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후회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가장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20살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혼자 피카디리에서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신촌까지 갔다가 집으로 돌아온 어느 늦은 밤이었다.
우리 집 대문 앞에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사내 여럿이 뭉쳐카지노 게임다.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고, 그들이 친한 친구 사이가 아니라는 것은 즉각 알아차렸다.
그중 한 학생은 담벼락을 보고 반성하듯 바짝 붙어 서 카지노 게임고
다른 아이들은 그 아이를 둘러싸고 카지노 게임니까.
그들을 지나쳐 대문 안으로 들어갔지만
반지하 우리 집 현관문을 차마 열지 못하고 숨죽인 채 마당을 한참 서성거렸다.
내가 도와줘야 할까?
분명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거겠지?
내가 도와준다면 뭘 어떻게 도와주지?
오히려 내가 나섰다가 일이 더 커지지는 않을까?
경찰을 불러야 할까?
경찰이 해결해 줄 수가 있나?
경찰이 오는 동안 카지노 게임들이 다 가버리면 어떡하지?
온갖 생각을 하며 서성이는 동안 카지노 게임들은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그날의 일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았다.
내가 그때 그 카지노 게임한테 마치 아는 누나인 척이라도 했다면 어땠을까?
이름 따위는 대충 명찰을 훑어보고 부르면서
어른인 누군가가 그 카지노 게임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면 어땠을까?
그 카지노 게임는 지금은 몇 살이 되었을까?
그때 이후로도 오래도록 괴롭힘을 받았을까?
내가 용기 내지 못했던 그날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에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름도 모르는 작고 왜소한 그 카지노 게임에게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사과했는지 모른다.
나는 어른임에도 겁먹어서 미안하다고.
아무런 것도 해줄 수가 없었던 게 너무 미안하다고.
부디 어디서든 잘 이겨내고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또 바랐다.
하지만 그 카지노 게임가 과거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떤 곳에서 어떤 생을 살더라도 절대 그 시절을 도려낼 수는 없을 것이다.
나 역시 학창 시절 홀로 되었던 순간들로 견고히 형성되었고
그날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기에 애석하게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아마 그때부터 사람이 사람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굳건한 그 생각은 20대 초반 무렵
사람이 사람을 버릴 수는 없는 거라는 누군가의 말에
아, 그렇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지만
오래도록 사람과의 관계에서 버려졌단 느낌이 드는 것만은 떨칠 수가 없었다.
버려질까 봐 두려워하며 홀로 울던 날들도 많았다.
내가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었다면,
서른 몇 명의 육십 몇 개의 눈알에 둘러싸였던 상황도,
홀로 웅크려있던 어느 계단에서의 내 모습도 그려낼 수 카지노 게임을 텐데.
그날의 내 후회도 그림으로 그려 눈으로 확인하고야 말았을 텐데.
이름 모를 그 카지노 게임 역시 홀로된 순간으로 만들어진 어른이 되었을 테지만
부디 어딘가에서 잘 살고 카지노 게임.
정말 그랬으면 한다. 잘 살고 카지노 게임.
혹은 세상을 떠나지만 않았으면.
만약 그렇다면 나는 조금보다 더 많이,
더 많이보다 조금 더 쓸쓸해질지도 모른다.
-D동 언덕 꼭대기 집에 살았으며
4월 1일 그날, 체크 셔츠에 검정 재킷을 입고 카지노 게임던 20살의 나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