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카지노 게임는 기분이 좋았다.
교회에 가는 길에 모시러 가면 뒷좌석에 오르면서 항상 앓는 소리를 하셨는데, 오늘은 다르다.
"기분좋아 보이네?"
"그래 보이냐?"
물어보길 기다렸다는 듯 카지노 게임는 말을 이어갔다.
"요새 꿈에 니 애비가 자주 나오더라. 그런데 좋게 나와."
카지노 게임는 항상 아버지를 '니 애비'라고 불렀다.
몇십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그 호칭은 듣기 불편하다.
"전에는 꿈에 나올 때마다 싸워서 깨도 기분이 안 좋아. 그런데 요새는 꿈에서도 행복 해."
룸미러로 보이는 카지노 게임 얼굴.
선물을 손에 들고 좋아하는 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모습에 내 입꼬리도 올라간다.
"카지노 게임 꿈에 아버지랑 사이가 좋은 건 이제 아버지를 다 용서해서 그런가 봐."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년이 지났다.
결혼 생활 중 아버지가 카지노 게임와 함께 한 시간은 삼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카지노 게임 인생에 남자라고는 아버지 밖에 없었지만, 아버지에게 카지노 게임는 여러 여자 중 하나였을 뿐이다.
바람기가 멈춘 것은 집착이 강한 마지막 내연녀와 살림을 차리면 서다.
육 남매를 건사하는 게 버거웠을까.
얼굴만 예쁘고 색기가 없는 카지노 게임에게 싫증이 난 걸까.
무슨 이유를 갖다 대도 무책임한 아버지의 외도를 합리화할 수는 없다.
카지노 게임는 외도녀와 사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정신을 놓아버린 적도 있었지만 항상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자다가 갑자가 일어나 섬망증세처럼 아버지가 오셨다며 우리를 깨우기도 했고, 멍하게 길을 헤매고 다닌 적도 많았다.
그런 증상들은 아버지 얼굴을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씻은 듯이 사라지곤 했다.
상처 위에 상처가 덧입혀져 무디어지기까지 숱한 날들이 지나고 정말 남의 편이 되어 잊힌 지 오랜데, 내연녀는 이제 와서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냈다.
가족이라는 이름을 들먹이며.
불륜이니까...
그러니까 버릴 수 있겠지.
노환으로 반송장이 된 아버지를 버린 내연녀 대신 조강지처인 카지노 게임가 장례를 치렀다.
외도의 간접 피해자인 자식들은 눈에 쌍심지를 켜며 반대했지만, 당사자인 카지노 게임는 아버지를 모셔온 나를 칭찬했다.
'그 년이장례를 치른다고 생각하면 아주 끔찍하다. 끔찍해'
2주간의 요양병원 입원기간 동안 어느 누구도 면회 오지 않았다.
임종이 가깝다는 병원 측 연락을 받고 나는 카지노 게임를 모시고 아버지를 뵈러 갔다.
아직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지 않은 터라 두꺼운 비닐 커튼을 사이에 두고 휴대폰으로 대화해야 했다.
그렇게 속을 썩이더니 꼴좋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카지노 게임는 뜻밖의 인사를 했다.
'가거든 나 꼭 데려가.'
이제 나만 데려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카지노 게임는 너무 아무렇지 않게 아버지를 받아들였다.
의식이 또렷하지 않은 아버지는 카지노 게임의 말에 알아들을 수 없는 신음소리 같은 대답을 했다.
수십 년 만에 만난 부부의 모습을 병실 안의 모든 환자와 간병인이 지켜봤다.
살짝 창피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그들은 우리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도 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 아버지는 다음 날 눈을 감았다.
용서한 것 같았는데카지노 게임는 그 후로도 가끔 아버지를 들먹이며 욕을 했다.
이미 고인이 되었는데 무슨 한이 아직도 남았느냐며 우리는 듣기 싫은 티를 역력하게 냈다.
'카지노 게임, 매일 같은 소리 하기 힘들지 않아? 이제 그만 잊어버려.'
카지노 게임는 그 후로 아버지를 지워내려 애쓰며 기도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꿈속에서 그 첫 남자와 마지막 부부 생활을 하고 있다.
'어제 꿈에 내가 니 아비한테 걸레 좀 갖고 오라고 했어. 그런데 글쎄 벌떡 일어나서 갖고 오지 뭐냐. 꿈이지만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정말 좋더라.'
카지노 게임는 올해 여든여섯이다.
몸은 아흔도 넘은 것처럼 잘 걷지 못하고 날이 갈수록 점점 쇠약해지신다.
나는 올봄 카지노 게임와의 여행을 계획 중이다.
여행을 꽤나 좋아하는 카지노 게임 생전에 마지막 여행이 될 것이다.
휠체어를 타거나 지팡이를 짚고도 걷기 쉬운 곳을 선택하여 꽃구경도 시켜주고 바다도 보여드리려고 한다.
노란 유채꽃 속에서 꽃보다 더 활짝 필 카지노 게임 얼굴이 그려진다.
파도를 보며 가슴속까지 시원한 바람이 파고들어 고여 있던 기억의 먼지들까지 다 털어내기를.
그러다가 아버지가 데리러 오면 깃털처럼 가볍게 내 미는 손 잡고 갈 수 있기를.
부디 그 곳에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 사랑하며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