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을 함께 하고 있지만 나는 그녀를 설명할 수 없다. 그녀를 설명하기엔 그녀는 다채롭고 입체적이며 조금 이상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자기 자신을 어느 하나로 규정짓거나 판단하는 것을 그다지 내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그녀를 온라인 카지노 게임할 뿐이다.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소파에 누워서 큰 눈을 깜빡거리고 있다. 그렇다고 스마트폰이나 TV를 보는 것도 아니다. SNS를 하지도 않는다. 그냥 말 그대로 가만히 누워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으면 그녀의 눈에서는 총명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허무하게도 그런 찬란한 눈빛과는 대비될 만큼 그녀는 아무런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하고 있지 않다. 무슨 온라인 카지노 게임해?라는 질문을 지금까지 수백 번은 했던 것 같은데 거의 90% 이상은 정말이지 아무런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이런 상태를 ‘초절전 모드’라고 지칭한다.
‘사람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하는 동물’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그녀는 ‘아주 사람’이 되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 늘 화수분처럼 나오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들의 무게에 짓눌려 사는 나와는 대조적으로 그녀의 머릿속은 군더더기 없는 ‘미니멀 라이프’이자 폴더가 없는 휴지통 비움 상태의 깨끗한 컴퓨터 바탕화면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몰상식하다거나 지능이 떨어진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완전히 그 반대이다. 그동안 지켜봐 온 그녀는 상식 밖의 행동을 한다거나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또한 메타인지 기능이 발달되어 본인이 본인의 능력이나 호불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다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많이 하지 않기에 기억들을 되뇌는 과정이 자주 일어나지 않아 꼭 기억해야 하는 것들만 제외하곤 거의 기억을 하지 못할 뿐이다. 너는 마치 고급 사양의 CPU에 메모리 카드가 없는 컴퓨터 같다고 내가 종종 얘기하면 그녀는 그냥 한번 피식 웃으며 암묵적 수긍을 하는 모양새다.
우리가 다시 만나고 한참 동안은 우리가 왜 헤어졌었는지, 헤어지고 어떻게 지내고 있었는지, 너도 나만큼 많이 힘들어했는지 와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냥 다시 이렇게 손을 잡고 만나는 것에 감사함을 느낄 뿐이었다. 그녀에게 우리가 헤어져 있던 기간의 메모리 카드가 아프게 다가올까 봐 온라인 카지노 게임하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한 번은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 극장에서 재개봉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멜로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그녀지만 내가 꼭 극장에서 다시 보고 싶은 영화였기에 설득해서 함께 보러 갔다. 역시나 좋은 영화라 감상을 마치고 극장을 나오는데 그녀가 한참을 말없이 울고 있었다.
마음을 진정시킨 후 우리는 그날 밤 천문대에 별을 보러 갔다. 별을 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드라이브 코스로 야경이 좋기도 하고 헤어져 있던 시간 동안 수없이 쳐다봤던 밤하늘이었기에 별을 핑계 삼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싶어서였다.
“나랑 헤어져있던 시간 동안 어떻게 지냈어?”
초절전 모드가 해제되고 컴퓨터에 메모리카드가 장착되는 순간 그녀의 눈에는 다시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일이 많기도 했는데 일부러 더 바쁘게 지내려고 노력했어. 조금이라도 공백의 시간이 생기면 슬픈 감정이 자꾸 밀려오는 것 같아서. 그리고 나 사실 실버타운 알아봤어”
“응? 실버타운? 거긴 왜?”
“너랑 헤어지고 난 나라는 사람의 미래에 대해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란 걸 해봤거든”
“근데 왜 실버타운이야?”
“한 해씩 나이가 들어가면 나도 그렇고 상대도 그렇고 쌓이는 경험과 함께 상대에게 온전한 마음을 주는 것이 쉽지 않잖아. 확률적으로 너만큼 나를 좋아하는 사람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했어. 뭐 이후에 누군가와 보통의 연애는 할 수 있겠지. 너랑 만나면서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 어떤 건지 경험했는데 나를 적당히 좋아하는 사람과 미래까지 고민한다? 그보다는 혼자서도 확실하게 잘 살 수 있는 실버타운을 선택해야겠다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했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상태로 진지하게 말하는 그녀에겐 미안하지만 난 실버타운을 알아봤다는 그녀의 말에 역시는 역시구나 하며 약간의 웃음이 나왔다. 아직 30살도 안된 친구가 실버타운에 갈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했다는 것이 참 그녀다웠다.
“그래 정인아. 이제 실버타운 가지 말고 나랑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이렇게 사랑하자”
“그래 아무래도 그게 더 좋을 것 같아!”
메모리카드가 뽑히고 그녀는 다시 초절전 모드로 돌아갔다. 여전히 그녀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잘하지 않는다. 그리고 더 이상은 우리가 헤어진 시간의 메모리 카드가 그녀의 눈물 버튼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나는 오늘도 알지만 물어본다.
“정인아 무슨 온라인 카지노 게임?”
“나?아무 온라인 카지노 게임 안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