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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루 Apr 03. 2025

이건 그냥 카지노 쿠폰 얘기가 아니야

타국에 발을 디딘 지 꼭 2년째 되는 해였다. 학교 졸업식이 있었고, 정식으로 고용계약서에 사인을 했으며, 처음으로 월급을 받기 시작했다. 이 나라에 정착하기 위한 지난한 절차 중 첫 관문을 간신히 넘긴 셈이었다.

그 해 오월, 내 생일이 돌아왔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선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정도는 받을 만 하지. 지난날의 고생을 떠올리며 속으로 되뇌었다.

방 안에서 혼자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작은 스피커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오래전부터 바라왔던 참이었다. JBL사에서 나온 휴대용 블루투스 카지노 쿠폰를 120달러 주고 샀는데, 당시 내 시급은 쥐꼬리만 하여 그거 하나 사면서도 손이 떨릴 지경이었다. 벌써 9년 전 일이다.





스피커는 기다란 원통형, 빨간색이다. 원래의 취향대로라면, 무채색이나 흐릿한 색을 골랐을 텐데 어쩐지 그때만큼은 쨍한 빨강을 집어 들었다. 전원 버튼을 누르면 '우웅'하는 미래적 사운드와 함께 위와 바닥 부분에 붙은 검고 동그란 진동판이 부르르 떨렸다. 나는작은 원판에 손을 얹고, 손가락 끝으로 전해지는 진동을 가만히 느꼈다.

작은 점같은 전원 표시등과 본체 옆구리에 일렬로 배치된 각종 조작 버튼에 불이 들어오면, 길쭉한 몸통의 스피커는 이륙 준비를 마친 작은 우주선처럼 금방이라도 도약할 것만 같았다.

진동판 너머 떨림과 발광하는 불빛 앞에서, 그러니까 고 작은 카지노 쿠폰 앞에 앉아 어쩌면 나는 그런 꿈꿨는지도 모른다.

길고 긴 동면에서 그만 깨어나기를. 시동을 걸고, 높은 하늘 위로 치솟아 오르기를.

그리만된다면, 다음에 펼쳐질 인생은 카지노 쿠폰의 진동만큼이나심장 떨리는 설렘으로 채워지지 않을까.





미래를 향한 도약을 꿈꾸게 하던 카지노 쿠폰가갑자기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카지노 쿠폰의 충전단자가 그만 고장 나 버린 것이다. 충전 잭을 반대 방향으로 꽂은 바람에 단자 안 가느다란 금속 핀들이 우그러졌다. 방향을 잘 살피고 조심스레 넣어야 하는데 무식하게 힘으로 눌러버린 것이다. 방전된카지노 쿠폰의 전원은 더 이상 켜지지 않았다.

알아보니 캐나다 내에는 따로 AS 센터가 없고 고장 난 제품을 미국에 있는 본사로 보내야 했다. 번거로운 것은 물론이고수리비가 얼마나나올지, 다시 되돌려 받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전혀 가늠을 할 수가 없었다.

동네에 중국인이 운영하는 작은 전파사에 들고 가고칠 수 있냐고물어보았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받았다.

마지막으로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은 한국에 가져가서수리를 받는 것이었다.한국이라면사설수리점가도충분히 고칠 수 있을 듯했다. 나는 다음 해 한국에 휴가를 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카지노 쿠폰를 챙겨 갔다.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용산 전자상가에 있는 수리업체를찾아갔다. 수리기사는 충전단자를 교체하면 된다고 했다. 다 고치면 택배로 부쳐주겠으니 카지노 쿠폰를 찾으러 다시 방문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나는빠르고 정확한 응대와 고작 삼만오천 원이라는 저렴한 수리비와 편리한 택배 시스템— 말하자면 대한민국을 관통하고 있는 그 어마무시한 편의성에 탄복하며, 카지노 쿠폰를 맡겨두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어떤 이유 때문인지 시간이 지체되어 나는 수리된 카지노 쿠폰를 캐나다로 가기 바로 전날이 되어서야(그래봤자 원래 약속한 날짜보다 이틀 정도 늦어진 것이었지만) 가까스로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스피커가 들어있는 택배상자를 열어볼 틈도 없이 그대로 캐리어에 담아 공항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와 카지노 쿠폰를 꺼내보니 고장 난 충전단자는 새것으로 교체되어 있었다. 기쁜 마음으로 케이블을 연결했지만카지노 쿠폰의 전원은 여전히 들어오지 않았다. 이미 캐나다로 돌아와 버렸으니 한국의 수리점에 전화해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또 일 년이 지나 다음 해한국에 갈 때 나는 다시카지노 쿠폰를 챙겼다. 작년에도 카지노 쿠폰를 고치려 했던 걸 아는막냇동생은내가 그것을 또싸들고 오자, 그냥 새 카지노 쿠폰를 사는 게 어떻겠냐고, 그것보다 좋은 스피커가 널렸는데, 하면서 혀를 끌끌 찼다.

솔직히 유혹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더 좋은 카지노 쿠폰를 사도 좋으련만, 이 생각을 나도 수도 없이 했던 것이다.

하지만 빨간 카지노 쿠폰가, 내가 나에게 준 첫 트로피이자 상징적 우주선이,쓰레기통에 처박히는 꼴은 도저히 볼 수 없었다.

이번에는 좀 더 규모가 큰 수리점을 찾아갔다. 전처럼 일정에 쫓기지 않으려고, 한국에 도착한 다음 날 바로 다. 카지노 쿠폰의 충전단자를 교체했는데도 여전히 충전이 안된다고 하자 업체에서는 아마도 메인보드를 교체해야 할 거라고 했다. 수리비가 칠만 원 정도 나올 텐데 그래도 하겠냐고 내게 물었다. 그다지 비싸지도, 좋지도 않은 오래된 카지노 쿠폰를 캐나다에서부터 싸들고 왔다는 나를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나는 상관없으니 수리해 달라 답했다.

그게 저한테는 의미가 있는 거거든요,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어쩐지 불필요한 말을 더하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일주일 뒤쯤, 스피커가 택배로 도착하자 나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케이블을 연결해 보았다. 충전을 알리는 불빛이 깜빡깜빡거렸다. 전원버튼을 누르자우웅하는 소리와 함께 진동판이 부르르 떨렸다. 2년 넘게 멈춰있던 카지노 쿠폰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내 심장도 같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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