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긴 생각의 실타래
영주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비가 내렸고, 실패에 젖은 영주는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제 그만두어야 함을 알면서도 엉긴 생각의 실타래를 풀지 못했다.
궁극적으로는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것인지, 아니면 부끄러움에 낯이 뜨거워지는 것인지, 그마저도 아니면 희진에 대한 마음을 소화하지 못한 것인지를 헷갈려했다. 어찌 보면 그 셋이 한데 섞인 것일 수도 있는데, 영주는 하나만이 정답인 것처럼 생각했다. 그리고 무한히 낙담하며 소리 없이 우는 법을 익혀 나갔다. 사실 벗어나는 게 가장 중요한 사실이지만, 영주는 버둥거리며 더 스스로를 옭아맸다.
영주는 다시 인터넷을 뒤적거리다가, 이내 핸드폰을 꺼내 여러 앱을 깔기 시작했다. 친구 혹은 연인을 만날 수 있는 어플들이었다. 가벼운 만남에 상처받으리라는 것을 얼핏 눈치챘지만, 사랑을 갈구하는 평범한 사람들 틈에서 마음껏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놓칠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전의 실패를 회고하며, 인터넷으로 화장품을 잔뜩 구매했다. 옷이랑 가방, 그리고 구두까지. 강남에 유명한 미용실도 예약했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시작했다.
사실 영주가 원하는 것은 꽤나 단순할지도 모른다. 이 세상의 어떤 사람이라도 바라는 아주 평범한 사랑. 일방향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길이 있는 그런 사랑 말이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보통의 사랑을 하지 않는 영주는 올바른 길을 찾지 못했다. 어쩌다 특별한 사랑을 시작해서, 그 사랑으로 온몸을 가득 채워서, 아낌없이 마음을 줘버려서, 보는 이의 마음을 애타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처음이라 더 서툴고, 어떻게 아파야 덜 아픈지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처럼 말이다.
영주는 어플을 뒤적거렸다. 여러 사람들과 빠르게 매칭되고, 연락을 주고받으며 인스턴트식 설렘을 느끼며 즐거워했다. 어떤 모양새의 사랑이어도, 처음에는 설렘이라는 꽃이 피어나기에, 가장 순수하고 강렬하게 몰입하게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신이 중심이 아닌 사랑은 당연하게도 금세 진다.
...
[안녕하세요. 프로필 사진 보니까 너무 예쁘시네요. 취미가 뭐예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ㅎㅎ 취미는 딱히 없어요.]
[진짜요? 저는 요리 좋아해요. 간단한 한식이나 파스타? 자취생이라 쉬운 요리 좋아하거든요. 무슨 음식 제일 좋아해요?]
[음…글쎼요. 어려운데요?ㅎㅎ]
[그래요? 그럼 다음에 만나면, 제가 요리해드릴게요.]
…
수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대화가 쏟아졌지만, 결국 대부분의 대화는 만남을 갖기 위한 절차였다. 영주는 쉽게 사람들을 만났고, 쉽게 사람들과 좁은 공간에 있기를 택했다. 그리고 이름도 기억나지 않을 사람들과 잠을 자기도 했고, 갑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기도 했다. 누군가는 영주의 모습에 연민을 느끼며 떠나갔고, 누군가는 좋은 약점을 잡았다는 듯이 머무르기도 했다. 그렇게 영주는 늪에 빠져갔다. 아득한 느낌이 들 때면, 책상으로 향했다. 처음에 몇십 번의 고민과 용기가 필요했던 일이, 이제는 고민 없이 행동할 수 있을 지경에 올랐다. 붉은빛으로 물드는 책상을 닦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무거운 공허감에 짓눌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