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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해원 Apr 24. 2025

빠순이 일대기

온라인 카지노 게임© 노해원



꽤 오랜 시간 빠순이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하필이면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그 오빠들은 대부분 음악가들이었고, 그래서 나에게 음악이란 내가 (나이와 상관없이) 오빠라 부르며 쫓아다녔던 그들과 나의 추억이자 연결고리이며 그것이 곧 나에게 새겨진 음악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이 글에는 그렇게 지나 온 나의 음악의 역사, 빠순이 일대기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내가 처음 용돈을 모아 CD를 사고 음악 프로그램을 챙겨보기 시작한 것은 1TYM을 좋아하기 시작하면서였다. 그때 나는 중학교 1학년이었는데, 이 가수를 언제부터 어떻게 좋아하게 됐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고 이 가수를 계기로 H와 친해졌다는 것만을 확실히 기억한다. H와 나는 같은 면에 살았지만 다른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중학교에 가서 만났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면 소재지에 있는 큰 학교와 그 면에 속해 있는 작은 학교가 합쳐지는 경우였는데 나는 후자의 작은 학교를 다녔다. 그래도 그때는 지금 보다 농촌에 아이들이 꽤 있어서 두 학교를 합쳐 놓으니 한 학년에 50명 가까이 되었고, 남녀로 반을 나눠 한 반에 스물두세 명은 되었다. 나는 갑자기 커진 학교의 규모와 늘어난 친구들, 특히 같은 반이 된 여자 친구들의 세계가 낯설면서도 신기하고 새로웠다.


무엇보다 신기했던 것은 무리를 지어 누군가를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모습이었다. 처음 입학 했을 때 우리 반에서 절반 정도 되는 친구들이 같은 학교 출신의 남자 애 한 명을 한꺼번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고 있었다. 삐쩍 마르고 동그란 안경을 쓴 해리포터같이 생긴 친구였는데 투박하고 짓궂은 다른 남자 친구들에 비해 몹시 다정하고 친절한 남자애였다. 한창 순정만화에 빠져 있던 나는 어떻게 여러 명이 한 명을 좋아할 수 있는지, 그러면서도 다들 어떻게 저렇게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지, 무엇보다 저 남자애의 무엇이 저들을 흠뻑 빠지게 만들었는지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드디어 친구들이 그 남자애에 대한 마음이 시들해지는 계기가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동방신기의 등장이었다.


그 남자애를 좋아하던 친구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동방신기를 향해 갔다. 오히려 동방신기를 좋아하는 것은 더욱 대중적이었기 때문에 이제는 반 친구들의 거의 전체가 그들을 좋아했다. 친구들은 매일 동방신기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쉬는 시간에는 어김없이 동방신기의 노래를 틀었다. 이런 거대한 흐름에 합류하지 못하고 있던 사람이 나와 H였다. 나는 그때까지도 집에서 듣는 음악이라고는 <백창우와 굴렁쇠 아이들에 있는 노래들이었고, 음악보다는 만화책이나 만화영화를 더 좋아했다. H가 그때 나에게 어떤 말을 하며 이 오빠들을 소개했는지 명확한 순간이 기억나진 않지만 어쨌든 동방신기를 좋아하지 않는 유일한 반 친구 중 한 명이었으니 접근하기는 더 쉬웠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 역시 감미로운 동방신기의 아카펠라보다 역동적이고 리드미컬한 원타임의 힙합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반에서 유일하게 동방신기를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이자 원타임이라는 아저씨 그룹(동방신기에 비해)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되었다. 동방신기에 비해 TV에 나오는 횟수는 훨씬 적었지만 그래서 TV나 라디오에 나오는 한 번 한 번이 너무 소중했다. 모든 음악 방송을 비디오로 녹화하는 것은 기본이고 라디오나 가끔 나오는 예능, 그 외 자잘한 프로모션까지 노치지 않으려 애썼다. 우리 반, 아니 우리 학교를 통틀어 원타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H와 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우리의 사이는 더욱 돈독해졌다. 그러다 이 오빠들의 활동이 뜸해질 무렵(아마도 군 입대 이슈) 다시 또 새로운 오빠들을 함께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도 시작은 H로부터였다. 어느 날 H가 “이 노래 한 번 들어 볼래?”하며 자신의 MP3에 있는 노래 하나를 이폰 한 짝을 빌려 주며 들려주었는데 그 노래가 밴드 NELL의 ‘stay’였다. 나는 그 길로 곧장 NELL을 좋아하게 되었다.


우리는 NELL을 온라인 카지노 게임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것을 넘어 쫓아다니기 시작했다는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마음의 큰 변화가 있었다기보다 이 오빠들은 정말이지 직접 쫓아다니지 않고서는 보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오빠들을 보려면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야 했는데 우리는 시골에 살았고, 아직 어렸으므로 여러 가지 제약이 많았다. 그럼에도 NELL의 활동은 대부분 공연위주여서 그들을 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제약들을 물리치고 집밖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나는 NELL을 쫓아다니면서 처음 해보는 많은 일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컴퓨터 화면에만 있던 오빠들의 실물을 보게 된 것도 처음이었고, 친구랑 둘이 서울에 간 것도, 티켓팅이라는 것을 하고 콘서트에 간 것도, 10만 원이 넘는 티켓을 사본 것도, 처음 본 사람과 친구가 된 것도, 공연장에서 선물을 전해주고 그 선물을 직접 사용하는 것을 보며 눈물을 흘린 것도 모두 처음이었다. 나는 그들을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일에 모든 마음과 시간과 돈을 쏟아부었다.(쌓이기만 했던 세뱃돈 통장이 비워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부터였다.)


NELL을 좋아하면서 또 하나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한국의 인디음악이었다. 내가 NELL을 한참 쫓아다녔던 시기가 메이저 2집 앨범인 walk through me라는 파란색 꽃이 그려진 앨범이 나왔을 때였는데. 타이틀곡인 Thank you 등으로 음악방송까지 진출했지만, 여전히 클럽이나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더 많이 하는 팀이어서 그런 오빠들을 따라다니면서 알게 된 인디 밴드들과 아직 알려지지 않은 숨은 밴드들을 알아내는 것도 큰 기쁨이었다.


우리의 이런 강렬한 열정과 연대는 내가 고등학교를 타지의 기숙사 학교를 가면서 뜸해지게 되었다. 더구나 고등학교를 대안학교로 가게 되면서 TV나 컴퓨터를 볼 수 있는 시간 자체가 없었고, 타지로 나갈 수 있는 시간은 더욱 없었으며 매일이 너무 바빴다. 지금까지도 매년 NELL 콘서트를 챙겨가는 H에 비해 나는 이후 왕래가 없어진 것을 보면 나에게는 그 오빠들보다 H와 둘이서만 만들어 가던 시간이라든지, 새롭게 알게 된 세상과 관계, 휩쓸리지 않고 우리가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것을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강단 같은 것들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이후로는 음악보다는 다시 만화나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는데 달라진 점이 있다면 만화나 영화를 볼 때에도 인디요소가 짙은 것들을 찾아보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특히 수시로 대학교가 일찍 결정된 고3 말미에는 정말이지 흡입하다시피 그런 것들을 찾아봤다. 대학교에 가서는 밴드보다는 풍물에 빠져 방학이면 전수를 가고 사람들과 어울려 악기 치는 것을 더 좋아했고, 정신없이 살다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밤에 영상 볼 일이 늘어나게 되면서 아이돌 문화에 흠뻑 빠졌다가(나이와 상관없이 오빠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지금은 잔잔한 마음으로 맥밀러와 오아시스를 좋아하며 지낸다. 원타임과 넬을 좋아하며 역동적으로 그 오빠들과 그들의 음악에 빠져 지냈던 중학교 시절에 비해 지금은 오르락내리락하는 덕질이지만 어떤 음악가를 좋아할 때면 그 시절의 내가 자주 떠올라서 마음이 뜨거워진다.


몇 년 전 간만에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며 마음이 뜨거워진 순간이 또 있었는데. 처음으로 아이들과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을 갔을 때였다. 마침 그날 헤드라이너가 NELL이었다. NELL이 나올 때쯤 우리는 무더위에 꽤나 지친 상태였고, 둘째 이음이와 막내 우리는 돗자리에서 잠들어 있었다. 그날 모든 공연을 보겠다며 도장 깨기를 하던 울림이만 깨어 있어 나와 울림이, 이렇게 둘이서만 NELL의 무대를 보러 무대 앞으로 갔다. 헤드라이너답게 다른 공연에 비해 사람들이 엄청나게 모여들었고 수많은 어른들에게 둘러싸인 울림이는 무대가 잘 보이지 않아 음악에만 귀를 기울이거나 주로 나의 표정을 살펴 보았다. 나는 그런 울림이를 잠깐씩 들어 안아 무대를 보여 주거나 손을 꼭 잡고 음악에 맞춰 팔을 흔들었다. 울림이와 함께 무대를 보는데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거대하게 벅찼다는 표현이 더 맞는지도 모르겠다. 울림이에게도 그런 내 마음이 전해졌는지 특별히 힘들다거나 다시 자리로 돌아가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NELL을 미친 듯이 좋아했던 몇 년과 그들을 보지 못하며 살아온 20년 가까운 시간을 지나 그 사이에 태어난 나의 아이와 함께 그 공연장에 함께 있었다. 꼭 나만큼 나이 든 오빠들과 여전히 그대로인 그들의 음악이 나올 때면 왜인지 자꾸 눈물이 났다.


20년 후에도 이 오빠들은 여전히 음악을 하고 있을까. 20년 후에 나와, 20년 후에 울림이는 어떤 음악을 듣고 있을까. 아마 H는 올해도 NELL의 콘서트를 갈 것이다. 그때 그 시절이, 처음의 많은 순간들이, 그때 흘러나오던 음악들이 내 삶의 저변을 변함없이 뜨겁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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