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카지노 게임 기본기』작가의 변
2005년 방송일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나 처음 한 꼭지의 연출을 맡게 됐다. 촬영과 편집으로 밤을 새워도 여기저기서 까이는 건 둘째 치고, 한동안 내가 봐도 부끄러운 결과물을 쏟아냈다. 답답했다. ‘왜 재미가 없지? 현장에서 들이대야 했나? 정말 그런 작위적인 게 연출인 건가? 어떻게 만들어야 재밌어지지?’ 연출이 뭔지 알고 싶었다. 정확히는 어떻게 연출해야 재밌어질지 알고 싶었다. 교보문고 같은 큰 서점에 가면 그런 책이 있겠지. 없었다. 몇 시간을 뒤져도 이거다 싶은 책을 찾을 수가 없었다. PD란 어떤 직업인지, 방송 프로그램은 어떤 과정으로 만드는지, 각 과정에선 무슨 일을 하는지…. 신방과 교재로나 쓰일만한 개론 책과 ‘프리미어 프로’ 같은 편집 툴에 관해 설명하는 책들이 다였다. ‘이런 건 이미 다 알아서요…. 재밌는 영상을 만드는 방법을 알고 싶다고요….’ 그리고 상황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별반 차이가 없다. 서점 사이트를 뒤져봐도 ‘재밌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연출법’ 같은 책은 여전히 찾기가 힘들다. 희한한 일이다. 대한민국에 PD가 그렇게나 많은데 왜 아직도 이런 책들이 없는 걸까? 가만 생각하니 세 가지 이유가 떠올랐다.
첫째, ‘쓰러지겠는데 뭘 써!’, PD들이 바빠서다. 기획하고, 촬영하고, 편집하고, 방송 내느라 잘 시간도 부족하다. 나도 그랬다. 뭘 쓸 엄두가 안 났던 게 아니라 아예 그런 생각조차 없었다.
둘째, ‘내가 뭔데 감히 연출을 논해!’, PD들이 겸손해서다. 본인이 연출의 대가도 아니고, 박사 학위를 딴 것도 아니고, 스타 PD도 아닌데, 가까이하면 할수록 멀어지는 연출을, 날이 가면 갈수록 모르겠는 연출을 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셋째, ‘답도 없는데 뭘 써!’, 영상 연출은 정답이 없어서다. 어제 정답이었던 게 오늘 오답이고, 이 영상 만들 때 오답이었던 게 저 영상 만들 땐 정답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재미’가 모두 달라서, 같은 연출을 해도 누구에겐 정답이고 누구에겐 오답이다. ‘재미있는 연출법’은 동시에 ‘재미없는 연출법’도 되는 것. ‘재미’라는 기준도 모호한 문제에 정답까지 없다 보니, 풀이 과정 쓰기도 영 애매하다. 그러다 보니 영상 연출에 관한 글은 PD라는 직업이나 방송 제작 과정, 촬영이나 조명, 편집 기법에 대한 설명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이유는 사실 날 묶은 결계이기도 했다. 허나 첫 번째 결계는 지금의 내가 너무나 한가해져 깨져버렸다. 남은 결계들은 용기를 냈다. 영상 연출에 정답이 없다는 건, 오답도 없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오랜 시간 고민했던 연출에 대한 내 결론도 누군가에겐 정답이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방송 연출에 관한 책이 이렇게 부족한데, 답답한 마음에 서점을 헤맬 PD 지망생과 입문자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도움만 된다면 까짓것 겸손 좀 버릴 수 있는 거 아닐까? 그리하여 드디어 모든 결계가 깨졌다. 전에 썼던 『직업으로서의 PD』 출판 경험은 ‘나 같은 PD 나부랭이도 책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고, 이놈의 겸손을 날려버리는데 큰 용기가 됐다. 그래서 기존의 연출론을 적용하며 영상을 만든 후 내렸던 나름의 결론들을 『방송 카지노 게임 기본기』라는 이름의 책으로 정리했다. 성능 확실했던 방법들을 정리한 것이지, 나만의 새롭고 독창적인 연출론을 주장하는 글이 전혀 아님을 먼저 일러둔다. 그랬으면 논문을 썼겠지…. 어쨌든, 안 그래도 무거운 짐 진 PD 지망생과 입문자를 위해 가방에 쏙 들어가는 작은 크기의 책으로 만들었다. 분량만으로도 질려버리는 일 없도록 엄한 이야기 쏙 빼버리고, 20년 PD 생활하며 선별한 가장 필요할 내용들만 채웠다. 목적은 “술술 읽다 보니 방송 연출 무섭지 않아요!” 이렇게만 된다면, 그제야 기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PD로서의 삶, ‘나쁘지 않았다’고.
제 두 번째 종이책 『방송 카지노 게임 기본기』의 프롤로그를 브런치에 공개합니다. 앞으로 두세 꼭지를 더 선공개 해보려고 해요. 방송 PD를 꿈꾸거나, 이제 시작하는 분들, 오늘도 밤새우며 고민하시는 청춘들에게 아무쪼록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모두 행복한 설 보내시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셨을 때, 제 책도 여러분들을 뵙게 될 온전한 준비를 다 할 것 같습니다. 현재는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에서 예약판매가 진행 중입니다. 링크 남겨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교보문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621674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41891283
알라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