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 강의 - 제2부 : 꿈
프로이트가 말하는 꿈의 동력은, 우리 안의 '무의식적인' 소망이다.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꿈을, 꿈속에서나마 이루어보겠다는 간절함이 우리를 꿈꾸게 한다는 것. 그렇다면 곧바로, '악몽'도 소원성취라고?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런 이들에게 프로이트는 옛이야기 하나를 들려준다.
가난한 부부에게, 어느 날 착한 요정이 나타나 세 가지 카지노 게임을 들어주겠노라 했다. 그런데 때 마침 어디선가 소시지를 굽는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나는 것이 아닌가. 배가 고팠던 부인은 거의 자동적으로 '소시지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해버렸다. 그 카지노 게임은 즉시 이루어졌다. 귀중한 한 번의 기회를 그렇게 날려버린 부인에게 남편은 화가 났다. 그래서 그 역시 자동적으로 '저런 미련한 마누라 같으니, 그 깟 소시지 그놈의 코에나 찰싹 붙어버리면 좋겠네' 이런 생각을 하고 말았다. 물론 그 카지노 게임 역시 즉시 이루어졌다. 이제 마지막 카지노 게임 하나가 남았다. 둘은 그제야 일치된 하나의 카지노 게임, 소시지를 제발 코에서 떼어달라는 카지노 게임을 '울며 겨자 먹기로' 원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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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 안에는 다양한 소망을 가진 다수가 함께 살고 있다. 그 각자의 소망은 서로에게 대체로 방해가 된다. 우리 일상의 현실에서도 그런 것처럼. 구체적인 꿈 하나로, 프로이트가 말하는 이상야릇한 꿈의 소원성취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해) 설명-이해해 본다.
한 때 불안해지면, 나는 꿈속에서 시험을 봐야만 했다. 시험과목은 언제나, 현실의 내가 가장 취약했던, 수학이다. 꿈속에서 나는, 시험 범위를 아예 몰랐거나, 그날이 시험 날인지 몰랐거나, 이제 겨우 막 문제를 풀기 시작했는데 벌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꿈속의 나는 정말이지, '미치고 팔짝 뛰고' 싶다. 이건 나의 어떤 카지노 게임이 성취되는 꿈이었을까.
평소 나는, 별생각 없이, 좋아하는 - 가장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 읽기와 쓰기에 전념한다. 이런 정신은 내 생활 전반을 지배하는 '인싸' 인격이다. 그런데 어떤 날 문득, 특히 나보다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지인과 접촉하는 날 같은 경우에, 내 안에서 '아싸'로 지내던 인격이 힘을 얻는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읽기-쓰기와 거리가 가장 먼-내가 특히 못 했던 '수학 시험'을 보게 만들어서, 그동안 '아싸'로만 지냈던 설움에 대한 복수-카지노 게임 성취를 이룬다.
"그는 카지노 게임을 내던져 버리고 검열합니다... 그러한 카지노 게임 성취는 그에게 쾌락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의 것을 가져다줄 뿐입니다... 카지노 게임 성취를 통해서 매우 불쾌한 사태, 즉 징벌을 받는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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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징벌'이라 표현했지만, 나는 '후회' 혹은 (융이나 니체를 따라) '양심의 가책'이라고 다시 써보겠다. 세상에는 내가, 가기를 희망하면서도 가지 못하는, 수많은 길이 있다. 나의 제한된 몸은 그중 일부만을 체험하고, 단련하고 책임질 수 있을 뿐이다. 사람이 때로 스스로를 '징벌'하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건,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과 동시에 욕심이리라. 그런데 프로이트는 그게 바로 '진짜 네가 원하는 것'이라 단언한다.
"모든 원시적인 표현 체계는 그러한 모호성이나 불확실성과 숙명적으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의 실용성을 의심할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몹시 모호한 표현으로 말을 했다고 해도, 그것을 애매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두 가지의 상반된 의미 중에서 말하는 이가 무엇을 의도하려고 했는지는 그의 말투나 몸짓 등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을 만큼 뚜렷이 드러나게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다양한 인격이 있고 그들의 서로 충돌하는 다양한 소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그중에서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려는 마음이, 나는 좀 '이상 야릇'하다. 그렇지만 다시, 그런 프로이트 선생의 마음속 '진짜' 소원에 대해 상상해 본다. 그는 아마 평소 억눌려 지내던 '아싸' 인격에게도 발언 기회를 좀 주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특히나 아직 한 번도 스스로 상상하지 못했거나 충족시켜 본 적이 없다면, '아싸' 인격의 소원도 실현시켜 주는 게 아마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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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다시. 저 옛이야기 속 가난한 부부의 카지노 게임은 정말, 가짜였을까? 아니 어쩌면 그들은 카지노 게임을 들어주는 요정 따위, 그런 얼토당토않은 유혹 같은 건 재미로만 흘려보내고, 그저 소박하게 소시지를 나눠 먹으며 아웅다웅 살던 대로 살아가는 것을 더 좋아했던 건 아닐까?
내 안의 수많은 가난한 부부들은 오늘도, '소시지를 떠올리고, 코에 붙였다가, 도로 떼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