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진 9시가 넘어서 커피숍을 나와 집으로 가기 위해 차를 뺐다. 홍성읍에서 서울로 가는 길은 수덕사와 예산을 거쳐 해미로 가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야 한다. 그런데 수덕사 쪽으로 가는 길은 숲속에 난 국도인데 가는 길에 많이 피곤함을 느꼈다. 한 이틀을 차안에서 잠을 잔 여파로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 것이다. 이런 상태로 야간운전을 하는 것은 위험할 수가 있다. 마침 숲 속에 허브로 둘러쌓인 아담한 모텔이 보이길래 그 안으로 들어갔다. 코로나 여파 때문인지 한적한 숲 속의 모텔에는 거의 손님이 없어 보였다. 나는 2층 방을 예약해서 올라가 짐을 내려 놓았다. 다음으로 가족들한테 연락을 취하려고 했지만 핸드폰이 또 방전된 상태라 모텔 여주인한테 잠시 폰을 빌려서 연락 좀 하자고 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이 여주인은 그 경우 자기 핸드폰 번호가 낚여서 보이스피싱에 악용될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아무리 다짐을 줘도 무지한 이 여자에게는 속수무책이었다. 무지와 무식이 불러온 두려움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도대체 20억이 넘어 보이는 모텔을 경영하면서 컴퓨터 한 대도 비치해 놓지 않고, 어디서 보이스피싱은 들은 것이 있어 막무가내로 거부하는 고집불통을 내가 어떻게 바꿀 수 있겠는가? 결국 나는 12시가 넘어서 모텔을 나와서 가던 길을 재촉해야 했다. 수덕사 요괴 사건은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것이다.
홍성의 수덕사는 예전에 몇 번 가본 기억이 있다. 지금은 유명을 달리한 내 친구는 수덕사의 비구니를 사귀 적이 있어서 친근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밤 12시가 넘은 컴컴한 밤중에 홍성에서 이어지는 국도를 따라 수덕사 근처를 지나본 적은 없다. 그날 한 밤 중에 수덕사라는 팻말을 보면서 그 숲길을 들어서는데 무언가 요상한 기가 흐르는 느낌을 받았다. 오래 전 젊은 시절 마산의 무학산을 새벽에 오를 때 산중턱 곳곳에 포진해있던 무속인들의 기도처를 보면서 받았던 느낌이 기억이 났다. 밤이라 제대로 확인이 되지는 않았지만 절 근처에는 여러 형태의 무속인들의 수양 단체들이 포진해 있었고, 그것들을 보는 나에게는 무언가 탁하고 음습한 기가 느껴졌다. 그런데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보이는 광경이 다소 희안했다. 늦은 밤에 페스티벌을 하듯 사람들이 모여서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한 번은 빈 공터 같은 곳에서 원숭이와 개가 서로 장난을 치는 모습도 보았다. 원래 견원지간이라고 할만큼 사이가 안 좋은데 내 눈 앞에 보이는 원숭이와 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내가 차로 가까이 가도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고, 먹이를 던져 주면 잘 받아 먹기도 했다. 하여 간에 늦은 밤 숲속에서 이상하게 느껴지는 분위기 때문에 차를 서둘러 빼는데 계속 같은 장소로 되돌아 오는 것이다. 마치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보면 그 자리를 맴도는 경우를 경험한 것이다. 그렇게 돌다가 숲 속의 외길에 갇혀서 차가 구덩이 같은 곳으로 밀리는 것을 간신히 빼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무려 2시간 가까이 수덕사 근처의 숲에서 헤맸다.
그 때 내가 경험한 사건이 너무 리얼해서 달리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날이 밝아서 생각을 해보니까 내가 너무 피곤한 상태에 있다 보니 일종의 환각 증상 비슷한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내가 이 기이하면서도 생생한 체험을 친구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엉뚱하게도 그는 이것을 내가 치매에 걸렸다는 강력한 논거로 풀었다. '치매론'은 한 동안 내 뒤를 쫓아 다니면서 나의 행동거지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아무튼 시간은 새벽 2시가 넘은 상태고, 내 몸은 파김치처럼 늘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예산 쪽으로 넘어가는 2차선 도로를 갈 때는 너무 피곤해서 도저히 운전을 할 수 없었다. 산길을 통하는 이 도로는 협소해서 갓길도 없다. 밤도 늦었고 외딴 숲 속이라 차들도 별로 다니지 않았다. 나는 별 수 없이 도로에 차를 세워놓고 비상등을 켠 상태로 잠에 빠져 들어갔다.
한 참 잠을 자고 있는데 누가 후레쉬 불빛을 비추면서 창문을 막 두들기고 있다. 정신을 차려서 보니까 경찰 2명인데, 한 사람은 젊은 여자 경찰이고 다른 한 사람은 40대 정도된 남자 경찰이다. 산길에서 자다가 한 밤 중에 이런 소란을 경험했으니 내가 놀랄만도 했다. 미심쩍어 내가 확인하는 차원에서 신분증을 보자고 하니까 바로 보여주었다. 두 번째로 대하는 경찰들과의 만남이다. 그들 말로는 도로 한 가운데에 차를 세워 놓고 잠을 자고 있어서 신고가 들어왔다고 한다. 나는 경찰의 안내를 받아서 근처 마을회관 앞으로 차를 옮기고 거기서 먼동이 틀 때까지 다시 눈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