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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야 Apr 14. 2025

제목: 너를 만나려고 했나 보다

*"저의 40대 초의 이야기입니다. 2022년 써놓았던 에세이로 브런치북에 5화로 쪼개어서 발행했었는데, 너무 글을 짧게 끊어서 연재하는 바람에 연속성이 떨어졌지요? 이번엔한 페이지 안에 다 넣어 보았습니다. 그래서 6화는 이 에세이의 전체문장입니다. 다시 한 번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7화는 이 글을 쓰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


1화 가짜가족


“우리는 가짜 가족이잖아요."
무료 카지노 게임가 남편과 나와의 식사 자리에서 이렇게 말하자,
우리 부부는 적잖이 놀라고 말았다.


몇 달 전, 아이와 나, 남편이 함께 식사하던 날이었다.


원래아빠와친아들 사이에도 아내이자 엄마를 두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있다고 하더니,

이 둘 사이에서도 나의 사랑을 두고 은근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남편이 나와 아이에게 고기를 구워주고 있는데, 아이가 느닷없이 말했다.


“가족과 외식하는 무료 카지노 게임들이 너무 부러워요.”

“우리가 지금 너랑 같이 외식하고 있잖아?”


그러자 아이가 대답했다.

“우리는 가짜 가족이잖아요.”


한동안 우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얼마간 정적이 흐른 후,일찍 어머니를 여읜 남편은 아이에게 많은 사람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라는 네가 진심으로 부럽다고 말해주었다.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꿈만 있다면 끝까지 돕겠다고 했다.그 말을 들으며 나는 남편에게 내심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그 아이는 내가 가슴으로 낳은 자식 같은 아이였다.


약 18년 전,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우리 엄마가만학으로ㅇㅇ대 복지학과 수업을 들으러 다니던 중,

교수님이자 ㅇㅇ보육원 원장님에게서 아이의 사연을 들었다.엄마는 한걸음에 보육원으로 달려가 아이의 첫 결연 후원인이 되어주었다.당시 아이는 생후 3개월 정도였다.


나와 아이의 첫 만남은, 아이가 다섯 살이었을 때였다.

처음 본 순간, 마치 TV에서 본 늑대소년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아이의 아버지는 외국인 노동자, 어머니는 한국인이었지만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태어나자마자 보육원에 맡겨졌고, 형도 함께 보육원에서 자라고 있었다.


그날, 엄마는 바리바리 먹을 것을 싸들고 보육원으로 갔다.나는별생각 없이 따라갔고, 아이와 아이의 형을 만났다.5살의 천진한 아이와 초등학생 형은 통제 불가능해 보였고, 말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 아이들, 커서 어떻게 될까?' 걱정스러운 마음뿐이었다.


보육원 근처에 마땅한 식당이 없어 중국집에 데려갔는데,아이들의 얼굴과 손은 짜장면으로 범벅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해맑게 웃는 얼굴이 참 귀여웠다.무료 카지노 게임들이 커서 사랑받았음을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에수많은 사진을 찍어 앨범으로 만들어 보육원에 보내주었다.


그리고 수년이 흘렀다.

그 사진들이 그 무료 카지노 게임와의 인연을 계속 연결해 줄 연결고리가 될 줄은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2화 그날, 다시 마주한 무료 카지노 게임


시간이 흘러도 엄마는 아이를 챙겼지만, 내 머릿속에선 그 아이가 점점 잊혀져 갔다. 엄마는 사정이 있어 수년간 아이와의 결연이 끊어졌고 엄마의 부탁으로 나는 홀로 아이를 다시 찾으러 보육원을 찾았다. 마음이 콩당콩당 뛰었다.근 10년 만에 본 아이는 이미 어엿한 중학생으로 성장해 있었고, 사뭇 성격이 차분해진 듯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아이와 한국말로 소통이 된다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는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던 아이. 어떻게 자라날지 걱정이 많았는데, 사람을 섣불리 판단하면 안되는 걸 그 아이를 통해 깨달았다. 나는 아이에게 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더 감동적인 것은 피아노에 재능을 보이며 여러 콩쿨에도 입상을 하면서 많은 후원인들의 관심을 갖는 아이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통제되지 않던 아이를 이렇게까지 잘 키워주신 ㅇㅇ보육원에 마음깊이 감사드렸다. 오랜만에 봤는데도, 아이의 얼굴은 어렸을 때의 귀여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인지 전혀 아이가 낯설지 않았다. 숫기가 없다는 담당자의 말과는 다르게 아이는 나를 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자기 생일에 누군가 자기를 기억하고 찾아와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듯 대단히 기분이 좋아보였다.


시골 동네는 13년 전과 비교해 거의 변화가 없었고,그 중국집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주변은 거의 그대로인데 변한 것은 우리의 모습뿐이었다. 이제는 짜장면이 싫다고 했다.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사진첩에 간직되어 있던 젊은 여자가 누군지 궁금했는데, 그녀가 지금 눈앞의 이모라는 사실에 무척이나 기뻐했다. 그 사진들이 세월을 거스른 인연의 끈이 되어 그날부터 나와 아이는 마음의 소통을 시작하였다. 아이가 보육원에서 조차 피부가 어둡다고 깜둥이라는 놀림과 배척을 가끔씩 당하기도 하여 마음속에 한이 많이 자리 잡혀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 후로 나는 아이를 자주 찾아갔고, 그 아이는 운명처럼 내가 사는 시의 ㅇㅇ예고에 진학하게 되었다.


보육원에서도 기숙사에 보육원생이 나가 있는 경우는 이 아이가 처음이라 아이와 같은 시에 살게 된 나는 ㅇㅇ보육원과 의논한 후 내가 마치 학부모처럼 아이를 살뜰히 챙기게 되었다. 아이가 할머니라 부르는 우리 엄마와 나는 그 후로 매일 카톡방에서 아이와 대화를 하며 아이에게 부족한 인성교육과 예절교육, 맞춤법 등을 가르치며 마치 가족과 같은 끈끈한 유대감을 이어왔다.이 아이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 하는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여러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발로 뛰어 다녔다.우리 남편의 경제적 지원과 주위 사람들의 연결로 아이가 그토록 바라는 정상급의 피아노 교육자로부터 한 주에 여러 회 레슨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예고 첫 실기 시험 날이 되자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모! 저…… 실기에서 큰 실수를 했어요. 1등 못할 거 같아요.”


아이는 그 뒤로 말이 없었고,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한참 후에야 훌쩍이는 숨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껴 우는 듯 했다. 아이가 말하지 않아도 아이의 감정이 고스란히 내 마음속에 내리 박혔다. 자기에게 향하는 기대에 보답하려고 얼마나 긴장했으면…내 마음도 찢어졌다.


“괜찮아. 1등 못해도 돼. 네가 피아노를 잘 치기 때문에 우리가 널 사랑하는 게 아니야. 어른들은 네가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지원을 대신하여 너의 꿈을 응원하는 것 뿐이야. 최선만 다하면 돼.”


그 후, 아이는 사랑을 듬뿍 받으며 정서적인 안정을 얻더니 결국 다음 학기 실기에는 놀랍게도 1등을 하게 되었다.


3화 내가 무료 카지노 게임를 낳지 않은 이유


사실 나는 젊은 날부터 성공의 열망이 강하기도 했고, 내 자신을 더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40세가 넘도록 아이를 갖지 않았다. 아이를 기르며 아이한테 시간을 할애하고 열정을 쏟아 부을 시간에 내 스스로의 인생에 충실하자라는 주의였다. 그런데 내 인생에 예상치 못하게 이 아이가 갑자기 끼어 들어왔다. 엄마가 없는 아이와 자식이 없는 내가 만나 아마도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채우며 켜켜이 유대감을 쌓게 된 것이다.


가족여행을 해본 적이 없을 아이를 위해 방학 때 아이의 할머니인 우리 엄마, 이모인 나, 또 나의 부탁으로 자주 아이를 보살펴 주며 아이가 큰이모라 부르는 나의 지인, 아이 이렇게 넷이 2박 3일 동안 무늬만 가족인 가족여행을 갔다. 첫 가족여행을 떠나 할머니와 한 방을 썼던 아이는 신이 나서 할머니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한껏 들떠 있었다.


그리고, 자기 전 침대에 누워 할머니에게 하는 말이,

친구들이 모여서 가족에 대해 얘기할 때

“친구들한테 '내 할머니 성함은 ㅇㅇㅇ 씨,엄마 성함은 ㅇ미야 씨야.'
라고 대답했어요."라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다음날 엄마를 통해 듣고는, 아이에겐 얼마나 불러보고 싶었던 자기 가족의 이름이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 왔다. 그때는 아이가 자기를 낳아주신 아버지, 어머니의 이름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우리는 가족의 존재를 당연시 여기지만,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그 이름 하나가 세상의 전부일 수도 있었다. 그 아이의 마음속에 쌓여 있었을 외로움과 결핍이 그제야 내게 온전히 느껴졌다.


올해 아이가 만 17세가 되면서 주민등록증 신청이 가능한 나이가 되었다. 관할지의 주민센터로 데리고 가 열 손가락의 지장을 찍고 주민등록 발급신청이 끝날 때까지 옆에서 조용히 지켜봐 주었다.

주민등록증 발급,

그 의미는 이제 아이도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을 의미했기에 홀로 할 수 있음에도 내가 그 모습을 옆에서 묵묵히 지킨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네가 어른이 되더라도, 네가 보육원으로부터 나라의 보호로부터 독립을 하게 될 지라도, 난 너의 곁을 이렇게 항상 지키고 니가 성인이 되어가는 것을 지켜봐 주겠다’는 의미를 지닌, 아이에게 던지는 큰 무언의 메시지였다.


4화 너의 생일, 그리고 너의 엄마의 기일


혹시라도 무료 카지노 게임가 어른이 되어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싶어할 날이 생길 수 있어, 주민센터에서무료 카지노 게임와 함께그 아이의 추적할 수 있는 친족의 서류를 모조리 뽑았다. 외국인인 아버지는 이름 외에 찾을 수 있는 게 없었고아이의 친엄마를 거슬러 추적하였다. 외할아버지의오래된한자호적까지 뽑아봤으나 외가는상당히친족관계가복잡했고 살아계신 분이 적었다.친엄마의 성함도 모르던 무료 카지노 게임지만 친엄마의 성을 따른 자신의정체성만은갖게 하고 싶었다.


돌아가신 친엄마의 기일은 챙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서 아이 친엄마의 사망일을 살펴보았다.


그런데,사망일을 보고는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아이 친엄마의 사망일이 하필이면 아이의 생일 바로 하루 전날의 저녁인 것이었다.

무료 카지노 게임의 생일을 넘기지도 못하고 그날을맞추지않으려는 듯전날 돌아가신 아이의 친엄마가 가슴시리게 가여웠다. 그렇지만 더 가여운 것은 아이였기에 난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이가 더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보호 속에 자라려고 보육원에서 살게 될 운명이었던 것이지 절대 버려진 아이가 아니라 오히려 선택받은 아이임을 항상 마음 속에 새겨 주고 싶었다.그런데 부모가 누군지도 잘 모른 채 살아가면서 이 세상에 태어났음을 축복받을 수 있는 유일한 날이 생일이거늘 하필 하루 전날이 엄마의 기일이라면 이 아이가 축복받아야할 날마저 슬픔으로 얼룩질 것 같았다.


그렇게친엄마의 궤적을 쫓을이유가 사라지자 난 그 무료 카지노 게임의 뿌리찾기를포기했다. 그리고 내가 그 자리를 대신해 줘야 하는 사명감이 들어 난 아이에게"내가 죽으면 제사를 네가 지내 줘야 해"

라며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를 시작했다.


5화 너를 만나려고 "내가 애를 낳지 않았나"보다


아이가 고3이 된 올해 초에 비교적 괜찮은 국내의 피아노 콩쿨 대회에 나갔고, 콩쿨이 끝나기만을 노심초사 기다리고 있던 내게 드디어 전화가 왔다.

“이모! 저 동 학년부에서 1등 했어요”

“와~진짜! 정말이니?‘

“네. 정말이예요!”

아이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ㅇㅇ아! 성실하게 노력해줘서 너무 고맙다. 너무나 잘 했어. 1등을 해서가 아니라 네가 너무 열심히 노력해서 이모는 너무 자랑스러워. 지금까지 맘 속에 숨겨 놓은 말이지만

내가 너를 만나려고 아이를 낳지 않았나 보다.”
“이모……정말요? 저… 지금 눈물이 줄줄 흘러요.”



우린 한동안 대화가 없었다.

그 긴 침묵 속에서 서로가 하고 싶은 말을 서로 말 없이도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 내게 가족의 이름을 묻는다면,내 아빠는 ㅇㅇ씨,
엄마는 ㅇㅇ 씨, 내 남편은 ㅇㅇ 씨,
내 아들은 ㅇㅇ이라고 말할 거야.’

라는 나의 메세지를 아이는 분명히 마음으로 들었을 것이다.


‘이모, 저는 드디어 진짜 가족이 생겨서 너무 행복해요’

라고 아이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울리는 듯 했다.


<<끝





7화에 계속

(→ 다음 화에서는 이 수필을 쓰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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