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뒤쳐진 노동환경
영국의 사회주의 기업가 로버트 오언은 1817년에 '8시간 노동, 8시간 휴식, 8시간 수면'을 요구했다. 얼마 안 가서 이 슬로건은 국제 노동운동의 표준 지침이 되었다. 물론 서구 사회가 이 슬로건를 본격적으로 실현하기까지 100년 가까이 걸렸지만.
우리나라가 처음 근로기준법을 제정한 시기는 1953년 5월이다. 당시 우리나라 정부는 6.25 전쟁 탓에 부산으로 피신한 상태였다. 그런 시기에도 전진한 선생 등이 사회통합을 위해 근로기준법 도입을 관철시켰다. 이승만 대통령도 계급 분열을 막으려면 노동자를 회유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받아들인 듯하다.
당시 도입된 근로기준법 제42조 1항은 이렇다.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하고 1일에 8시간 1주일에 48시간을 기준으로 한다. 단 당사자의 합의에 의하여 1주일에 60시간을 한도로 근로할 수 있다."
서양에 비하면 100년 넘게 늦은 셈이지만, 아무튼 우리나라도 정부를 수립하고 얼마 뒤에 8시간 노동제를 도입했다. 훗날 전태일 열사가 목숨 바쳐서 요구한 것도 바로 이 근로기준법을 지켜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죽어도 문제를 고치지 않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속성이다. 2020년대에 이르러서도 우리나라는 8시간 노동제를 우회할 방법을 찾고 있다. 경제성장과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일주일에 69시간이든 120시간이든 일을 시킬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기업과 노동자는 한몸이니, 기업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가 다소 희생해야 할 수는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 기업이 일방적으로 희생만 요구하고 마땅한 보상은 외면해 왔다는 점이다. 임금체불, 산업재해, 과로사는 기업을 작은 전체주의 사회로 여기는 한국식 기업가 정신의 산물이다.
노동자를 동업자가 아닌 부품으로 여기면서 공동 이익을 위한 희생을 바라는 것은 과욕이다. 교황 레오 13세의 가르침에 따르면, 신법과 실정법이 모두 허락하지 않는 탐욕이다.
8시간 노동제는 서구 사회가 200년 전부터 논의하고 100년 전부터 시행하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2025년이 되어서도 8시간 노동제를 걸림돌로만 여기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이 일하다 죽는 바람에, 갑질과 과로사가 한국 사회를 표현하는 대표 단어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살고 싶은 나라, 즐겁게 일하는 기업을 만드는 데 실패했고, 그 대가로 지나치게 빠른 소멸을 앞두고 있다.
"자본가와 고용주가 대체로 명심해야 할 원칙은 자신의 이윤 추구를 위해 곤궁하고 불쌍한 사람을 억압하고 이웃의 비참함을 이용해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신법과 실정법이 모두 금지한다는 사실이다."
-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189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