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일기 #002
안 되는 건 안 돼.
엄마는 늘 버릇처럼 말했다. 안 되는 건 = 안 되는 것. 이해하기 어려운 건 아녔지만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왜 이렇게 안 되는 게 많은 건지, 아주 가끔은 될 수도 있는 것 아닌지.
안 된다고 분명히 말했어.
까지 나올 때엔 일순간 모든 게 멈추었다. 시간도, 공간도 차갑게 얼어 버려서 바삐 움직이던 주변 사람들 조차 걸음을 멈추고 카지노 게임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말하자면 그런, 단호함이었다. 세상 누구도 그 결정을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은.
하지만 그날은 웬일인지 바라 마지않던 합체 로봇을 사 주마고 말하던 카지노 게임. 지금 같으면 슬프게 눈치챘을 테다. 내가 이토록 수월하게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을 리 없다는 것을, 혼절할 듯 기뻐서 정신 못 차리는 나를 삶이 곱게 볼 리 없다는 것을. 어쩌면 내 병은 그때부터 이미 시작됐는지 모른다.
로봇은 품절이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건대 그날 그 로봇이 품절이었던 것은 그저 카지노 게임 재수 없는 룰렛에 걸린 하나의 결과에 지나지 않았다. 품절되지 않았더라도 나는 높은 확률로
1) 완구점 휴일(혹은 폐점)
2) 뭐가 이렇게 비싸? 안 돼!
3)...(그 외 모든 예기치 않은 불운)
등의 절망적인 상황을 어떻게든 마주했을 게 분명했다. 이후에도 비슷한 일들은 얼마든지 이어졌으니까. 롯데월드에 데리고 간다던 엄마의 약속도, 현대 컴보이를 가져다준다던 아빠의 약속도 마냥 기뻐하고 있노라면 차례대로 엎어졌다. 실로 반복적이고 또 교묘한 전개였다. 엄마에게, 할머니에게 통사정을 해 보아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었다. 알고 있는 모든 신들의 이름을 불러 보아도 응답은 들리지 않았다. 다만 점차로 분명해지는 한 가지 사실은 신이건 뭐건 간에 내게 단단히 심통이 났다는 것, 내가 쉽게 기뻐하는 모습을 결코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 그게 내 결론이었다. 모종의 이유로 카지노 게임 행복해 보이면 불운해지는 인간들의 명부에 등록된 듯했다.
행복한 모습을 들키지 않겠습니다. 가능한 모든 최악을 시뮬레이트하여 현실이 되지 않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그건 억울하게 오른 명부에 대한 나름대로의 상소(上疏)였다.
1) 완구점 휴일(혹은 폐점)
2) 뭐가 이렇게 비싸? 안 돼!
3)...(그 외 모든 예기치 않은 불운)
오답을 소거하듯 그 모든 최악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일은 그날 이후 나의 직업이 되었다. 돈 한 푼 나오지 않는 직업이었지만 그 고단한 노동의 대가로 평온을 얻었다. 나는 마치 고산지대의 농부처럼 운명을 받아들이고 묵묵하게, 또 근면하게 일했다. 호시탐탐 뒤통수만을 노리는 삶의 매서운 눈초리를 날마다 속여 가며 불운을 비껴갈 수 있음에 안도했다. 이따금씩 눈을 가늘게 뜨고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는 운명의 시선이 느껴졌다. 아뇨, 저 행복한 게 아녜요. 잘못 보신 거예요. 아 방금 그건 그냥 실소예요. 그리고 거짓말처럼 내가 지워 버린 최악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음을 나는 확실히 감지할 수 있었다. 경력이 더해질수록 확신도 커졌다. 그게 착각이었을까.
210호. 같은 라인에 살던 친구의 집은 내게 집보다 편안하게 느껴지곤 했다. 학교가 파하고 나면 우리 집엔 아무도 없었으므로 카지노 게임 혼자서 집을 보거나 가끔씩 210호에 맡겨졌다. 아빠가 출근하고 나면 엄마도 날마다 어딘가로 외출을 했었는데, 엄마가 무얼 하고 다녔는지 카지노 게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언젠가 안 나가면 안 되냐고 울며 떼를 쓰는 나에게 엄마가 무어라 얘길 했던 것 같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거짓말이구나,라고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을 뿐이다.
친절한 아주머니, 평일에도 투게더 아이스크림과 함께 일찌감치 퇴근하던 아저씨, 심술궂지만 가끔은 내게 장난감을 빌려 줬던 친구의 형, 맹하지만 착했던 친구까지. 늘 왁자지껄한 그 틈바구니 안에서 카지노 게임 은밀히 안정감을 찾았다. 말하자면 그 집에 나를 위해 준비된 것은 없었지만, 카지노 게임 혼자 집을 보는 일이 죽기보다 싫었고, 불안했다. 지하철에서 보았던 빨간 망토를 쓴 늑대 포스터가 계속해서 떠올랐다. 혼자 tv를 보다가 뒤를 돌아보면 벽 뒤에 숨은 늑대가 웃으며 날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형편이다 보니, 외롭게나마 210호의 평온한 일상을 지켜보는 일이 카지노 게임 좋았다. 매일 나가는 엄마와 달리 내가 그 집에 가는 건 매번 허락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특별한 날이었다. 엄마도 아빠도 많이 늦을 예정인 바 210호에서 자고 오라던 그 말을 듣고 기쁨의 포효를 했었으니. 혼자서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 카지노 게임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새로 산 친구의 로봇을 구경하고, 함께 가요 톱텐을 보며 모처럼 내내 웃었던 것 같다. 바로 이틀 전에 대관령 가는 차 안에서 카지노 게임 아빠에게 가수가 되고 싶노라고 말했었다. 네가 무슨 가수를 하겠냐고, 아빠는 비웃었고 카지노 게임 노래를 불렀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서, 또 웃었다.
그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큰 소리를 내며 통화하던 아주머니. 전람회의 무대를 넋 놓고 바라보던 나. 달려오는 아주머니. 웃는 나를 마구 흔들며 큰일이 났다고. 어떡하니. 대관절 이게 무슨 일이라니. 왜요. 아주머니 왜 이러세요. 한껏 확장된 아주머니의 동공을 바라보다 카지노 게임 어지러움을 느꼈다.
아빠가 돌아가셨다고, 말한다. 아홉 살 되던 해였다.
- 계속