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같았던 두 달을 보낸 나에게 찾아온 번아웃이라는 덫
지난 두 달 동안 이사 준비로 이리 뛰고 저리 뛰었더니 번아웃이 와버렸다. (인테리어 공사뿐만 아니라 시작도 해보기 전에 또다시 세팅하는 일이 생겼으므로 그것 또한 내게는 크나큰 도전이자 일이었다. 게다가 아이 학교 픽드롭까지 모두 나의 몫이었기에 시간을 쪼개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루가 어찌 지나가는지도 모를 폭풍 같은 두 달을 보냈다.) 지난 금요일, 이사를 마치고 할 일들은 태산같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철저히 외면했다. 주말 이틀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불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불속에서 주야장천 잠을 자거나, 잠이 오지 않을 때는 드라마를 보며 현실에서 도피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머릿속으로 '해야 하는데...' 생각만 하며 죄책감을 갖기 싫어서 다른 세상(드라마)으로 도망쳤다. 죄책감과 현실 도피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주말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월요일이 되었다. 이틀을 꼼짝없이 쉬었는데도 힘이 나기는커녕, 더 불안해지고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왜 그런 걸까. 뭔가 꼬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제는 예정된 그림책 모임이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그림책을 읽으면서 다른 생각들이 나에게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작은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무거운 몸을 끌고 나갔다. 무기력한 사람들을 위한 주제라는 말을 듣고 '나를 위한 주제잖아?'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심 반갑기까지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조금 무기력이 덜어지는가 싶었으나 여전히 무기력했고 사실 어안이 벙벙하달까. 현실감각이 무뎌지는 듯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혼란 속에 휩싸였다. 그렇게 세 시간을 보내고 나는 지쳤다. 무기력한 사람들에게 활력을 되찾게 하는 질문들은 좋았지만 나의 무겁고 지겨운 무기력을 완전히 떨쳐버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했다.
'나의 무기력은 왜 점점 바닥으로 빠져들어카지노 가입 쿠폰 걸까.'
이번 주 금요일에 서울에 가는데 그 일을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점점 나를 짓누르고 있어 신경이 점점 예민지고 있다는 사실과 아직도 아물지 않은 이별에 자꾸 몰두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어떤 한 생각에 몰두하지 않도록 약의 도움을 받고 있는데, 이사 때문에 정신이 없던 지난주는 약을 한 번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지금 무기력이라는 그물에서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못 벗어난 이유에 대해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나니, 지금 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혼자 있는 집에서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 그것이 당장 필요했다. 집에 오자마자 비빔면을 끓이기 시작했고 면이 삶아지는 냄비를 보고 있자니 군침이 돌았다. 무기력이라는 게 언제 있었냐는 듯 나는 빨간 양념에 식욕이 돋기 시작했다. 그렇게 상을 차려 TV앞에 앉았다.
배부르게 먹고 나니 행복감이 올라왔다. 아주 잠시. 이 무기력의 탈출구가 이렇게도 간단할까. 조금 시간이 지나니 다시 압박감에 시달렸다. 아마도 이 압박감은 다음 주 토요일이 되어서야 해결될 것 같다. 그전에는 그냥 견디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물지 않은 이별에 자꾸 몰두하는 나 자신은 약을 먹으면 많이 가라앉는다는 믿음 때문이었을까 약을 먹지도 않았는데 벌써 안정감이 찾아들었고 나를 짓누르던 이별 사건은 어느새 작은 돌멩이가 되어 있었다. 언제 또다시 나를 짓누르는 바위가 될지 모르지만 말이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려고 2층 작업실 책상 앞에 앉았다. 생각들은 사방으로 뻗치기 시작했고 금방이라도 넘쳐흐를 것처럼 머리 정수리에서 넘실댔다. 책상에 앉으면 따라 올라와 내 뒤에 앉아있는 강아지와 산책을 하러 나갔다. 걷다 보면 생각이 정리가 되니까. 속 시끄러운 내 머릿속과는 정반대인 고요한 산책길에서 나는 결국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잘라내기에 급급했다. 땅만 보고 걷다 고개를 들고 멀리 보이는 하늘을 쳐다봤다. 바람이 많은 제주 하늘은 카지노 가입 쿠폰이 움직이는 게 자주 보인다. 그때 불어온 바람에 나는 생각도, 마음도, 몸도 다 맡겨버리자는 다짐을 했다. 어디로 갈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함과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별 것도 아닌 것들을 꽉 움켜쥐고 있는 건 아닌지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