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과 긴장 그 사이 어딘가
아이가 기나긴 겨울방학을 마치고 학교에 갔다. 아침식사를 하는데 아이가 말했다.
"카지노 쿠폰, 아빠, 나 안 떨릴 줄 알았는데 조금 떨린다."
아이의 표정을 살피니 긴장한 내색이 역력했다.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니 나도 그랬다. 불안도가 높았던 나는 등교거부까지 할 정도로 새 학기에 대한 압박감과 긴장도가 높았다. 고학년이 될수록 점점 줄어들긴 했지만 마음이 불편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학교를 하루쯤은 쉬고 싶다는 표시를 내곤 했다. 그러나 지독한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학창 시절 내내 개근상을 탔던 기억이 난다. 지독한 엄마가 타낸 상이다.
엄마는 내가 아침에 아프면 학교 다녀와서 병원을 가게 한다던지, 아침 일찍 병원에 갔다가 바로 학교에 데려다주었다. 그냥 집에서 쉬게 하는 법이 절대 없었다. 그런 엄마 밑에서 자란 나는 아이가 조금 힘들어하거나 아픈 날이면 병원에 갔다가 집에서 쉬도록 한다. 학교생활이라는 건 12년이라는 기나긴 마라톤이고 지금까지 살아보니 중요한 시기이긴 하지만 인생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하루정도 쉬었다 간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까 하는 생각에서 결석을 하게 하는 데에 부담이 없다. 오히려 아픈데도 강압적으로 학교로 보내진다면 학교는 즐거운 공간이 아닌 의무적이고 강압적인 곳이 될 것이다. 나는 학교에 대해 그렇게 좋은 감정이 없다. 학교를 맘껏 좋아하거나 즐기지 못했던 그때가 떠올라 더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엄마는 엄마의 교육관과 사정이 있었겠지만 나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아이가 감기기운이 있어 병원에 갔다가 집에서 쉬는 날이었다. 엄마는 내게 물었다.
"너 그렇게 애 학교 안 보내고 쉬게 하면 안 불안해? 학교 공부 뒤쳐지면 어떡할래?"
그때 알았다. 엄마가 꾸역꾸역 나를 학교로 내몰았던 이유. 자신의 불안 때문이었다. 수십 년이 지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조금 허무하기도 했고 놀라기도 했다. 엄마에게는 특별한 이유나 철학이 있을 줄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점점 카지노 쿠폰로부터 분화되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 마음속 어딘가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역시 나는 카지노 쿠폰와 다른 사람이었어.'라는 안도감도 함께 말이다.
요즘 엄마는 고해성사하듯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며 후회한다는 말을 자주 뱉곤 한다. 일과 교회에만 빠져 살아서 우리 남매와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고 했다. 맞다. 엄마는 회사와 교회밖에 몰랐다. 가족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 돈 문제는 두 번째였고 엄마가 마음의 여유가 없었달까. 아빠가 돌아가신 그날에 멈춰있던 엄마는 최근에 30년을 빨리 감기 하며 점프하고 있다. 엄마는 빨리 좀 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아빠 없이 키우는 하루하루, 1분 1초가 더디게 가는 고통스러움을 우리를 다그치는 데 사용했다. 정말 쓸모없는 다그침이었다는 걸 지금은 아실까 모르겠다. 빨리 크라는 엄마 말을 듣다 보니 3월이 되면 새로움이라는 설렘과 긴장이라곤 1도 없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1시 50분. 아이가 하교하는 시간. 비가 내려서 우산을 들고 학교 건물 입구로 데리러 갔다.
활짝 웃으며 나오는 아이. 오늘 하루 어땠냐는 내 질문에 아이가 대답했다.
"좋았어."
내일은 긴장보다 설렘이 가득한 등굣길이길 바라,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