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남자 사원들이 평소 별로 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나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무거운 짐도 잘 나를 수 있어요. 계좌개설신청서, 전표박스, 제신고청구서박스 등...”
내가 첫 발령지인 수도권 점포에 근무 중이던 시절이었다. 당시는 6일 근무제였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이틀을 정해 영업점 자체 교육시간을 마련했다. 오전 정식업무 개시 전 여유시간을 활용했다. 초임책임자인 대리들이 교대로 순번을 정해 사원들을 모아놓고 업무교육등을 이어가고 있었다.
정신교육, 신상품 설명, 사규교육, 업무교육등 제법 다양한 콘텐츠였다.오늘은 지난해 하반기에 신임 무료 카지노 게임로 우리 지점에 새로이 부임한 송무료 카지노 게임가 강사로 나섰다. 당시엔 남녀고용평등법이 시행되기 훨씬 전이었다. 그래서 (남)사원과구분되는 (여)사원제도가엄연히 버티고 있었고 초급사원과 중견사원도 현격하게 달리 대접을 받고 있었다.
나는 대학원 석사과정까지 꽉 채워 소진한 후 20대 끄트머리에 겨우 생업에 뛰어들었다. 이러다 보니 초급사원에서 출발하여 최근 초임책임자인 대리에 오른 상급자와 거의 같은 연식이었다. 예전 상법 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금융기관의 대리야말로 명실상부한 책임자라고 했다. 무릇 금융기관에서 책임자가 아닌 사원과 책임자의 구분은 역사책에 자주 등장하는 당하관과 당상관의 그것에 다름이 없었다.
직급별로 사용하는 책상과 의자도 엄격하게 따로 구분하여 배정되었다. 책임자가 모두자리를 비울 경우일지라도 사원이 대리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는 것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형편과 분위기였다.
이럼에도 입사제한연령을 거의 모두 채워 회사에 발을 들여놓은 내게 대리들은 상당히 부담을 갖고 있는 것이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대리들이 사원인 부하직원으로 나를 부리기를 껄끄러워했다. 이는 중견사원이 아닌 초급사원에서 출발한 대리의 경우엔 더욱 그 정도가 더 심했다.
오늘 아침 교육시간에 송대리가 입밖에 낸 여사원 대비 남사원의 역할이나 비중 등을 언급한 것이 그 후 두고두고 화제가 되었다. 순간 현장에서 교육을 받고 있던 남녀 사원 모두는 서로 얼굴을 쳐다볼뿐이었다. 키득거리는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참아내느라 무척이나 힘들어 보였다. 여직원 대비 남자직원의 역할이나 강점 등에 관한 송대리의 엉뚱하고 기발한 결론 때문이었다.
남자 직원은 고객에 대해 상대적으로 깊은 신뢰감과 안정감을 준다는 골자가 담긴 이야기가 송대리의 입에서 나오리라고 모두가 예상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전혀 다른 송무료 카지노 게임의 일갈에 억지로 웃음을 참아내는 표정관리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본 건과 관련하여 향후 갑은 을에게 일체의 ‘민행사상책임’을 묻지 않기로 한다.”
“이 계약과 관련하여 @조등을 위반하여 발생하는 ‘민행사상책임’은 전적으로 을이 부담하기로 한다.”
금융기관 고객이나 거래처에서 우리 직원이나 회사를 상대로 민원을 제기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해 오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이에 양 당사자 간에 원만하게 해결방법을 찾아 합의서를 작성하고 민원을 취하하곤 했다. 이런 합의서 내용에 단골 문구가 등장하기 마련이었다. 회사에 물품을 공급하거나 공사를 하는 업체가 납품 또는 공사 기한을 넘길 경우 회사는 이들에게 지체상금이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문구도 필요했다.
이런 합의서나 지체상금 부담각서 등에 ‘민형사상책임’이라 적는 것이 당연히 맞았다.그럼에도 이 송무료 카지노 게임는 ‘민행사상책임’이라 종교처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렇게 주장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이는 경상도 출신인 송무료 카지노 게임의 특유한 사투리 발음 탓으로 돌리기에도 너무나큰 오류였다.
여기서 백보 양보하여 ‘민사 형사’를 ‘민사 행사’로 굳이 풀어 보자면 ‘형사법’이 아닌 ‘행정법’으로 고쳐 해석할 수 있다고 혹자는 주장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는 엄청나게 잘못된 표현과 해석임에 틀림이 없었다.
이런 억지를 이어가던 송대리 책상 주변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남자 사원 3명이서 이를 두 눈으로 똑바로 지켜보고 있었다. 송대리의 오류를 지적하고 나서는 남사원은 한 명도 없었다.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었다.
조직의 규모가 크고 작고는 큰 의미가 없었다. 상명하복의 시스템이 철저히 작동하는 조직에선 ‘이른바 계급이 깡패’라는 불문율이 통용되고 있었다. 이는 정도 차이가 있겠으나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본 글과 관련하여 글쓴이는 향후 당시 송대리를 비롯하여 구독자에게 ‘민행사상일체의 책임’을 지지 않기로 한다. 어찌 보면 기발하고 창의적인 문구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