는데, ‘와 멋있다. 나도 공부 잘하고 싶다.’ 처음 생각했습니다. 벌써 21년 전 입시(정시 70% 일 때)였는데, 전국에 존재하는 모든 모의고사 문제집을 다 풀었습니다. 모조리 오답노트로 만들어서 다 정리하자. 마지막 수능 3일 전에는 오답노트만 만들면 ‘이론상 최강의 수험생’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미친 듯이 수능 준비만 합니다. 놀랍게도 이걸 했더니 수능 50일 남겨놓고 1등을 했어요. 2002년 수능이 엄청 어려웠는데 제가 실전에 강해서 심지어 성적이 올랐어요. 당시 이과 수능 응시자 20만 명 중에 전국 200등이 나왔어요. 이게 내 성적인가? 싶을 정도였죠. 뭐가 될진 몰랐지만, 일단 어머니께 갔습니다.
‘전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했어요. 어머니가 성적표를 보시더니 그동안 제게 숨겨왔던 사실을 말씀하셨어요. “인아.. 넌 사실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될 소질이 있다.” “음? 제가요? 언제부터요?” “넌 카지노 게임 사이트 선생님 가운도 잡고 청진기도 잡고. 하여튼 그랬어. 너 의대만 입학하면 사람들이 얼마나 멋있게 생각하는지 모른다. 미팅도 얼마나 많이 들어오는데~” 제가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기억을 되찾았죠. ‘아 맞다 나 그랬지?(웃음)’ 일반고에서 02학번 현역으로 고대 의대에 합격합니다. 정말 의대생으로 입학하면 미팅 스케줄을 짜야해요. 지금도 생각납니다. 다들 잘 지내시는지(웃음).
2년 예과 열심히 놀았습니다. 막상 본과에 가려다 보니 이제 거의 공부 양이 너무 많아서 인간 같지가 않아요. 매일 외우는 게 일입니다. 근데 전 카지노 게임 사이트되려고 온 게 아니니까. 평범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될 수 없어요!
왜냐? 난 치명적이거든. 목표를 짜기로 했어요. 평범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되지 말자. 그래서 처음 생각한 게 글 쓰기였어요. 여행도 좀 다니면서, 날 달라지게 만드는 거라면 그걸 기록하자. 글을 쓰자! 그래서 당장 대륙횡단을 갑니다.
중국 대륙을 횡단합니다. 20년 전에 저 혼자 횡단하는데, 중국 대륙은 중국어를 못하면 밥을 못 시켜서 굶어 죽어요. 자연스럽게 중국 현지화가 됐죠. 절 아무도 한국 카지노 게임 사이트으로 보지 않았어요. 중국어를 열심히 배웠죠. 중국인으로 위장해서 현지에서 옷을 사 입고 차에 섞여서 티베트에 갈 수 있을 정도였죠. 티베트 공안이 저를 그냥 보고 보내줬어요. ‘아 얘는 동포구나.’ 원래는 쫓겨나요. 티베트, 네팔을 거쳐서 인도까지 가요. 경로를 보면, 인천에서 중국 텐진까지 갔다가 인도에 도착해서 비행기로 돌아온 거였죠.
그다음 방학 때는 국토 대장정을 가요. 대학생 128명이 같이 707km를 가는데 의대생은 그런 거 안 해요. NC소프트에서 주최했는데, 경쟁률이 50:1이었어요. “내 몸은 지금 방에 있지만 내 심장은 대장정의 여로를 걷고 있다”고 막 질러댔어요. 어라? 이게 됐어요. 26박 27일을 걸으면서 즐겁게 횡단했는데요. 제가 유일한 의대생이었어요. 친구들이 발이 아프니까 저를 치료해 달라고 찾아와요. 1학년이에요. 전 의술이 없어요. 발을 절뚝이면서 찾아오면 “야 너 발이 진짜 아프겠다 나도 아파. 우리 같이 잘해보자.” 그 이후로 돌팔이라고 소문나기 시작합니다. 다신 안 찾아왔어요. 대신 한의대 형이 있었는데, 이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아예 침 팩을 들고 왔어요. 발에 침을 놓으니까 거의 허준이죠. 의학을 욕보이고 왔습니다(웃음).
그다음 방학 땐 비행기를 안 타고 이집트에 갔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갈 수 있었어요. 속초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20시간짜리 페리를 타요. 일주일 동안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탑니다. 걸어서 터키를 뚫고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요르단, 팔레스타인을 넘으면 갈 수 있어요. 물론 지금은 전쟁 중이라 못 가요.
이스라엘 갔을 때, 갑자기 외국인 노동자가 되어서 식당에 취직해요. 당시 스마트폰도 없고, 비행기표를 살 수 있는 돈도 없고, 신용카드도 없고, 돈 붙여달라고 할 통장도 없었죠. 예약 없이 현찰만 들고 카이로에 간 겁니다. 폴란드에서 사기를 당해서 돈도 떨어졌어요. 돈을 벌어야겠다 싶어서 이스라엘 수도에서 여행자를 대상으로 불법 일용직을 알선해 주는 유대인 브로커를 만납니다. 식당을 소개해줘서 접시닦이를 했습니다. 이틀간 접시를 닦았더니, 사장님이 “접시를 잘 닦네? 너는 내일부터 요리사다”라고 해요. 참 근본이 없죠? 다음날 요리를 배워서 서빙을 다녔어요. 어린애가 그러고 다니니까 웃긴가 봐요. 팁도 많이 받았어요. 돈을 넉넉히 벌어서 비행기표를 샀죠.
중국인으로 위장카지노 게임 사이트 게 너무 재밌어서 북경에 어학연수를 가려고 했다가, 결국 실크로드까지 건너갑니다. 서유기에 나오는 화염산이 있는 신장 위구르까지 갑니다. 대륙횡단 두 번째죠.
여행을 안 가는 나머지 시간엔 항상 도서관에서 시집을 빌려서 읽었어요. 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못 버려서요. 도서관에 가서 문학과 지성사 시집을 가나다 순서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어요. 카지노 게임 사이트인데 시집 들고 다니까 이상했겠죠. 그렇게 고대 문학회 활동도 했고요. 습작, 합평도 하면서 학창 시절을 보냅니다.
제가 알바를 많이 했어요. 보통 카지노 게임 사이트들은 과외를 하는데 저는 몸으로 하는 게 재밌었어요. 재밌는 일이 있으면 다 했는데, 인형탈이 제일 재밌었어요. 심지어 돈도 1만 원 더 줘요. 꽃장사도 했어요. 트럭을 빌려서 도매로 꽃을 떼다가 길에서 파는 거예요. 5월 대목 때 한 트럭씩 팔려요. 잠실역에서 했는데 꽤 짭짤했어요. 대신 5월마다 학교를 못 갔죠. 다들 휴학한 줄 알더라고요(웃음).
음악도 했습니다. 홍대 아마추어 밴드에서 건반으로 약 8년 정도 무대에 섰고요. 병원 실습 들어가면 정말 끝이라고 생각해서, 위대한 시를 쓰기 위해 호주로 갑니다. 스스로를 가둬 놓고, 시와 대화를 하러 가요, 누가 물 대신 맥주만 마시면 시와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전혀 안 되더라고요(웃음). 책으로 밥도 지어보고요. 그렇게 신춘문예에 다 냈는데 당연히 다 떨어졌어요.
그리고 병원 실습을 시작합니다. 현장 실습은 5학년 2학기부터 시작하는데, 그전까지는 책상에서 공부만 해요. 의학을 책상이 아니라 현장 일을 해보니까 너무 슬프더라고요. 병원 분위기가 되게 무섭잖아요. 스스로도 정말 인간으로 믿을 수 없는 짓들을 계속하고 했어요. “환자분 6개월 남았습니다, 정리하시죠.”, “배를 잘라서 이 창자를 빼야 합니다.” 이런 얘기를 매일 했어요. 수술방에 가보면, 하루에 외과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8-10명을 수술해요.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환자를 눕혀놓고 마취시킨 뒤에 배를 갈라서 창자를 막 꺼내요. 그러면 옆에서 학생은 뱃가죽을 붙들고 들고 있어요.
카지노 게임 사이트들이 배를 가를 때 전기칼을 써요. 전기로 배를 가르면, 정말 동물 타는 냄새와 똑같아요. 그래서 정확히 삼겹살 타는 냄새가 나요. 창자를 자르잖아요? 그러면 정확히 곱창 냄새가 나요. 간을 자르면 분식집 냄새가 나요. 이걸 막 보고 느끼니까 정신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집에 가서 울면서 시로 썼어요. ‘생의 변방에서’ 막 이러면서. 의대생 레벨에서는 제 시가 통합니다. 의대생 문예대회 2년 연속 대상을 받죠.
그리고 졸업 전에 레게머리를 합니다. 드레드 머리를 하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고시를 준비하려고 귀국한 고대 본과 3학년 학생, 저였습니다. 그때 저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되면 난 무슨 전문의를 해야 하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 고민하다가 패배주의에 젖어들어요. 가장 불행할 곳이 어딜까? 아, 응급실이다. 거기가 제일 불행하니까요.
지금도 응급실 붕괴 얘기가 많은데, 제가 선택한 건 16년 전입니다. 그땐 정말 비인간적인 노동을 했어요. 고대 병원에, 20대 중후반 막 카지노 게임 사이트면허 딴 사람이, 응급실에 혼자 남아요. 그러면 보통 하루에 환자 2-300명이 와요. 24시간 일하고 24시간 쉬는데 다음날 아침까지 한숨도 자지 않아요. 그동안 4-5명쯤 죽고 5명쯤 중환자실에 갑니다. 그리고 그날 의학 기록을 모조리 암기해서 선배에게 발표해요. 과장님이 “환자를 왜 죽여!” 소리칩니다. 억울하죠.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이미 30시간 못 잔 상태에서 죽은 듯이 잠잤다가 일어나서 밥을 먹고 자다가 다시 일어나서 출근해요. 이걸 4년 합니다. 그럼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됩니다.
꿈도 희망도 없는 시기였어요. 환자들이 계속 죽어가고 힘드니까 싸이월드에 글로 써요. 그 남는 시간을 쪼개서요. 다이어리 1천 개가 넘었어요. 그때 제목이 ‘너로 인해 나는 슬프고 있다.’ 뭐 이렇게 써놨어요. 그렇게 글쓰기에 진심이 됐어요. 공중보건의가 됐으니 조금은 여유가 생겼어요. 2천 개를 넘길 때쯤엔, 모든 걸 다 적고 기록했어요. 그리고 그 공중보건의 시절에 썼던 유머글이 화제가 돼서 세상 밖으로 나와요. 남궁인 작가라는 이름으로요.
그게 논산 훈련소 얘기예요. 전문의 1500명이 논산에 옵니다. 다들 20대 초중반에 오는데, 서른 살이 넘어서 갔더니 전투 능력이 하나도 없어요. 30대 초중반에 훈련병들이 흙먼지 뒹굴다가 막 다쳐요. 감기도 심하게 돌고요. 폐병이에요. 병원에 가야 하는데, 국방부가 보내준 카지노 게임 사이트 1명이 인턴이에요. 인턴이 전문의 1500명을 진료하는 거죠. 저도 폐병에 걸려서 갔더니 인턴 선생님이 차트를 저한테 주시면서 ‘알아서 써서 주세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럼 1500명끼리 거기서 서로 진료해요. 진짜 이상합니다(웃음). 한 번은 외과 전문의가 ‘피부가 발진이 났는데 괜찮나요?’ 물었고, 누가 “여기 혹시 피부과 선생님 안 계십니까?” 그러면 누가 막 튀어나와요. 진짜로.
그 진료실 얘기가 너무 웃기니까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났더니’ 전국 유머 게시판을 강타카지노 게임 사이트. 모든 게시판 1위로 올라가 있어요. 이 훈련소 썰이 거의 10년 됐는데 아직도 회자돼요. 그걸 계기로 칼럼니스트로 연재도 시작카지노 게임 사이트. 지금은 조선일보에 하고 있어요. 정식으로 청탁받은 겁니다(웃음).
책도 냈죠. 문학동네와 <만약은 없다를 냈는데요. 약간의 회의가 있었어요. ‘내 일은 그냥 별게 아닌데, 이게 재밌을까?’ 싶었죠. 그때까지의 솔직한 제 얘기예요. 감정이 적힌 글들이고요. ‘환자를 진료하던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죽을 것 같은 기분으로 귀가한 뒤에 쓴 단편글’인데, 이게 막상 세상 밖으로 나오니까 대중이 되게 놀란 거예요. 지금까지 시간을 내어 정리해서 글로 나온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러니 다들 처음 보는 낯선 이야기였어요.
예능에도 출연했어요. 색다른 얼굴과 이야기를 발굴하는 곳이 예능이니까요. 그러다가 KBS 1:100 요청이 왔어요. 1등 하면 5천만 원을 주는데, 저는 시험을 많이 본 카지노 게임 사이트라 한 달 전부터 1:100을 공부했어요. 3년 치 기출을 분석하니까, 놀랍게도 출제자의 경향과 의도가 보여요. 족보를 만들고 갔더니 바로 우승했어요. 결혼자금으로 쓰려고 통장에 뒀는데 아직도 그대로 있습니다(웃음).
그리고 강연도 합니다. 저는 ‘강연업’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어요. 대중강연자로서도 일하고 있고요. 세계테마기행 팀에서 전화가 와서 저를 중국에 보냈어요. 신장 위구르에서 고생을 좀 하니까 시청률이 잘 나왔어요. 그래서 인도네시아에 한 번 더 갔어요. 이 편을 보시면 제가 인도네시아어만 쓰고 다녀요.
에스콰이어 화보도 찍었어요. 예전에 비하면 차이가 많이 나죠? 그리고 본격적인 작가 일도 병행했습니다. <차라리 재미라도 없든가라는 책을 냈는데 이건 제 독서일기입니다. 매일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고 독후감만 182편이 실린 책이에요. 이걸 써내서 전 너무 좋았어요.
<우리 사이에 오해가 있다라는 책도 냈는데, 이건 이슬아 작가와의 서간이에요. 연재할 때 이슬아 작가에게 시원하게 혼나서 큰 화제였어요. 베스트셀러 1위도 이것 때문에 처음 해봤습니다.
이런 일들을 하다 보면 CF도 찍어요. 네이버 포스팅 2300개를 해서 네이버 CF모델도 했습니다. 진로 소주를 들고 ‘근본이죠?’라는 대사예요. 프리미엄 소주 1병을 주신다고 해서 카지노 게임 사이트 번들번들한 자본주의 미소를 지었습니다(웃음).
지금은 에세이를 업데이트하는데, 제 주위에서 일어난 일들을 쓰고 있어요. 재작년에 일을 하다가 배가 아팠는데 참았어요. 제가 응급의학과 담당의인데, 꾹 참다가 결국 걸을 수도 없었어요. CT를 찍었더니 맹장이 터진 거예요. 바로 외과 당직 교수님께 전화했어요. “교수님 제 맹장이 터졌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이게 웃기잖아요. 그래서 일기장에 썼어요. 이른바 ‘응급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맹장 썰’ 조휘수가 18만 9천이 찍혔어요.
카지노 게임 사이트 메가커피를 좋아하는데요. 그냥 가성비가 좋아서요. 일기장에 썼더니 화카지노 게임 사이트 돼서 메가커피 본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50잔을 주시겠다고(웃음).
이런 식으로 저는 에세이 작가를 하고 있어요. 시는 완전히 포기했고요. 제가 본 것들을 쓰다 보니까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하겠더라고요. 환자분들이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꿈꾸는 사회가 있기 때문이기도 해요.
여러분들이 헌혈을 해주시면 그 피를 제가 처방 내는 사람입니다. ‘이 피를 주세요’라고 합니다. 작가의 언어로 헌혈해 주신 피가 어떻게 쓰이고, 위기에 처한 사람을 어떻게 살려내는지를 쓸 수 있죠. 그래서 헌혈 캠페인에 문장을 써서 참여합니다.
일하다 보면 정말 와닿는 통계가 많아요. 그중 하나인데요. ‘돈이 많을수록 오래 살까요?’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돈이 있든 없든 수명은 똑같죠”라고 해요. 아니에요. 미국에서 이걸 표로 만들어보니까, 수입과 수명은 완전히 비례해요. 돈이 조금이라도 많을수록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아요. 병원에서 치료해 보면 알아요. 자식들이 극진히 모시는 부모는 ‘진짜 이번에는 돌아가실 것 같은데...’ 해도 살아나요. 101세에 독감에 걸리셨는데 멀쩡해요. 5-60대 쪽방촌에서 오신 분들은 병원에서 치료해도 돌아가십니다. 되게 징그러운 현실 같은 것이죠. 응급실 근무를 하면, 자연스레 사회적 약자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살 예방 캠페인도 그 연장선이에요. 저도 마음이 안 좋아서 약도 먹고 상담도 받아봤어요. 제가 있는 이대 목동병원이 전국에서 자살 시도자가 3번째로 많은 곳입니다. 하루에 5-10명이 매일 옵니다. 그분들을 매일 인터뷰해요. 왜 이 카지노 게임 사이트들이 힘든지 제가 직접 이야기를 해야겠더라고요. 그래서 자살 예방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열사병 캠페인도 해요. 날이 더운 날 쓰러지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대체로 정해져 있어요. 가장 취약한 분들이 폐지 줍는 할머니입니다. 기저질환 많고, 체구 작고, 밖에서 일하고. 폭염 내린 날 병원 10km 인근 폐지 줍는 할머니가 다 실려 왔어요. 그다음이 외국인 노동자입니다. 쉬지 못하니까요. 즉, 열사병도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할 재난이라고 얘기했어요.
코로나 때도 캠페인에 많이 참여했는데, 팬데믹 초기에 전 중국에 있었어요. 중국 상황을 보도해 달라고 JTBC 뉴스룸에서 연락이 왔어요. 뉴스도 출연했습니다.
중증 외상 캠페인도 했고요. 양천구 아동학대 사건, 일명 ‘정인이 사건’ 담당의였어요. 정인이가 저희 병원으로 왔어요. 정인이 양모가 아이를 때리고 또 때려서 2주에 하나씩 뼈를 부러트리다가 당일날 명치를 세게 때려서 장기가 찢어졌어요. 심정지가 된 상태로 시신을 손으로 직접 저희에게 건넸어요. 눕혀서 6시간 심폐소생술을 해서 살려놨는데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살릴 수 없었어요. 그렇게 맞아 죽은 십 개월 아이를 보다 보면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되는 사건이 있더라고요.
국회에서 법을 만드는 일에도 참여했고, 독감 유행하니까 마스크를 써달라고 예방카지노 게임 사이트 목소리를 배 타기 전까지 녹음했습니다. 지금 아마 서울 지하철과 버스에 제 목소리가 나오고 있을 겁니다. 우리는 지금 못 듣지만요(웃음).
보신 것처럼, 전 N잡러로 일하고 있는데요. 이게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참여합니다. 사실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삶의 목표가 있었던 게 제일 컸죠.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되는 것보다 글을 쓰고 싶었으니까요. 그리고 꾸준히 했어요.
글을 잘 쓰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해요. 책을 꾸준히 읽다 보니까 독서의 세계가 정말 좋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이렇게 N잡러로 사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걸 꾸준히 하고 눈앞에 닥친 걸 해냈더니 새로운 세계가 보였습니다. 평생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글을 쓰다 보니 인간이 가장 발명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 방법이 글을 쓰는 것이더라고요.
세상에 굉장히 많은 취미와 특기가 있을 텐데, 제게 가장 큰 버팀목은 글쓰기예요. 이게 쌓이고 쌓이면 앞으로 나갈 수 있어요. 글을 쓰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결국 자신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제가 꿈꾸는 세상이 있으니까, 카지노 게임 사이트 자체가 결국 바뀌더라고요. 여러 모습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 이게 글쓰기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닐까 싶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