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논문을 위한 모든 공부
"인생 2막을 준비하고 계신가요?"
“온라인 카지노 게임 인생 1막으로 돌아왔습니다."
사실 인생 2막이라는 말을 조금 싫어하는 편이다. 왠지 어디론가 밀려나듯 퇴장당하는 느낌. 주어진 시간표에 따라 다른 무대를 받아들이는 느낌. 그런 것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차라리 나는 1막, 2막, 3막, 4막 하고 싶은 대로 이것저것 다 해보고 차라리 지금쯤엔 6막, 7막, 그런 큰 숫자가 더 낫겠다 싶다.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정하고, 때로는 전혀 다른 장르의 무대가 펼쳐지기도 하고, 또 어떤 막은 화려하지 않아도 큰 의미가 있기도 하고.
1부. 갑자기 논문 시작
지도 교수님께 논문을 조금씩 준비해 보겠다고 말씀드렸다.
“이번 학기 바로 쓸 건가요?”
예상치 못한 말씀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머뭇거리지 말고 그냥 그런다고 할까? 끝이 안 보이던 이 과정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아니라고 말씀드릴 수가 없었다. 3월 둘째 주였고, 예비 심사까지는 1달이 남아 있었다.
매일 핫식스 캔 4~5개로 밤을 새우고 쪽잠을 자면서 낮에는 석사 연구원 생활을 했다. 주말에는 어설픈 원고를 계속 찍어냈고, 어머니 칠순 잔치에도 가지 못했다.
매주 한 번 지도 교수님께 원고를 보내기로 했다. 그날이 되면 밤을 새워서라도 뭐라도 썼다. 교수님이 그리 꼼꼼히 보실 수는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단지 저기 어딘가에서 나를 감시하고 응원온라인 카지노 게임 분이 있다는 느낌 그런 것이 나를 지탱했다.
박사 논문을 쓰며 두 번의 살벌한 행사를 거쳤다. ‘혼나러 가는 자리’ 예심과 ‘정말 끝내야 하는 자리’인 종심.
2부. 인생을 부정당온라인 카지노 게임 이 느낌
기대온라인 카지노 게임 예심 원고의 양은 학과마다 다르다. 어떤 선배는 ‘연구 방법’까지만 써 가라고 했고, 또 다른 선배는 일단 완성본을 들고 가야 한다고 했다. 석사과정 이후 계속 교육학을 기본으로 한 IMRAD 시스템에 익숙했고, 그런 분야에서는 연구의 설계를 먼저 예심에서 인정받아야 실험이나 조사가 시작되니, 예심에서 결과를 써 갔다가는 오히려 혼이 나는 경우도 있었다. 정답이 없었다.
박사 논문 심사위원은 대부분 어문학을 하시던 분들이라, 예심에서도 완성본을 제출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셨다. 그것을 뒤늦게 알았고 매우 빈약한 양의 결과와 결론을 담아 예심 원고를 제출했다.
살벌했다. 교수님들의 시선은 냉랭했고 교수님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내 공부를 내 인생 자체를 부정하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떨어질 수도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왔다.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막막해 계속 울고 있었다. 아홉 살 딸아이가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3부 예심은 그냥 원래 그런 자리였지
다음날 바로 수정을 시작했다.
‘뭐 어차피 그렇게 혼나는 자리로 알고 갔는데, 여기서 허물어질 수는 없다!’
억지스럽고 억울한 내용도 있었지만, 교수님들이 던지셨던 날카로운 말들을 복기하며, 메모해 놓은 지시사항을 이래저래 수정하겠다고 계획서를 썼다. 교수님 한 분 한 분의 지시가 다르니, 그에 맞춰 각각 따로 작성해 보냈다. 그냥 심사위원들 다섯 분과 함께 쓰는 글이라 생각하고 남은 기간 시간 낭비 없이 진도 나가는 것에만 집중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우선 성의를 보였고, 실제 남은 1달 반 동안 그 계획서는 나의 체크리스트가 되어 속도를 높여줬다. 논문은 더 단단해졌다. 때로 상충하는 5명의 의견을 수정 원고에는 다 조화롭게 반영해야 했다. 최소한 조율하려는 강한 성의를 담으려 노력했다.
‘학위 논문은 여섯 명이 노를 저어 내용이 산으로 가야 결국 마무리된다. 그리고 논문은 그냥 산에 버려 놓고 오면 된다.’
4부. 대학에 남고 싶었지만
원고 제출 마감까지 단 1분도 일찍 끝내지 못했다. 카페인의 힘으로 72시간을 자지 않고 연속으로 쓰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최종 심사는 교내 교수 식당에서 차분히 이루어졌다. 지도 교수님은 비싼 음식점에서 진행온라인 카지노 게임 부담을 덜어 주시려 다른 과정생과 비용을 나누어 함께 진행할 수 있도록 스케줄을 조정해 주셨다. 외부 교수님의 거마비도 없는 것으로 해 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훌륭하신 분이다.
종심을 앞두고 친형이 100만 원을 보내왔었는데, 형 역시 같은 길을 걸었기에 그런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거다. 또 울었다.
최종 심사 이전까지의 과정이 험난했을 뿐 사실 그날은 그냥 그 정도로 합격임을 예감하고 있었다. 약간의 사항에 대해서 수정 지시만 받고 일정이 끝났다.
이후 인준지라는 종이에 교수님 다섯 분의 도장을 받으러 교수님을 한 분 한 분 찾아다니는 것도쉬운 일은 아니었다. 까만색 하드 커버 논문으로 출간하기 전까지 계속 수정 지시를 반영하고 오탈자를 확인하느라 50번은 더 읽었다. 계속 나오는 오탈자엔 더 이상 스트레스받지 않고 그냥 이제라도 보여 감사하다고만 생각하고, 2주 정도 더 비슷한 생활을 계속했다.
물론 마음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GPT가 없던 시절이니 어색한 영문 초록도 직접 작성했는데 지금 온라인 카지노 게임 들여다볼 자신은 없다. 이렇게 모두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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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하던 학교에서 박사연구원, 특임교수를 거치며 공부하는 사람으로서의 꿈을 키워갔다. 대학 출판부에서 책도 쓰고, 글쓰기 수업의 교과서도 공동 집필했다. 교수 임용을 위해서는 학술지 논문의 게재 실적이 중요해서 그때부터 논문 공장이 되었다. 한창 물오른 손가락으로 10편 정도의 논문을 순식간에 발표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해양학과, 조기영어교육, 언어정보학을 전공한 다음 일할 수 있는 학과는 찾기 어려웠다. 늘 학/석/박 중 2개 전공은 같아야 어디라도 받아 준다는 그런 짜증 나는 말만 참 많이도 들었다. 융합은 그냥 취미 정도로 했어야 했다. 결국 학교를 떠났다. 늦은 나이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 회사에 들어갔다.
제5부. 다시, 공부온라인 카지노 게임 삶
이후 5년의 회사 생활은 나에게 경제적 안정과 밀린 사회 경험을 가져다주었다. 이왕 시작한 회사 생활, 잘해서 그 안에서 성장하고 싶었다.
하지만 주말에도 의미 없는 업무 지시를 내리고, 책이란 사람에게 고정관념을 가지게 해서 절대 책을 읽지 않는다는 직속 상사 아래에서 나는 점점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쓸데없는 박사 공부를 하느라 내가 성장을 할 수 없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내뱉는 그런 상사였다.
책을 멀리온라인 카지노 게임 생활에 젖어들었다. 회사는 나를 이사라고, 또 상무라고 불렀지만 나는 죽어있었다. 삶이 조용히 멈춰버렸다.
퇴사를 택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뚜껑이 닫혀 버린 머리. 부하 직원에게 시키기만 해서 PPT 하나를 제대로 못 만드는 뻣뻣한 손가락. 말을 아끼다 굳어 버린 혀. 이런 것들을 되살리느라 또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용기를 내어 사람들 앞에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 강의도 하고, 한 글자도 쓸 수 없었던 굳은 머리와 손으로 브런치 작가에도 도전했다. 모두 쉽지는 않았다. 이제야 겨우, 행복하게 바빠졌다. 아마 이 글이 처음으로 편안하게 쓰는 브런치 글인 것 같다.
<맺으며
지금 나는 인생 4막쯤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학원, 대학, 그리고 회사 시절이 1막, 2막, 3막이었다면, 이제 다시 책을 읽고, 많은 사람과 호흡하며, 과거 1막의 나보다 조금은 더 깊어진 시선으로 무대에 선다. 1막의 마음으로 다시 쓰는 새로운 막, 진화된 버전의 1막이다.
이제 학위 논문을 쓸 일도 없고, 남에게 평가받는 무언가에는 ChatGPT를 총동원하면 그만이다. 그냥 내 삶의 진짜 논문을 쓰고 싶다. 나의 의지로, 나의 문장으로, 나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집대성하고 싶다. 마지막 논문을 쓰기 전, 최대한 많은 것을 공부하는 진짜 ‘모든 공부’가 될 야망을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