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내 집으로 떠나면 그만이지만, 문득 다른 우주는 어떻게 생겼나, 궁금했다. 어차피 집에 가봐야 건반 앞에 앉아 있기만 할 뿐, 아무것도 못 할게 분명했다. 그럴 바엔, 다른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얼 하며 살고 있는지, 알아서 나쁠 게 있을까?
“더… 더운데 뭐 그러죠!”
거절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도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서로 망을 봐주며 쥐처럼 건물을 빠져나왔다. 골목을 벗어났을 땐, 한껏 오그라든 서로의 꼴이 웃겨 웃음이 터졌다.
다른 우주라고 대단히 다른 것은 없었다.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는 위치도 똑같았다. 우리는 똑같은 브랜드의 콘 아이스크림을 동시에 집어 들었다.
“하하… 먹을 줄 아시네요.”
“콘은 역시 멧돼지콘이죠. 하하… 이, 이건 제가 계산하겠습니다!”
내가 먹자고 했으니 내가 사야지. 그런데 폰이 왜 이러니… 샘숭페이를 실행하자 결제하려면 모바일 네트워크에 연결해야 한다는 문구가 떴다.
“생각해 보니까 결제가 안 되겠네요. 그쪽은 여기 사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아…”
“제가 살게요.”
“죄송해서 어쩌죠… 제가 먹자고 한 건데…”
“이 세계에 온 기념으로 사 드릴게요. 그쪽 세계에서 만나게 되면 그때 사주세요.”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시스템 오류 발생 이후, 일주일 동안 아무도 못 만났던 걸 생각하면, 어떤 규칙에 의해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카지노 게임는 마주 앉아 사이좋게 멧돼지콘을 음미했다. 마침, 가게 안에는 카지노 게임 말곤 손님이 없어, 매우 수상쩍을 카지노 게임의 대화도 안심이 됐다.
“폰을 보니까 LTE가 떠야 하는 부분에 이렇게 지구 모양 아이콘이 떠요.”
“오… 진짜 그렇네요. 갤럭시 모드라고 뜨네요? 다른 우주에 가 있을 때 뜨는 걸까요? 인터넷 돼요?”
“어… 안되네요. 인터넷이 안 돼요… 캐톡도 안 되고…”
“디지털 디톡스하고 싶을 때 딱이네.”
인터넷 기반으로 움직이는 것들만 멈췄을 뿐인데, 내가 살던 세계가 아득히 멀게 느껴진다. 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거라곤 사진첩, 메모, 다운 받아놨던 작곡 파일, 음성 녹음 기능뿐이다.
“그럼, 천장에 물 자국은 누수 자국인 거네요?”
“그런 것 같아요. 자국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아서 살펴보고 있었는데…”
“부동산에서 그동안 누수 문제는 없었다고 했는데… 이사하게 될 수도 있겠네요.”
“전에 살던 집도 누수가 있었는데, 원인에 따라 다른 것 같더라고요. 바로 해결 가능한 경우도 있었어요.”
우리는 현실적인 문제 앞에선 말을 아꼈다. 입 밖으론 꺼내고 싶지 않을 만큼 착잡했다. 그도 같은 생각이리라.
“근데… 저… 무슨 일 하시는지 여쭤봐도 돼요…?”
“그냥… 사무직 아르바이트하고 있어요. 그쪽은요?”
“아… 저도 아르바이트해요. 의료기기 만드는 아파트형 공장인데… 양품인지 아닌지 테스트도 하고… 뭐, 그런 일이죠.”
“아아…”
친밀했던 분위기가 어느새 낯을 가리고 있었다. 그건 너무나 나다운, 다분히 카지노 게임 다운 분위기로 돌아간 것이었는데, 이상하게 그 기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저, 저는 작곡가 지망생이에요. 10년째… 하하…”
그래서 내가 사는 세계에선 스스로 꺼내지 않을 말을 기어이 뱉어버렸다. 다른 세계의 나에게만큼은 솔직하게 나를 소개하고 싶었다.
“다른 세계의 나도 꿈이 있나 궁금했었는데… 신기하네요. 저도 실은… 10년째 개그맨 지망생이에요.”
“우와…”
“이런 성격에 어떻게 그런 꿈을 꿀 수 있나 싶죠…? 하하…”
이 뭉클한 기분은 뭘까. 타고난 성격을 들이받아야 얻을 수 있는 꿈이라서? 우리에게 그런 기질이 없는 건 분명한 것 같은데. 왜 사람에겐 모순된 욕망이 있는 걸까. 길을 걸을 때, 누군가가 나를 힐끗거리는 것조차 견디기 힘들어하면서. 내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생각은, 마음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광장에 걸어 놓고 싶은 욕망.
카지노 게임는 허심탄회하게 지망생의 삶을 나눴다. 최근에 동훈 형과 있었던 일도 털어놓았다.
“그래서 또 포기 상태예요. 하하… 한 8만 번은 포기한 것 같은데, 이번에 그런 일까지 겹치니까 카지노 게임로 그만둬야 할 것 같더라고요.”
그는 별 대답 없이 아랫입술을 꼭꼭 씹고 있었다. 다른 세계의 나는, 어떤 답을 내놓을까? 그게 궁금해 그의 입술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번을… 진짜 단 한 번을 내가 생각하는 인생을 살지 못하는 게, 짜증 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