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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타민 Feb 28. 2025

도전을 좋아온라인 카지노 게임 사람

ENFP형 인간,호기심이 많으며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주저함 없이 바로 시행온라인 카지노 게임 편이다.

주변 사람들은 도전이 어렵다는데, 나는 도전을 좋아한다. 아니, 좋아하는 걸 넘어서 즐긴다. 해보고 싶은 게 생기면 바로 등록하고, 냉큼 가보고, 즉시 먹어보고, 서둘러 체험해 본다. 해봐야 직성이 풀린달까?

대학생 2학년, 여느 봄날에 전공수업을 가는 길이었다. 길가에 걸린 현수막에는 ‘중국 교환학생 모집 공고문’이 붙어있었고, 이런 모집공고는 늘 나의 도전욕구를 자극하곤 했다. 안타깝게도 접수 마감일이 바로 내일이었다. 나도 나에게 놀란 실행력은 즉시 발휘되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나가, 아빠 도장을 임의로 만들어서 신청서에 도장을 찍었다. 쾅! 선행 후허락, 먼저 행하고 나중에 부모님의 허락을 겨우내 받아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중국 연변과학기술대학교에서의 일 년은 내 인생에 있어서 ‘봄’의 계절이 아니었을까?

처음에는 6개월로 갔는데 지내보니 한 학기 있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중국어도 배우다 마는 것 같고, 이렇게 뜻깊은 시간을 6개월 더 연장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한국 대학의 담당자에게 6개월 연장해 달라고 요청해 봤다. 두 학교 간의 협의 끝에 이번 교환학생 중 6개월 더 있고 싶은 사람을 연장해 주고, 다음에는 교환학생 기간을 1년으로 변경한다고 했다. 그렇게 있었던 1년의 시간은 정말이지 다채로웠다. 그곳에서는 기숙사 한방에 6명이 함께 지냈는데 중국 친구들과 라면도 끓여 먹고, 생일파티도 하고, 매일 수업 시간에 배운 중국어를 실습하기도 하면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인생에서 중요한 한 가지를 배우기도 했다. 진심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달까? 학교생활 중 크게 감동한 일이 있었다. 중국어 초급반 수업은 중국어를 하나도 모르는 학생들로 이뤄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인 교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중국어로만 수업하시니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책을 10쪽 펴세요.”하는데 아무도 책을 못 펴는 상황인 거다. 그래서 “대체 이렇게 수업하면 효과적인 거냐? 뭐라도 좀 알아듣고 난 다음에 모든 수업을 중국어로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수업 시간에 툴툴거리며 건의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갑자기 선생님이 한국말로 “처음에는 못 알아들어도 한두 달만 지나면 다 적응이 됩니다. 계속 초급반 수업을 해봐서 확신합니다.” 이러시는 거다. 우리가 하는 불만의 말을 들으면서도 우리를 위해 다 참으며 중국어로만 수업을 하신 거였다. 나는 너무 죄송하기도 하고, 감동하여서 눈물이 났다. 그 후로는 더 열심히 수업에 임했다.

연변과학기술대학교는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중국 리더를 양성하기 위해 재미교포 김진경 총장님이 설립한 학교다. 중국에 이런 학교가 생긴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한다.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자 여러 나라에서 온 교수님들이 계셨는데 그중에 학교 영양사님은 한국 분이셨다. 독일어 수업은 독일인 교수님이, 영어 수업은 미국, 캐나다에서 오신 교수님이 하신다. 그래서 방학에는 한국의 식품영양학과 대학생들이 실습을 와서 학교, 병원, 지역사회팀으로 나눠 활동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방학을 이용해 중국까지 날아와서 영양사 실습을 하는데, 중국에 있게 된 나도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지 싶었다. 그때 영양사님도 교양수업을 하는 교수님이셨고, 나는 그 교양수업도 듣는 나름의 제자였다. 교수님께 찾아가 저도 식품과학과 2학년 학생인데 함께 참여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지역사회팀에 합류하여 연변 평안촌 마을 식이 조사와 영양교육을 하는 일주일 일정을 함께 할 수 있었다.

그 마을에는 탈북인도 살고 있었는데, 가까이에서 북한 사람을 만나니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한국에 있을 때는 통일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는데, 이 여성을 보니 가슴이 아팠고 통일이 빨리 이루어졌으면 온라인 카지노 게임 마음이 자연스레 들었다. 북한에서는 나름 공부도 많이 한 젊은 여성이었는데 중국으로 몰래 건너와 나이가 많은 남성이나 몸이 아픈 남성과 결혼하여 이 마을에서 숨죽여 사는 삶이 너무 처량하고 안타까웠다. 식이 조사팀에서는 영양 조사 방법 중 24시간 회상법이 있는데, 회상법을 통해서 지역 사람들의 영양상태를 판정온라인 카지노 게임 기법이다. 판정이 나오면 그 사람에게 맞는 올바른 식이 섭취 방법을 알려주고, 심한 경우는 준비해 간 영양제를 나눠주기도 했다.

병원 치료를 필요로 온라인 카지노 게임 경우는 병원을 안내해 주기도 하였다.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아침, 점심, 저녁 모두 된장국에 밥만 드셨다고 하셨다. 한국 사람들을 조사해 보면 먹은 게 너무 많아 기억하기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인데, 그날 영양조사는 참 슬프기도 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한국에서 온 우리들을 기쁘게 맞아주시고, 영양상담 후에는 떡볶이와 김밥을 만들어서 함께 먹으며 즐겁게 지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아름다웠던 중국에서의 추억을 간직하며, 그동안 배운 중국어를 잊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중문과 전공 수업을 매 학기 1~2과목씩 수강했다. 현지에서 매일 저녁 2시간씩 중국어 수업을 듣고 왔더니 중국어로 말은 할 줄 알았는데, 문법이 너무 어려웠다. 한국의 중문과 학생들은 말은 못 하지만 문법은 참 잘했다. 다른 과 학생이 중문과 전공 수업을 맨 앞자리에서 열심히 들으니 교수님이 기특해 보였는지, 시험은 완전히 망쳤는데도 앞으로도 열심히 하라면서 성적을 후하게 주셨던 기억이 난다.

대학 졸업 후 직장을 다니면서도 중국어를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들어서 방송통신대학교 중문과로 3학년 편입했다. 온라인 수업과 가끔 오프라인 수업이 있었는데 방통대 학생들도 정말 열정이 가득한 사람들로 모여 있었다. 그때는 강원도 삼척에서 근무했는데 30분 거리의 동해지역에 중문과 학습 그룹이 있어 매주 1회 모여서 HSK (중국어능력시험) 교재를 정해서 함께 공부도 하고, 저녁도 먹고 즐기며 공부를 할 수 있었다.

1년 후에는 강릉으로 발령이 나서 강릉지역 학습 모임을 찾아보니 역시나 있었다. 강릉에는 봉사로 가르쳐주시는 분이 고등학교 선생님이셨다. 그 선생님은 한문 선생님이셨는데 본인이 중국어가 너무 좋아서 우리를 가르치며 자신도 공부하게 된다며 꾸준히 모임을 이끌어 주셨다. 동해 학습 선생님은 중국분이었는데 한국인과 결혼하게 되어 동해에 살고 계셨던 분이셨다. 이분들 모두 돈을 받고 한 게 아니라 남을 가르치는 게 좋아서 학습을 이끌고 계셨다.

어떤 분야를 좋아해서 배움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의 분위기도 좋다. 최근에는 휴직 기간 1년 동안 수영에 도전해서 자유형, 평영, 배영을 배웠다. 접영까지 마스터하고 싶었지만 팔을 허우적거리는 살려주세요 폼의 접영까지만 하고 1년이 끝나버렸다. 같이 배우는 사람들에게 수영대회에 도전해 보자고 했더니 크게 웃으셨다. 이 실력으로는 안 된다면서 말이다.

출근 전 새벽 수영 수업으로 해볼까 했는데 거기까지는 엄두가 안 난다. 지금은 이렇게 에세이를 쓰는 모임에 나와 글쓰기를 배우기에 도전하는 내 인생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있어 감사하다. “앞으로는 또 뭘 도전해 볼까?” 즐거운 상상에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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